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도 이전에 예수님께서 어디선가 “하느님과 맘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붓다나 공자, 노자도 탐욕의 무서움을 경고했고, 우리나라 전통도 부모님을 하늘같이 공경하는 것이다.

재물과 명성과 권력은 예수께서 하느님께서 받은 사명을 시작하시기 전, 악마에게 그러한 것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미리 선언하신 것들이다. 온전히 하느님의 사람이 되지 못한 우리 일반 시민들도 부모를 공경하라, 도둑질 하지 말라 등 계명은 알고 있으면서 실패는 하지만 나름대로 조심하면서 살려고 한다.

누구든 어떤 지위에 있든 간에 세상을 살아가면서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다. 사회라는 것은 개인의 모임으로 구성되는 것이니, 정신적 건강 또는 삶의 자세는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자산이 많은 부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이 글은 우리나라에서 자주 일어나는 재벌가 혈족들의 재산 다툼을 보고 적는 것이다.

평생을 일만하여 자수성가한 재벌총수들의 말년이 예외적인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가 불쌍하기 짝이 없이 끝나는 것 같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옛 어른들이 하신 “나이 앞에 장사 없다”란 말이 생각난다. 대기업 그룹의 오너가 나이가 들면서도 재산을 정리하지 않고 그룹 지배권 행사를 즐기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판단력이 흐려지고, 이미 나이가 들대로 든 자녀들이 재산 정리를 기다리다 지쳐 재벌 총수인 부모도 모르는 사이에 재산 싸움을 시작한다.

범현대 그룹이니 범삼성 그룹이니 하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미 한차례 재산다툼을 한 사람들의 모임이니, 형제자매간의 가족적인 사랑에서 이루어진 연대가 아니고 순수한 이해관계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한 성격의 모임이 있다고 해서 언제까지 결속이 이어질지는 자신들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 다투고 형제자매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모습을 보노라면 과연 서민들이 흔히 하소연하는 “돈이 원수”란 말이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과연 돈이 원수일까? 개인의 힘이 아닌 조직의 힘으로 다스려야 할 규모의 수많은 기업과 그에 따른 소유권의 분배에 대해 창업주들은 여느 부모와 같이 장성한 자녀들에게 어릴 적과 같이 말 잘 듣는 아이들인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다가 적기에 기업 지배구조 정리를 하지 않아 시기를 놓쳐 자녀들이 싸움을 하게 만들고 극단적으로는 자녀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본다.

최근 어떤 재벌그룹에서 나온 “오너의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말을 언론에 유포한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재벌가가 아니더라도 부모님의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말을 외부인에게 할 자녀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병원에 입원을 하여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가 아니라면, 오히려 그러한 사실을 감추려 노력할 것이다.

재벌 총수와 중대한 사업 또는 재산 문제를 의논한 극소수의 혈족이나 가족에 버금가는 최측근이 아니라면 일상적인 경영활동에 있어 오너의 판단력을 문제 삼을 수 없을 것이고, 고용된 임직원들은 이런 사실을 감지했다 하더라도 감히 외부에 말을 흘리기 힘들 것이다.

또한 사실이 그러한지 아닌지는 정신건강전문의사의 소관이지 가족을 제외하고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나라의 경제지도자로 자처하는 공인의 지위에 있는 대기업 그룹 총수에 대해 이런 주관성이 강한 판단을 내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 언론 보도로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는 어떤 재벌기업 창업주 가족들의 싸움을 보노라면,  지난날에 있었던 여러 재벌가 형제들의 낮 뜨거운 재산 싸움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다툼이 완전히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일방이 앞뒤 경위에 대한 설명도 없이 국민을 상대로 사과하는 모습도 보기에 좋지 않다.

왜냐하면 이글을 쓰는 사람을 포함해서 대다수 국민들이 사과를 받을 위치에 있지도 않고, 지금까지 그 사람들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짐작되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소액주주들과 임직원, 소비자에 국한해서 꼭 필요한 말을 했다면 몰라도 될 일이고, 사실 그런 사람들 외에 누가 특정 재벌가의 집안싸움을 구경은 하지만, 자신이 바로 이해당사자 중에 하나로 사과를 받을 지위에 있다고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 사기업의 소유자들이 자신들과 상관도 없는 국민을 끌어들이는 것은 일반시민들에게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는 말이 될 것이고, 내부의 적대자와 심리전에 우리 같은 시민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부모, 자식간, 형제간의 남부끄러운 재산싸움이 드러나는 어려움에 처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다음에 사정을 설명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우리 경제계의 지도자로 나라 경제를 이끄는 데 있어 한 축으로 대통령이 초대하는 모임에도 나가고 있으니, 대국민 사과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을 기만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자기들이 소유한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의 소비자들과 계열회사의 주식투자자들은 선택의 자유가 있어 언제라도 관계를 끊을 수 있다.

아무리 큰 재벌그룹 총수의 자녀들이라 해도 도덕적인 면에 있어는 “배반의 정치”를 일상사로 하는 우리 정치인에 대한 기대에도 못 미치는 도덕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자신의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기본적인 도리도 못하는 재벌 2세, 3세들과 나라 경제를 의논하는데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 이유기 될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정의 일본 재벌 해체 실패담이 생각난다. 일본 재벌의 지배구조가 은행을 중심으로 재편된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모습은 일본을 점령하여 전쟁의 배후자로 지목한 일본 재벌 해체작업에 당초에 의도한 결과가 아니다. 실패의 결과라 할 것이다.

연합국 각자가 점령지를 지배하던 독일과는 달리 일본의 경우는 미국이 연합국과 명목적인 협의만 하고 독자적으로 일본이라는 점령지를 지배하였다. 또한 독일의 미국 점령지를 통괄하던 클레이(Clay) 장군과는 달리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 장군은 본국 정부의 지시에 얽매이지 않고 사실상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중에 하나가 일본 재벌 해체였다.

일본의 기업과 관련하여 미 국무성의 카르텔 위원회는 일본 기업가들이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 사실이고, 외국의 침략으로 일본 재벌들이 전략적 원자재를 지배하려고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에드워드 미 국무성 카르텔 고문은 일본 재벌 해체의 당위성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그것이 목적하는 바는 일본의 군사력을 심리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파괴하기 위해서다. 과거에 전쟁의 수단으로 이용된 일본 재벌을 해체하여 산업의 분산을 꾀하는 것은 평화 목적에도 기여하는 것이 많을 것이다...(중략)...재벌의 특권형태를 파괴하고 다른 여러 민주주의 나라처럼 군국주의자에 의한 정부지배에 대항할 수 있는 기업 그룹을 육성하는 것이 미국의 대일 재벌정책의 중심 목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1947년부터 변하기 시작하였다. 지나친 경제민주화정책은 경제부흥을 방해한다는 비판이 일본 안에서 뿐 아니라 미국 정부와 연합국 총사령부 안에서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재벌 해체를 위하여 만든 <과도한 경제력집중 배제법률>은 재제대상 기업을 325개로 지정하였지만, 회사의 분할이나 처분에 너무나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어 1948년에 이미 149개 기업이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마지막까지 리스트에 남은 기업은 18개 사에 불과했고 그 중에 분할 된 것은 11개사에 불과하여 재벌해체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전범으로 지목된 독일의 카르텔 해체작업도 마대한 기업 인수 자금을 구할 수 없어 흐지부지 되었다.

일본 재벌은 1945년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지만, 동서냉전이란 국제정치적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상당수가 재건되었다. 이전과 다른 점은 은행이 외형상 홀딩회사의 역할을 하면서 여러 계열사에 출자를 하고, 재벌가와 협력하여 통제하는 지배구조를 만든 것이다.

일본 삼정그룹의 경우 사쿠라은행이 계열사인 산정해상화재, 삼정창고, 일본재분, 산정신탁은행, 삼정화학에 5%에 미만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고, 이들 계열사들이 다시 순환출자를 통해 묶여지고, 사장단 회의를 통해 협력하는 것이다.

친족대신 은행이 나섰을 뿐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은행에 지분을 매각한 일본 재벌가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의 지분을 가지고 은행의 도움을 받아 막후에서 재벌그룹을 조종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 재벌의 사장단 회의 외에 우리가 배울 것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재벌은 순환출자로 인해 그룹을 분할할 때 말썽이 끊이지 않지만, 최소한 거대기업 그룹이 분할되어 나라 경제에 대한 지배력은 약화되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박상조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 공부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정책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천주교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중앙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사)기업책임시민센터 이사장(2010-2014.3)을 역임하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이사로 있다. 저서로는 "인간중심발전론적 시각으로 본 대기업정책의 평가"(한국학술정보/2007), "기업의 사회적 책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사람인가 돈인가" (이담북스/2011), "경제시평 -무너지는 바벨탑 수리하기"(이담북스, 2014)가 있다. 2011.11부터 내일신문 에 경제시평을 기고하고 있다.

박상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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