* 지난 15일(목) 이른바 '재일동포학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당시 고문, 투옥을 겪을 뿐 아니라 출소한 이후로도 감시와 사찰을 받으며 살아온 김명수 목사, 나도현 목사, 전병생 목사가 3번의 재심 공판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아래 글은 한달 앞서 열린 재심 공판에서 김명수 목사가 발언한 내용이다. -편집자 주-

김명수 목사 ⓒ에큐메니안

1975년 10월 19일 신 새벽, 저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4명의 정체불명의 요원들에 의해 연행되어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눈을 가렸던 헝겊이 벗겨지자 건물현관 입구 위에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문구가 나를 섬뜩하게 했습니다. 남산 중앙정보부 대공분실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의 지하 고문실에 감금된 채, 한 달여 동안 취조를 받았는데요. 그 기간은 제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악몽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수사관들은 마치 먹이를 앞에 둔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저에게 굴었습니다. 잠을 안 재운 채, 협박하고 구타하며, 제 몸과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국가 공권력이 특정 집단에 의해 사유화되면, 주권자 국민의 삶이 얼마나 송두리째 파괴될 수 있는가를 40년 전에 일어났던 제 사건과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제가 관련된 재일동포 학생간첩단 사건을 기획하고 진두지휘했던 사람은 김기춘씨였습니다. 유신헌법을 초안했던 그는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었습니다. 

1975년 11월 22일, 김기춘 중앙정보부 국장은 소위“재일동포 학생간첩단 사건”을 신문지상에 발표했습니다. 신문에 나온 제 사진 밑에는 “간첩 김명수”라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졸지에 간첩 가족이 된 저의 부모형제들은 일가친척, 친지, 교회, 사회공동체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채, 절망과 좌절 속에서 공포의 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당시 제 가족이 겪었던 상황을 지금 방청석에 앉아 있는 제 여동생은 재판관님께 제출한 진술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저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습니다. ...새벽 5시경에 오빠는 들이닥친 서너명의 남자들에 의해 팬티바람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그 후 한달여 동안, 오빠의 생사여부는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디로, 무슨 일로 끌려갔는지, 살아있기나 한 것인지, 우리 가족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오빠의 행방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허사였습니다. ...1975년 11월 22일, 일간 신문은 온통 재일교포 관련 간첩단사건으로 도배되었습니다. 한 달 여 동안 소식을 몰랐던 오빠의 소식을 신문을 보고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오빠는 국가내란죄에 해당하는 4가지 엄청난 죄명을 쓰고 있었습니다.”

출소 후에 안 일이었지만, 김기춘씨는 제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어요. 전국 예비군 훈련 장소에서 반공(反共) 자료로 상영토록 했습니다.  그 때로부터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비록 때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칠십 평생 제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있던 한(恨)과 트라우마를 풀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고, 재심의 기회를 허락해 주신 재판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출소 후 저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독일에 유학했습니다. 귀국 후 부산에 있는 신학대학에서 23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길러내는 일에 종사했고요. 재직기간동안 천명이 넘는 제자들을 길러내며, 서른 권의 신학전문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은퇴 후 현재는,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남한강변에 위치한 노인요양시설 <예함의집>에서 치매어르신들을 보살피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때때로 강연이나 설교를 하며, 제가 평생 쌓아왔던 지적(知的) 재산들을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소중한 시간에 40년 전에 저에게 일어났던 사건의 세세한 항목(項目)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재판관님께 제출된 재심 상고진술서에 제 의견을 충분히 밝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시간, 피고인의 한 사람으로써가 아니라 이 나라 주권자인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당시 제가 당했던 사건을 회고(回顧)하며, 기억나는 것들을 중심으로 현재의 심경(心境)을 담담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E.H.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만, 과거는 현재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청산되지 않은 과거역사는 반드시 현재에 되풀이된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어요. 

2015년 국정원에 의한 유우성씨의 간첩조작 사건을 보면서, 제 심정은 참담했습니다. 40년 전 제가 겪었던 트라우마가 저를 괴롭혔고요. 40년이 제가 겪었던 사건이 유우성씨 사건을 통해서 그대로 부활하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유우성씨에서 40년 전 제 모습을 보았고요, 그는 저의 아바타로 생각되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유우성씨 사건은 조작이었다는 것이 만 천하에 밝혀진 것이고요, 제 사건은 아직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미완(未完)의 숙제로 남아있다는 점이겠지요.    

저는 재심 신청을 앞두고, 망설였어요. 결과의 유불리(有不利)를 떠나서,과연 의미가 있는 일인가? 40년 전 사건의 진실이 지금 밝혀진다고 해서 내가 살아왔던 세월이 보상될 수 있는 것인가? 허나, 재심을 신청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역사의 부채(負債)를 청산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고. 후손들에게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에요.    

뉴스타파 최승호 피디가 만든 영화 <자백>이 지금 상영되고 있는데요.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과 제가 관련되었던 재일동포학생 간첩단 사건이 주요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고 하는데요. 유감스럽게도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충주에는 상영하는 영화관이 없어서인데요.     

지금도 청계천 8가에 가면 전태일 흉상(胸像)이 서있어요. 19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다가 노동자 전태일씨가 자기 몸을 불사른 장소인데요. 당시 그가 하루 14시간 노동을 하고 받은 임금은 고작 50원이었습니다. 커피 한 잔 값이었지요. 전태일씨는 저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였는데요. 그래서인지 그의 분신(焚身)사건은 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요. 제가 선택한 엔지니어의 길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懷疑)를 갖게 만들었어요.  

1972년 10월 유신헌법이 공포(公布)되던 해에, 저는 공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한신대학에 학사 편입했습니다. 과연 인간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 깊이 고심하던 중 내린 어려운 결단이었습니다. 저는 한신대학의 민주화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 인간과 사회, 국가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당시 유신철폐를 위한 한신대학의 학생시위는 타 대학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교수와 학생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집단 삭발하기도 했고요. 연일 항거시위를 이어갔지요. 100일동안 릴레이로 구국(救國)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1974년 봄, 유신정권은 학생시위가 가장 치열했던 한신대학과 고려대학에 휴업령(休業令)과 휴교령을 내렸어요. 학생들의 학교출입을 원천봉쇄했고요. 학생운동에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된 안병무, 문동환교수를 해임시켰습니다. 

1974년 4월에 유신정권의 위기였습니다.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여 발표했습니다. 유신 철폐 민주화 학생운동이 북괴의 간첩에 의해 조종되었다고 발표했어요. 관련자들에게 사형과 무기형이 선고되기까지 했어요. 심지어 그들 중에는 사형이 집행된 분들도 여럿 있었어요. 지금 이 사건들은 유신정권의 필요에 의해서 조작된 사건이었음이 드러났고,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단군 이래 우리역사에서 일어난 최대 사법 스캔들로 국제사회에 알려졌습니다. 그 해 8.15 광복절에 육영수여사가 저격당했어요. 1975년 3월 인도지나와 크메르가 공산화되었습니다. 

국내외적인 상황은 유신정권에게 결코 유리하게 전개되지 않았습니다.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유신정권은 또 한 가지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는데요.  전국조직망을 가진 재일동포 학생 간첩단 사건 발표가 그것이었습니다.   

유신정권은 한신대, 서울대, 고려대, 가톨릭대, 외국어대, 부산대학 등에 유학 온 재일동포학생들을 모두 하나로 엮었어요. 거대한 간첩조직망으로 만들었습니다. 전국적으로 번지는 유신철폐 민주화 학생운동의 배후에 바로 북한 간첩들이 있었다고 발표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학생운동을 잠재울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지요. 

당시 저는 대학원 학생이었는데요. 하루는 학장이셨던 김정준 교수께서 저를 부르는 것이었어요. 한 학생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재일동포였습니다. 일본 동지사대학에서 출신인데, 초창기 한국기독교 진보신학자 김재준의 신학을 연구하기 위해 왔다고 했어요. 한국말도 가르쳐줄 겸 그를 각별히 도와주라는 특별부탁을 받았습니다.  

당시 기숙사에는 동향 친구 나도현씨가 있었어요. 그와 함께 김철현씨를 가끔 만났습니다.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는 신학과 철학분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한반도정세와 학생운동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저는 당시 대학원생 대표였는데요. 학부생들의 민주화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복학생 전병생씨와 가끔 만나,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연합하여 학생운동을 전개하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중앙정보부 조서에 의하면, 생면부지의 김철현씨가 간첩이었음을 처음부터 인지한 상태에서, 제가 그의 지령을 받아 유신철폐 민주화를 위한 한신대학의 학생 시위를 배후조종했다고 꾸며져 있습니다.  

당시 저는 김철현씨의 정체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릅니다. 일본이라는 개방된 사회에서 성장했기에, 그는 저보다 북한이나 국제정세 대해 폭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을 뿐이지요. 

김철현씨가 한국에 들어온 날이 1974년 4월 10일이었어요. 한국말로 의사소통도 잘 안 되는 상태였어요. 13일이 지난 4월 23일, 그와 한두 번 만난 상태였는데요. 저는 이미 간첩이 되어있었고, 그와 함께 반국가단체를 결성한 걸로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김철현씨는 누구였는가?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경계인(境界人) 취급을 받으며, 일본사회에서 극심한 차별대우를 받으며 살아왔다는 것, 청년이 되면서 자아정체성을 묻게 되었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국에 유학왔다는 것, 국가 공권력은 그를 따뜻하게 맞아준 것이 아니라, 북괴 간첩으로 몰아 온갖 고문 끝에 사형선고를 내렸다는 것, 그는 복역을 하다가 사면되어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것, 중앙정보부에서 당한 고문후유증으로 정신쇠약증에 걸려 정상인으로써의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 지금도 그는 거의 폐인(廢人)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것이 제가 알고 있는 김철현씨의 전부입니다. 

저는 김철현씨가 간첩이었는지 아닌지 전에도 몰랐고요. 지금도 모릅니다. 다만 당시에, 그로부터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의 힘든 삶의 실상(實相)에 대해 들었을 때, 저는 동포의 한 사람으로써, 그들에게 연민(憐憫)의 정을 느겼어요. 그가 고국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어요. 

2,3년 전, 제 옆자리에 있는 두 친구와 함께 오사카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김철현씨를 만나 재심신청을 설득하기 위해서였지요. 허나, 그는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지요. 

지난 6월말, 저는 관서학원대학에 특강이 있어 오사카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그 때 만난 한 지인(知人)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김철현씨가 한국에 유학 중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았던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고, 그것을 읽었다고 하드군요.  

그 인터넷 자료에 따르면, 김명수와 나도현은 중앙정보부 프락치였다는 것, 중앙정보부는 자기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김명수를 고의로 자기에게 접근시켰고, 김명수를 통해 한신대학 학생운동을 일으키도록 하고, 그 배후 조종자로 자기를 지목하여 간첩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고 해요. 김명수가 출소 후 독일로 유학을 가고, 귀국하여 대학교수가 된 사실 자체가 중앙정보부 프락치였다는 사실을 논거로 말하고 있다고 했어요.     

지인으로부터 그 말을 듣고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어요. 지금까지 저는 김철현씨의 피해자(被害者)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거꾸로 그는 저를 중앙정보부 프락치로써 가해자(加害者)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제 사건에서 가장 치욕적인 일은 김기춘씨가 저에게 간첩혐의를 뒤집어씌운 것입니다. 중앙정보부는 저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협박했어요. 심지어 인천앞바다에서 공작선을 타고 황해도를 거쳐 평양에 들어가는 로드맵까지 그려주면서 시인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저는 취조를 받으면서도 이를 시인하는 순간 사형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생존본능이 발동했습니다.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너무나 완강하게 버티자 수사관들도 이를 포기하고 다른 방향으로 돌렸어요. 제가 국가기밀을 탐지하여 김철현씨에게 보고했다고 했습니다. 

그 주요 내용은 인천 대성목재 노동자들과 영등포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실태를 탐지하여 김철현씨에게 보고했다는 것이었어요. 군산에 미군기지가 있다는 정보를 탐지하여 보고했다는 것이었어요. 이런 얼토당토않은 사실에 근거하여 김기춘씨는 저를 간첩으로 만들었고, 검찰 측은 국가내란죄를 적용하여 간첩으로 구형했고, 재판관은 간첩으로 선고했던 것입니다. 저는 무기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북의 지령을 받고 남한사회를 어지럽힐 목적으로 침투된무장공비에게나 해당되는 간첩혐의를, 당시 유신정권은 저에게 뒤집어씌운 것입니다. 당시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유신집단이 벌인 희대의 스캔들 중 하나가 바로 저를 간첩으로 만든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저는 석사논문 쓰기에 바쁜 때였습니다. 인천과 구로공단을 돌아다니며 노동자들의 임금실태를 탐지하고 다닐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어요. 설령 제가 군산에 미군기지가 있다는 말을 김철현씨에게 우연히 했다고 해도, 전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 과연 국가기밀에 해당되는 정보였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중앙정보부에 들어갔을 때, 7층에서 취조를 받았는데요. 일주일 정도 취조를 마친 후, 수사관은 이제 서울구치소로 갈 것이라고 했어요. 당시까지만 해도 제에게 간첩혐의가 없었습니다. 헌데 제 사건일지를 가지고 김기춘씨가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온 후, 수사관들은 저를 서울구치소가 아니라 지하 고문실로 데려갔습니다. 3주 동안 그곳에서 취조를 받았습니다.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강도 높은 취조를 받았어요. 20일 동안 밤잠을 자지 못하게 했어요. 온갖 고문과 언어폭력으로 몸과 정신이 완전히 망가지고 탈진한 상태였어요. 지하실에서 나올 때는, 저는 간첩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 나이 스물여섯이었습니다. 

서울 구치소로 이감되었을 때, 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의 행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데요. 서익원씨였어요. 중앙정보부에서 작성된 조서 내용을 부인하려고 하면, 그는 저에게 온갖 쌍욕을 해대며 협박했어요. 시인을 거부하면 “이 빨갱이 새끼, 다시 중앙정보부 맛을 보아야 정신차리겠나?”이런 식으로 욕을 해대며 구두 발로 제 무릎정강이를 짓이겼습니다. 중앙정보부에서 작성된 조서를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베껴 쓰는 일이 공안검사 서익원씨의 취조 방법이었어요.     

저는 제 인생의 황금기인 20대 후반을 교도소에서 보냈습니다. 4년 4개월 동안 0.78평의 독방(獨房)에서 살았어요. 서울구치소, 대전교도소, 대구교도소를 전전하며, 그야말로 산다는 것 자체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하늘을 볼 수 있는 운동시간은 하루에 30분이 고작이었고요. 교도관들에게 구타를 당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영양실조로 두 눈이 거의 실명상태가 된 적도 있었고요. 부패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려 사경(死境)을 헤맨 적도 있습니다. 

저는 아나키스트는 아니지만, 제가 관련된 사건의 실상을 경험하면서, 국가가 과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주권자인 국민이 국가라는 것이 헌법 제1조의 기본정신임을 알 수 있어요. 정치권력이 국가가 아니지요. 경제권력이나 수입모델이 국가가 아닙니다. 이 두 권력에 기생하여 적당히 남을 짓밟고, ‘나만 출세하고 잘 살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는 매국독재세력의 부역자집단이 국가도 아니지요. 

2013년에 만들어진 영화 <변호인>에서 송광호의 마지막 변론장면은 인상적이었는데요. “국가는 곧 국민이다.”권력을 사유화한 집단이 국가가 아니라는 항변이었지요. ‘국가는 곧 주권자 국민이고, 주권자 국민이 곧 국가이다.’주권재민의 국가관에 투철한 사람들이 나라를 통치해야 합니다. 공적(公的) 마인드를 갖고 공적(公的)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 사람들이 공무(公務)를 보아야하지요. 주권자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으로 알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공무를 집행하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될 수 있어요.   

국가권력이 특정집단에 의해 사유화될 경우,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파괴되고 불행하게 될 수 있는가를 제 사건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신시대 사유화된 권력의 민낯을 낱낱이 폭로하고 있어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겨주기도 했어요. 

존경하는 재판관님, 
저 개인 한 사람의 희생으로 족합니다. 앞으로 우리 역사에 더 이상 간첩조작사건과 같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고, 더 이상 저와 같이 희생당하는 주권자 국민이 나오지 않도록 사법정의(司法正義)가 살아있는 사회를 만들어주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김명수(충주 예함의집)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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