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자산운용이라는 극히 좁은 분야에 있어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사례를 들어가면서 논의했다. 이 소주제는 더 큰 경제윤리에 속하는 것이고, 자산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주제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논리의 흐름을 더 깊이, 그리고 자세히 생각해 본다면 상호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산운용에 따른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의 자산을 축냄이 없이 윤리적이고 안정적으로 관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신 것과 같이 가난한 이를 위해 선용하는 것이 그 최종적인 목표다.

이런 측면에서 2012년 12월 WCC, WCRC, CWM(Council of World Mission), LWF(Lutheran World Federation) 구성원들이 “새로운 국제 금융과 경제 건축을 위한 범세계 에큐메니컬 회의”(The Global Ecumenical Conference on a New International Financial and Economic Architecture)를 마치고 발표한 『상 파울로 성명서』(Sao Paulo Statement)의 주요 내용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의 자산 관리라는 소주제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지나간다면 아쉬움이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성명서의 주요 내용을 다시 읽어면서 성찰할 기회를 가지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래는 성명서의 주요 주제이다.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환경 정의는 배타적이라 할 수 없지만 불의한 국제적인 금융 및 경제체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그리스도교회가 주창하고 있는 새로운 “국제통화조직”(IMO: International Monetary Organization) 창설되어 IMF/세계은행 체제를 대체해야 할 것이지만, <상 파울로 성명서>의 권고대로, 즉각적이고 중기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즉 GDP성장이 아닌 진정한 복지 지표를 사용하고, 규제를 회피하고 있는 금융 부문(shadow banking sectors)을 규율하는 등 금융기관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거대금융기관의 대마불사(too big to fail) 관행을 없애며, 금융거래세를 부과하여 투기성 자금의 이동을 규제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도 기본적인 금융서비스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윤리적인 투자와 지속가능한 발전정책을 수립하고, 누진세를 강화하여 자본이득이 부자들에게만 귀속되어 세습되지 않도록 하고, 여성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며, 탈세와 같은 행위를 제거하고, 자금의 흐름이 가난한 나라에 해를 끼치지 않게 하며, 국가채무를 재조정하고, 대안적 금융과 경제체제 건설을 위한 정보통신이 자유롭게 공유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월가 점령시위(Occupy wall street)의 모습, 2011년 월가를 중심으로 벌어진 운동으로 경제 불안과 부조리에 항의하며 시작됐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전 세계에서 다양한 경제 이슈로 동조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편집자 주)

이러한 대안적인 국제금융과 경제체제의 구축을 위한 성찰의 기준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빈부격차를 줄이고, 환경의 파괴를 막아 만족의 영성(spirituality of enough), 단순한 생활방식, 연대성의 원리와 사회통합(social inclusion) 및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소비를 충동질하는 탐욕의 문화는 하느님의 모든 창조물을 파괴한다. 자연자원은 유한한 것이지만 사람들이 생태계를 지나간 발자취는 이미 지구의 생명지탱능력(Earth's bio-capacity)을 넘어섰다.

따라서, 낙관적이고 지구환경의 지탱이 가능한 수준의 사회복지를 위한 정치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태생적 존엄성을 가진 인격체로 보지 않고, 금융적 경제적 가치로 정의하는 신자유주의가 인간학의 정의를 왜곡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학이 우리의 마음과 꿈을 식민지화하면서 인류에게 그 둥지를 틀었다. 이것은 하느님과 인간성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반대하는 죄악이다. 이러한 생각이 배척과 억압적 행위로 이끌고 가난한 이들과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을 사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께서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로마 8: 22 공동번역) 하신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21세기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양성간의 정의(gender justice)와 생태학적 정의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땅과 지구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바로 제1세계의 주변화 된 모든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는 여성과 어린이들의 들에게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제3세계에서 땅은 상징적으로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여성과 긴밀히 연결되어있다. 여성들을 땅을 갈고 가족을 위해 멀리서 물을 길러 나르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모든 하느님의 창조물에 대한 정의라는 주제는 땅(지구)을 위한 “배려의 경제”(the economy of care)에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이 실현 가능할까? 희망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 세계 시민운동가들은 죽음을 건드리는 경제체제(death-dealing economic system)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으려고 저항하면서 생명을 주는 대안적 경제(life-giving economies)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수많은 가난하고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이 국가의 지원과 대기업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도 다양한 대안적 체제를 만들어 생존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경제적 지식을 민주화하고 탈신화할 필요와 경제적 정의를 기반으로 삼아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복지를 증진할 수 있도록 우리들의 상상력을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매일 영양을 취한 물질적-영적 양식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에게서 받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브라질 상 파울로 모임에 참석하여 성명서를 발표했던 그리스도인 경제학자와 신학자, 시민운동가들은 지금의 불의한 금융과 경제체제의 개선을 꿈꾸면서 성서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나눔의 경제가 아닌 부채와 증권금융화(debt and financialisation)에 의한 경제지배에 대한 반성으로 주님의 기도(Lord's Prayer)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것같이 우리가 진 빚도 탕감해 주시기를 빌고 있다는(마태 6:12)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현금화(manetisation)와 상품화를 통해 삶의 모든 것을 교환가치로 환원하는 비정상적인 현상의 변화를 위한 노력에 대해서는 사도 바오로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로마 3: 24)라는 말씀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브라질 상 파울로 위 모임의 참석자들은 소비주의의 이념을 배척하고 모든 이들에게 풍족하게 제공하고도 탐욕을 무력화시키는(출애 16) 만나의 경제(economy of Mana)를 지지하는 것이다. 과도한 소비주의와 탐욕의 경제를 배척하면서 그리스도인들과 불교신자들이 절제력을 증진하는(루가 12:13-21) “충족의 경제”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코란의 대출에 있어 이자 부과 거부의 정신, 어려운 이들의 쉼과 창조를 위한 “안식년 경제”(the Sabbath economy)와 부의 재분배를 위한 “대희년의 경제”(the Jubilee economy)를 추구하는 것이다.

경제학의 추상적 개념인 경제인(Homo Oeconomicus)이란 말은 인간을 불만족과 이기심의 화신으로 본다. 그리스도교적 사람의 인격 개념은 상생성 내지는 상호성이다. 사도 바오로의 “무슨 일에나 이기적인 야심이나 허영을 버리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시 실속만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십시오.”(필립 2:4-5) 하는 말씀은 그리스도인들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그러한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사명에 대해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고 하셨다. 경제와 그리스도교 영성과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균등한 나눔과 창조와의 통교, 모든 이들에게 풍요로움을 주는 것, 우리들의 노력의 결실을 공동선(common good) 흔쾌히 내놓을 수 있는 자세 등이 그리스도인의 미덕이다.

우리는 성서적 주제(motifs)인 대희년, 샬롬(Shalom), 빵을 쪼개어 나눔(Eucharist), 오이코스(oikos), 코이노이아(Koinonia) 라는 말에서 이미 하느님의 창조와 아울러 하느님이 우리를 초대하시는 언약(계약)적 관계와 함께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상기할 수 있으며(출애 16: 16-21), 생명을 주는 경제체제에 대한 씨앗을 찾을 수 있다. 에큐니칼 운동은 아래로부터 오는 대안적 사회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그것은 불의한 사회경제 체제에 저항하는 것이며, 대안을 발전시키려는 강력한 투쟁이다.

이상 『상 파울로 성명서』 의 정신을 살펴보았다. 이로써 우리는 사회윤리의 원리와 그 자연법적 기초와 성서적 기초에 있어 개혁교회와 가톨릭 사이에 비록 용어의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동일하다(Donal Dorr, 1991)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리(dogma)는 그리스도인들을 분열시키고, 정의를 위한 행동은 일치를 가져온다는 말은, 특히 그리스도교 경제윤리에 적합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신교의 “변방으로부터의 선교”(mission from the margins)와 가톨릭의 “가난한 이를 위한 선택”(option for the poor)은 표현 방식만 다를 뿐 내용은 일치할 것이다.

러시아가 공산화되었을 때 어떤 러시아 정교 신학자가 한 말이 기억난다. “러시아는 예수께서 거부한 악마의 세 가지 유혹을 다 받아 들였다. 돌로 빵으로 만들려하고, 온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며, 세상을 놀라게 할 기적을 일으키려고 했다.” 결과는 경제학자 하이에크가 예견한 대로 러시아 민중들이 “노예로 가는 길”에 들어선 것이었고,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필자 소개> 박상조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 공부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정책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천주교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중앙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사)기업책임시민센터 이사장(2010-2014.3)을 역임하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이사로 있다. 저서로는 "인간중심발전론적 시각으로 본 대기업정책의 평가"(한국학술정보/2007), "기업의 사회적 책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사람인가 돈인가" (이담북스/2011), "경제시평 -무너지는 바벨탑 수리하기"(이담북스, 2014)가 있다. 2011.11부터 내일신문 에 경제시평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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