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사진출처: IT뉴스)

하버드경영대학에서 강의하다가 <인간중심발전포럼>이란 단체를 만들어 시민운동에 투신한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코르텐(David C. Korten) 교수는 1990년대 초반에 <기업이 세상을 지배할 때>라는 책을 내었다. 초국적 기업이 경제력 지배력을 부당하게 남용할 우려에 대한 글이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 중 상당수도 우리가 정말 그런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코르텐 교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듯 기업 활동 자체를 비난하여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려는 것이 아니라, 윤리라는 고삐에서 풀린 자본주의에 대해 성찰하기 위해서다.

코르텐이 지적한 것은 오늘날 세계적인 빈곤의 심화, 환경의 파괴, 사회의 해체라는 인간이 처한 3중의 위기의 원인과 처방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는 핵심적인 문제를 거대기업의 성장과 지배를 촉진하는 기업규모의 거대화, 부재자의 기업 소유, 기업 경영자의 무책임성을 들고 그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결과와 원인은 악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고, 이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상황은 나선형으로 더욱 첨예하게 악화된다.

열거한 문제점 즉 원인이 만들어 낸 결과는 건전한 사회를 형성하는 균형을 파괴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 또한 코르텐이 제기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공동체는 사라지고 익명성이 강조되는 시장만 남게 되고, 종교적 가치가 아닌 과학적 증거가 판단의 기준이 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결과는 사람들이 존재가 아닌 소유 즉, 영성보다는 금전을 우선하는 사고방식에 중독된 상태가 되었고, 대개의 사람들이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코르텐의 말을 더 온건하게 표현하자면 시장과 공동체 간의 균형, 과학과 종교 사이의 균형, 물질과 영성 간의 균형이 깨어진 것이다. 어떤 시대에 누가 지배적 위치에 있었는지를 알려면 건물을 보면 된다고 한다. 서양의 이야기지만 왕정시대에는 한 나라에서 제일 큰 건물이 정부청사라 할 왕궁이었고, 중세시대는 교회가 가장 큰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큰 건물이 회사의 건물이라는 것이다.

옥스포드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슈마허 박사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대량생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우리 기업의 매출은 50% 이상 올랐는데, 실업률은 오히려 치솟고 있다니, 슈마허 박사가 제시한 명제가 올바른 것임을 알겠다.
 
당면한 문제는 종교를 신봉하든 아니하든 대다수 사람들이 심리적, 정신적 측면에서 실천적 유물론자가 되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불법적인 다단계판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거대기업에 종사하는 배웠다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속한 기업을 유사종교집단과 같이 믿는 경우가 많아 보이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대기업 오너는 신적 존재가 되고, 기업의 사명은 신경(credo)의 역할을 한다. 기업의 “사회공헌”이 11조를 대신하게 되었다.

해링턴(Alan Harrington)은 1960년대에 <수정궁 안의 삶>에서 이런 말을 했다.

“새로운 복음주의는 잘 팔리는 것으로 표현되든 어렵게 팔리는 것으로 표현되든 상관없이, 사업을 위해 거짓으로 포장된 유사 종교적 접근을 사용한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기꺼이 이 기만 속으로 함께 들어간다. 이 새로운 복음주의의 신경은 상품을 주문하도록 하기 위한 믿음의 신경이다. 그것은 광고와 대중의 자발적 믿음을 통해 전달된다.”

이런 사회적 현상을 두고 어떤 종교인은 다음과 같은 뜻의 질문을 했다. 우리 교회와 어느 회사를 비교해보자, 어느 쪽이 더 진지한가? 누가 일을 함에 있어 더 엄숙한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어느 쪽을 더 신뢰하는가? 이런 말들을 베껴 적으면서 우리 같은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큰 꿈을 꿀 수는 없지만, 최소한 현재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만약에 원인과 결과가 악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면, 즉 원이이 결과를 만들어내고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된다면,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 지금 나타난 결과에서부터 시작하여 문제 해결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시작할 수 있는 성찰의 소제는 각자가 신봉하는 종교적 영성에 더 큰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불의한 사회구조를 더 악화시키려는 세력에 협력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서양 모든 종교인들이 오랜 대화를 그쳐 공감하고 합의에 이른 원리가 있다. 첫 번째 원리는 그 이름을 어떻게 부르든 신적인 존재에 대한 신앙(faith)이 신앙체제(belief system)를 우선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화해와 평화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을 닮아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동일한 진리를 바탕으로 전통과 문화에 따라 다수의 종교라는 여러 가지 믿음 체제로 갈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삶의 자세를 가지게 되면 각자가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도 종교간 분쟁뿐 아니라 전쟁과 같은 큰 재앙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의 자세라 한다. 영적 선각자들이 우리들에게 권고하는 것은 각자가 무슨 일을 도모할 때 의도의 순수성을 추구하고,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기 전에 정직성이 있는지를 성찰하자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사람도 아직 그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했지만. 상식선에서 이치에 맞는 말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인 에큐메니칼 정신과도 부합하기 때문이고, 실정법상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와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세계 모든 종교의 영적 지도자들이 한 결 같이 우리에게 권고하는 것이 명상 기도를 통해 진정한 자아 즉 각자의 정체성을 되찾자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이것이 매우 어려고 힘든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경험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평신도들이 그들처럼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해도 그 중요성을 인정하고 시도해 보겠다는 자세를 가진다면, 그것만으로도 더 평화스러운 세상을 만들어 내는데 큰 공헌은 할 수 없더라도, 상황의 악화를 방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한다. 이런 이상적인 신앙생활 자세를 가지게 되는 것이 가능할까?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나중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엘리 위젤(Elie Wiesel)이 <이방인은 없다>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적어본다.

사악한 도시를 방문한 한 남자 이야기입니다. 그 도시의 이름을 일단 소돔이라고 합시다. 그는 그 도시 주민들을 죄에서 구원하기로 마음먹고 그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리에서, 시장에서, 탐욕과 도둑질과 거짓말과 무관심에 저항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그의 말을 듣고 약간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차츰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들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습니다. 살인자는 계속하여 사람을 죽였고, 지식인들은 침묵했습니다. 어느 날 이 불행한 남자의 말에 감동을 받은 아이가 다가왔습니다.

“불쌍한 이방인이여, 아무리 외치고 울부짖어도 희망이 없다는 걸 모르시나요?”
“알고 있단다.”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왜 그만두지 않나요?”
“그 이유를 말해주마. 처음에는 나도 내가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단다. 지금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하지만 오늘도 내가 계속 더 크게 외치고 울부짖는다면 그들이 나를 변화시키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겠나?”

박상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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