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발전은 경제로부터 시작하여 경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 온지가 오래 되었다. 정치인들은 대개가 국민소득만 키우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이 말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런 말에 토를 달지 않고 당연시하는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나타나 주장하는 것이 하나 같이 서로 다르고, 집권 여당이 하는 말과 야당이 하는 말이 거의 정반대로 보이게 되면 진실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 각자가 사적인 특수이해관계를 감추고 경제논리를 앞세워 자신의 주장이야말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 하니 더욱 혼란스럽지 않은가?

교육학 박사가 아니더라도 자녀교육을 시켜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육에 일가견을 가지듯, 경제학적인 배경이 없는 시민들도 생활 일선에서 얻은 지혜와 경험으로 경제정책을 평가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나라의 발전이 단지 국민소득 수준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상당히 오래 전부터 나오고 있는 질문 중에 하나가 한국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일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수준에 머물러 더 이상 발전이 없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즉 우리는 통합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때문에 그간 빈부격차의 해소라던가 국민보건, 청소년 교육 등 내부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고 국민들과 기업의 윤리수준도 높아졌다고....

이와 같이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그런 대답에 동조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으니, 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한 것인지 식별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우리의 장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아전인수 격인 말이지만 그리스도교 신자가 늘고, 심신이 깊은 착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미래사회는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이야기를 정치지도자들이 할 때, 식별을 하고 싶은 것은 모순되거나 상충되는 주장이 많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본성에 따라서 율법이 명하는 것을 실행한다면 비록 율법이 없을지라도 그들 자신이 율법의 구실을 합니다. 그들 마음속에는 율법이 새겨져 있고 그것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이 말하는 대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의 비밀을 심판하는 날에 그들의 양심이 증인이 되고 그들의 이성이 서로 고발도 하고 변호도 할 것입니다.” “실제로 할례를 받지 않고도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오히려 할례를 받고 기록된 율법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율법을 어기는 사람을 심판할 것입니다.”[로마 2:14-16; 27 공동번역]

따라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전문가들이나 정치인에게서도, 사적이고 특수이해에 얽매이지 않은 좋은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식별의 기준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지만, 그분을 모르는 사람들도 보편적인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식별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는 4세기에 사신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Evagrius Ponticus 345-399)가 한 아래 질문을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대 마음의 파수꾼이 되어 묻지 않고는
그 어떤 생각도 들여보내지 마시오.
‘너는 우리 생각 중의 하나냐
아니면 원수가 보낸 생각이냐?‘
그 생각이 집에 속한 것이라면
그대를 평화로 채울 것이오,
만일 원수로부터 온 것이라면
분노를 통해 그대를 혼란케 하거나
욕망을 통해 그대를 흥분시킬 것이오,“[편지 11]

우리는 일부 정치 사회 지도자들이 논쟁이나 정쟁을 하는 중에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에 심리전을 하듯 험한 말로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그런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인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란 상상을 한다. 정치나 사회 활동을 하는 평신도라면 사회의 복음화가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책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니, 그리스도인으로 그런 점잖지 못한 말싸움에 참여하는 사람은 실제로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사도 바오로가 말씀하신 율법도 모르고 할례도 받지 않은 이방인들보다 더 못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는가.

암묵적인 유혹과 회유, 협박, 도발적인 말을 통해서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고, 저항과 적대감만 부추긴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5개의 지옥문을 여는 것이 아닐까. 즉 감각과 감정, 지혜 없는 지성,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를 부추겨 모두가 혼란과 흥분에 빠지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모든 국가가 참여할 새로운 무역규범 수립에 실패한 미국은 개별 국가와 지역을 상대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하는 데 성공하고 있지만, 미국 안에서 이를 반대하는 양심적인 학자들과 시민들의 반발에 부딪치고 있다. 무역을 자유롭게 한 것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거대기업을 위해 작게는 무역과 투자 대상국의 환경을 크게는 지구온난화 등 지구환경을 해치는 규정을 그대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자유무역협정에 이런 독소 규정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 체 하고 지내고 있지 않은가. 누구의 주장이든 법규든 협정이든 곰곰이 읽을 때 우리는 분노하게 되는가 아니면 큰 이득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흥분하게 되는가? 둘 중에 하나라면 진실성이 결여된 것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필자 소개> 박상조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 공부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정책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천주교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중앙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사)기업책임시민센터 이사장(2010-2014.3)을 역임하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이사로 있다. 저서로는 "인간중심발전론적 시각으로 본 대기업정책의 평가"(한국학술정보/2007), "기업의 사회적 책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사람인가 돈인가" (이담북스/2011), "경제시평 -무너지는 바벨탑 수리하기"(이담북스, 2014)가 있다. 2011.11부터 내일신문 에 경제시평을 기고하고 있다.

 

박상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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