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공동체론 열한 번째 강의는 김준 교수(중국, 절강공상대학)이 강사로 참여해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의 구축에 관해 아시아 담론의 해체와 구축 – 이데올로기로서의 아시아”에 대해 모색했다. 다음은 김준 교수의 강의를 정리한 내용이다.

김준 교수 ⓒ이찬수

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글로벌 시대의 공동체론, 세계화, 지역화 시대의 공동체 이론을 생각해보자. 어떠한 공동체가 바람직한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나는 조선족(재중동포)이다. 연변에서 살다가, 대학교 시절 천진에서 공부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북경을 거쳐 지금은 항주에 있는 절강공상대학에 있다. 올해는 서울시립대에 교환교수로 와있는 중이다. 아내와 아이는 일본에서 생활한다. 기러기 아빠다. 

세계화는 물건뿐만 아닌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옛날 공동체는 동일한 문화, 문명을 기준으로 하였다. 지금은 새롭게 정체성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다른 인종이 한국에 들어오는데 이들에게 단군신화나 백의민족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공동체하면 보통 유럽 이야기를 많이들 하지만, 유럽에서는 최근 자생적인 테러도 많이 발생한다. 이슬람을 수용한 유럽 이주민 사회에서 발생한 테러다. 공동체 안에서 다른 문명으로 살고 있는 이들은 소외와 억압, 빈곤 문제를 겪는다. 이는 테러를 낳는다. 동일한 문명, 문화, 이익 관계로 맺어진 공동체는 한계에 도달했다. 

아사아에서 다민족 국가를, 아시아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아시아가 무엇인가? 공동체는 무엇인가? 나의 전공은 사상사이다. 인종, 문명, 민족, 문화의 담론은 주로 서구에서 발생하였다. 이것이 동아시아에서 어떻게 수용, 변형되는지 연구한다. 아시아 담론에는 어떠한 내용이 들어있는가? 

먼저 지도 3장으로 이야기 하겠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세계지도와 다르다. 유럽중심의 지도다. 아메리카가 왼쪽에 있다. 우리가 익숙한 지도는 한국 중심의 지도이다. 이처럼 어떠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 근대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하나의 문제에 하나의 정답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도를 통해서 새롭게 사고할 수 있다. 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인문학을 옛날에는 인문과학이라 했다. 근대의 지식체계에서 인간의 모든 문제는 과학적으로 설명,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이 왜 사느냐?’는 질문에는 다양한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인문학이 다루는 다양한 문제 역시 여러 정답이 있을 수 있다. 과학과 달리 인문학은 수 천 년 동안 축적되어왔다. 단선적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인문과학이 아닌 인문학이라 말한다. 과학이 아니다. 인간과 관계된 문제에 하나의 답을 요구하면 안 된다.

유럽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로서의 아시아

유럽과 아시아가 붙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시아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분계선은 인공적인 수에즈 운하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하나의 대륙인데 누가 나누었는가? 중국은 유럽처럼 나뉠 수 없는가? 이런 질문은 유럽 근대 지리학의 산물이다. 아시아의 어원은 유럽에서 나온 말이다. 기원전 8세기, 서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살았던 페니키아 사람들은 상업을 하고 살았다. 지중해는 중요한 활동 영역이었다. 그들은 지중해 오른쪽을 아스라고 불렀다. 해가 뜨는 곳, 동쪽이란 뜻이다. 기원전 1세기, 로마제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쳐진 제국이었다. 로마의 식민지 행성 중의 하나가 아시아 행성, 서아시아 쪽을 일컫는다. 예수가 활동하고 처형당한 곳이 아시아 행성이다. 

근대에 와서 항해 기술이 발달하고 지리적 인식이 확장되었다. 유럽은 대항해시대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발견했고 아메리카를 찾아 떠났으며 인도와 중국으로 선교사를 파견하였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아시아 이미지는 어떠했는가? 

계몽 시대의 아시아는 유럽 사람들에게 선망과 열망의 대상이었다. 마르코 폴로가 대표적이다. 그는 중국과 인도를 찬양했다. 이는 근대 국민 국가 형성과 관련이 있다. 국민 국가의 형성에는 세금이 필요하다. 교황에 바치는 십일세를 국가로 이전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인간과 신의 관계는 일대일 관계가 되었다. 사제나 교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고 교황에게 충성하지 않아도 되었다. 프로테스탄트와 국교회도 등장하였다. 교황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서 탈피한 뒤, 과학과 이성의 발달로 인간의 자존감이 높아졌다. 나아가서 ‘내가 곧 하느님’이란 생각에까지도 이른다. 

국민국가는 이러한 것들을 민중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중국, 아시아는 표본이 되었다. 중국은 현세를 중시하고, 과학 기술이 발달했었지만, 유럽은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식민주의 시대에서 아시아를 야만적이고 낙후된 상징으로 변모시켰다. 이는 아시아에 대한 이미지가, 아시아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변한다는 뜻이다.

베버, 헤겔, 맑스가 말한 열등하고 야만스러운 아시아

백인종 우월주의와 유럽 문명의 우월감과 함께 유럽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세 명의 지식인을 통해 살펴보자. 여기 맑스, 베버, 헤겔이 있다. 베버는 유럽의 기독교를 제일 발달하고 근대 문명에 적합한 종교로 보았다. 유교, 불교, 이슬람교는 한 차원 낮고 아프리카는 더 낮은 원시종교다. 종교를 등급으로 매겨서 분류하였다. (외국여행가서 20~30년 전의 한국 모습 같다는 말은 사회 진화론적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과거 역사 기록 방식은 왕조, 군주의 흥망사를 중심이었다. 중국의 경우 200년이 넘는 왕조가 드물다. 괜찮은 왕조가 부패하면 하늘을 대신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새로운 군주가 등장한다. 이는 순환론적 관점이다. 반면의 유럽의 근대 역사는 인간이 진보하고 진화하는 과정을 기술하는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 유럽은 진보하였지만, 아시아는? 아시아의 농경사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순환하지, 진보하지 않는다. 유럽이 볼 때 아시아는 선사시대이며, 아직 역사가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대의 중요한 가치는 자유와 평등이다. 헤겔은 유럽은 하느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고 근대의 법률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했다. 중국은 황제, 군주를 제외하고는 자유가 없는 노예들로 구성됐다. 하지만 유럽은 인간 누구에게나 자유가 있다. 2000년대의 ‘300’이란 영화를 보면 아시아 사람들은 모두 가면을 썼다. 아시아 사람들은 자유가 없다. 개성이 없다. 모두 똑같은 얼굴이다. 유럽 사람들의 이미지 속의 아시아나 아시아 사람들은 야만인인 것이다.

맑스는 인간은 역사적으로 낮은 단계에서부터 발전한다고 했다. 원시사회, 노예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사회, 공산주의사회의 순서를 통해서다. 맑스가 보기에 유럽이 가장 앞서며, 아시아는 봉건사회이자 노예사회이다. 인간의 역사를 발전의 관점에서 보고 여기에다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대입하게 되면서 차별이 심해졌다. 아시아, 아프리카는 야만인들이라는 것이다. 유럽 근대에서 중요한 것은 야만과 문명의 구분이다. 자유와 평등은 문명에서 누릴 수 있다. 세상의 인종을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 등등으로 4~5가지로 분류하였고 이것을 과학이라고 했다. 백인종, 백인의 문명이 가장 우수하며 인종은 영원히 뛰어넘을 수 없다고 했다. 피의 순혈성을 따지기에, 세대가 흘러도 유색인종은 영원히 유색인종이다. 족보를 따지며 ‘양반이네’ 하는 것과 비슷하다. 미국의 어떤 주에선 결혼을 할 때 각자에게 유색인종의 피가 없다는 것을 공증하기도 한다. 이런 것은 유럽의 근대에서 생겨났다. 옛날엔 이러지 않았다. 

아시아 담론의 해체와 재구축; 다양성을 긍정해야 한다.

인문사회과학의 70%는 유럽에서 만들어졌고, 사회진화론/문명/문화적 관점이 담겨 있다. 유럽과 근대적인 지식 체계에서, 유럽은 최고의 종교, 역사, 사회, 우월한 인종을 지녔다. 모든 이가 자유롭다. 아프리카는 정반대이다. 아시아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중간 수준이다. 영화에서 아프리카, 아시아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한국 영화에 나오는 조폭 역할을 과거에는 전라도 사람이 맡았고 최근 조선족, 이주민이 종종 등장한다. 이러한 차별의 원리는 근대가 만들었다. 제국주의,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이론이다.

동아시아에는 전통적으로 ‘천하’라는 개념이 있다. 문명과 야만이 존재한다. 화(華)와 이(夷)다. 
과거 조상들의 인식은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것이다. 문명의 중심은 천자다. 하늘을 대신해서 다스리는 사람이다. 황제라고도 불린다. 천자와 가까운 사람은 문명인이다. 천자와 멀수록 야만인이다. 그래도 유럽에서는 유토피아와 천당을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만이 갈 수 있다는 식으로 본 디 비해, 동아시아는 모든 사람들이 이상사회를 갈 수 있다. 그것이 대동 사회다. 아무리 문명인이라도 인간으로서의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으면 야만, 아무리 야만인이라도 노력하면 문명인이 될 수 있다. 

중국의 명·청 교체기에 조선은 스스로를 소중화라 말했다. 중국은 지역 개념이라기보다 문명 개념에 가깝다. 이는 근대의 인종 차별과 어떻게 다른가? 인종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가 없지만, 문명과 야만은 바뀔 수가 있다. 과거에는 유럽도 희랍어를 기준으로 문명과 야만을 나누었다. 희랍어는 배우면 된다. 중세는 기독교와 이방인이 있었다. 아무리 이방인이라도 개종하면 나의 형제, 자매가 된다. 개인과 집단에게 자신의 노력에 따라 변화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인종은 그럴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차별 중에서 인종 차별은 가장 높은 수준의 차별이다.

김준 교수 ⓒ이찬수

이제까지 유럽이 만든 이데올로기로서의 아시아를 보았다. 이 아시아 담론을 해체하고 재구축해야할 것이다. 근대 아시아의 개념은 유럽이 유럽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측면이 있다. 이제 우리는 아시아공동체론을 어떻게 상상해야할까? 유럽처럼 하나의 문명이나 공동체로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아시아는 다민족, 다문화 공동체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 타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생태계도 한 가지 식물만 있으면 안 되고 다양해야 한다. 양귀비는 페르시아인이었고 고선지는 고구려인이었다. 아시아는 다양한 민족, 문명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역사를 발굴해야 하며, 다양한 민족과 문명이 살 수 있는 다양성의 사유를 인정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찬수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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