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1970년~1979년)~(3)

2) ‘서울대생 신민당사 난입사건’-2
1971년 4월 말 경 장기표 선배의 권면(勸勉)을 듣고, 종로 2가 조계사 건너편에 위치한 <신민당> 당사에 찾아 갔다. <신민당>  2층 대회의실에는 이미 학생들 40여명이  <신민당> 대표들과 평화롭게 대화(對話)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 잠시 머물다가, 내가 꼭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회의 도중에 당사를 나와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 11시 쯤 귀가하여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는데, 한밤중에 개 짖는 소리 등 왁자지껄한 소란(騷亂)에 깨어 보니 50대로 보이는 형사(刑事) 한 사람이 내 방까지 침입하여 나를 강제연행하려 하였다. 나는  엉겁결에 "영장 제시하라!“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형사는 잡고 있던 내 허리춤을 슬그머니 놓고 방안에서 물러났다. 그들은 다음날 아침 9시 쯤 영장을 제시고 나를  <동대문 경찰서>로 연행해 갔다.

내가 피곤하여 잠에 골아 떨어져 있는 동안, 그들은 나의 도주(逃走)를 막기 위해 영장이 발부되는 때까지 여러 시간을 집 밖의 사방을 둘러싸고 망을 보는 수고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때는 아직 경찰이 그 만큼의 법을 준수하려 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나의 영장 발부를 위해 하루 밤을 허비(虛費)하는 동안, 나의 “7인의 공범자들”은 이미 조사를 끝마치고 유치장에 유치(留置)되어 구속영장(拘束令狀)의 발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동대문 경찰서에서 그들은 나를 다시 어디로인가로 연행해 갔다. 이번에는 그들은 나의 눈을 가리고, 경찰차가 아닌 검은 세단에 태워 뒷좌석 가운데에 앉히고 두 사람이 팔로 나를 붙들고 있었다.

▲ 퇴계로 쪽에서 바라본 남산 중앙정보부 본청 전경. 왼쪽 안테나가 솟은 본관 건물 밑이 악명높은 '지하실'이다.(출처:나무위키)

한 15분 정도의 거리라고 짐작되는 곳에 도착하여 2층으로 끌고 올라간 그들은 나의 가린 눈을 풀었다. 그곳은 모든 창문에는 블라인드가 가려져 있고, 천정에는 전구가 하나 켜져 있어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컴컴하였다. 방 한 구석에는 군용침대가 하나 덜렁 놓여 있는 두 평 정도의 사무실 같은 공간(空間)이었다.

“이곳이 그 악명(惡名) 높은 <남산 중앙정보부>인가?”라고 혼자 말로 중얼거리는 순간, 그들 중 한 자(者)가 손바닥으로  나의 목덜미를 갈기며, “웃옷 다 벗어!”라고 소리쳤다. 주섬주섬 웃옷을 다 벗고  팬츠와 런닝셔츠 차림이 되고 나니 4월 말의 봄날 기온에도 으스스 소름이 끼쳤다. 그러자 그자는 내 바지에서 가죽 혁대를  뽑아 들고  나의 등을 마구잡이로 갈기기 시작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무작정 한참 동안을... 나는 서 너 대까지는 심한 통증(痛症)을 느꼈지만, 그 후로는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저 멍멍한 상태이었다.

서울 구치소에서의 일이었다. 폭풍 뒤에 찾은 오래간만의 평온 속에서 정신을 차린 나는 연행될 당시 호주머니에 있었던 천 몇 백 원인가로 내의(內衣)를 구매(購買)하여 갈아입고 있을 때였다. 앉아도 한 방, 서도 한 방, 누어도 한 방이라는  1.75평의 좁은 감방에서 서로 몸을 비비고 보낸 며칠 동안에  어느덧 친근해진 동료 수감자 7인 중에 한 사람이 내 등을 만지며,  “어이 김 군! 자네 등이 왜 이렇게 새깜해?”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중앙정보부>에서 조사 받을 때, 구타당한 흔적(痕迹)이라는 것을 그가 알 리가 없었고, 그 당시에는 또한 나도  알지 못했다.

고문(拷問) 중에 가장 견딜 수 없던 것은 그들이 스리퍼의  바닥으로 내 입을 문지를 때에 느꼈던 모멸감(侮蔑感)이었다. 가죽 혁대도, 군용 야전 침대 각목도, 잠 못 자게 하는 고문도 이보다 더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아무리 이러저런 고문을 해도, 왜  여기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 영문을 모르고 있던 나에게서는 7 명의 공범(共犯)들이 진술해 놓은 사실들 이외 것이 나올 것이 있을 리 만무하였다.

마침내 그들이 먼저 지쳤다. 그런 가운데서 내가 자백한 유일한 사실은 장기표 선배가  <신민당> 당사(黨舍)에 항의하러 가라고 권했다는 것이었다. 나의 배후(背後)였던 그가 평소와 다름없이 양복 차림에 서류가방을 옆구리에  낀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은 내가 연행(連行)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장 선배에게 부끄러웠고  미안했다. 그자들은 장선배가  “국사범”이라고 위협하였다. 아마도 나를 겁주기 위한 거짓 협박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날로 곧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장 선배의 뒷 소식이 궁금하였으나 다행히 그는  구속자 명단에서는 빠져 있었다. 그런데 장 선배는 그해 11월  ‘서울대생 내란 예비 음모 사건’으로 4인의 한 명으로 정말 “국사범”이 되어 구속되었다.

5월 하순 쯤, 대의원 의장인 최명의(崔明毅,당시 법학과 3년)가 김철수(金哲洙) 교수(헌법학)와 함께 구치소로 면회를 왔다. 그들은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법대에서도 우리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연일(連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사건 덕택에 야당이 총선(總選)에서 약진(躍進)을 하였다고 격려해 주었다.
 
석방된 뒤 한 달 뒤인 6월 쯤, 김증한(金曾漢) 교수의 민법총론 강의를 듣기 위해 대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김 교수의 강의는 법학과, 행정학과 2학년 동급생 160명 전원이 함께 듣는 유일한 강의였다.

연행되던 날의 나의 에피소드를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환갑에 가까운 근엄한 노교수(老敎授)는, “법학도라면 영장 제시를 요구할 정도는 되어야 하지!”라고 했다. 당신은 농담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그 말은 법학과 2학년 전체 앞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정말 이유도 모른 채 이 사건의 주동자가 되었지만, 그 때만 해도 아직 “두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로 표상(表象)되는 법관이야말로, 유일한 나의 목표였다. 그런 나의 꿈이 1971년 ‘사법파동’으로 금이 가고, 1972년 ‘유신헌법’으로 무너져 내리기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그런 나의 의지와는 달리 동료 학생들은 나를 더 이상 “개천에서 난 용”이 될 꿈을 품은 고시생으로 놔두지 않았다. 그해 6월 이후, 교련반대, 학원자율화, 부정부패 반대, 등의 쟁점으로 대학의 시위가 격렬해지자, 고시공부에 몰두(沒頭)하던 일부 법대생들까지 가두로 몰려 나갔다. 나는 더 이상 그 시위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감옥에서 엊그제 석방된 “민주인사”의 체면상 고시공부를 하고 앉아 있을 수 없어 가급적 시위대의 중간쯤에서 따려가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몸을 숨기려한 나의 등을 떠밀어 그 시위대의 선두에 서도록 했다.

1972년의 새 학기에 들어선 어느 날, 게시판에 전원배 (全元培)교수(법철학)의 연구실로 집합하라는 공고가 붙었다. 전 교수의 연구실로 가보니 이미 십 수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전 교수는 한 사람 씩 돌아가며 당시의 시국에 대한 우리들 각자의 생각을 소신껏 말해 보라고 했다. 우리는 주저주저하며 각자의 의견들을 피력했다. 다 듣고 난 전 교수는 다소 격앙(激昻)된 어조로, “국민은 민주주의, 인권, 자유 등 헌법적 가치를 지켜지도록 감시, 비판, 반대할 책임이 있으며, 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마땅히 그런 정신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力說)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독재정권이 반정부 시위를 막아 보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2,3학년 가운데, 소위 “문제 학생들”을 모아 특별지도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법대에는 그 특별지도 교수로 전 교수를 지명(指名)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첫 모임에서의 전 교수의 말은 독재정권의 지시와 역행되는 것으로 오히려 시대의 요구에 소극적이고 어정쩡한 나를 격려하고 분발(奮發)시켰다.

사법파동이후 ‘정의의 여신 니케’가 아니라 ‘불의의 부역자(附逆者)들’로 타락한 법관에 대한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나에게 전 교수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제시한 것이었다.

법철학은 4학년 전공과목이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전 교수를 강의를 들어 본 적이 없었고, 법철학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지만, 전 교수의 지도를 받아 전 교수와 같은 법철학 교수가 되는 것도 나의 다른 하나의 대안(代案)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해 가을 나의 대안적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전 교수가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별세(別世)를 하고 만 것이다.

그해 가을인가였다. 법학과 B반의 Y군이 나를 찾아 왔다. 김증한 교수의 민법 이외에는 강의를 같이 들을 기회가 없었고, 때때로 있었던 법대 시위나 남쪽 도서관에서의 농성에서도 전혀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모범적인 ‘고시파’였던 그를 나는 잘 알지 못했다.

그는 ‘대만(臺灣) 연수’에 관해 중요한 정보를 하나 알려주었다. 당시 학생과(學生課)는 그해 여름방학의 ‘대만 연수 프로그램’에 법대 대표로 나를 추천한다는 공지를 게시(揭示)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Y의 정보에 따르면 박 정권이 총통제(總統制)를 도입하려고 획책(劃策)을 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이 그 일환(一環)으로 반정부 성향의 학생들을 대만에 연수를 보내어, 총통제에 대한 반감을 미리 무마(撫摩)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 게시문을 봤을 때는 독재정권의 그런 의도(意圖)를 알지 못했고, 단지 그 때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외국여행을 한번 해 보자는 생각에 별로 주저함 없이 그 프로그램에 신청을 하려 하던 참이었다. 나는 그의 고마운 정보 덕택에 대만연수를 신청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1975년 내가 ‘민청학련사건’으로 두 번째 투옥되어 있을 때, 그는 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 Y는 김철수 교수나 김증한 교수 전원배 교수 등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熱望)”과, 자신은 비록 투쟁에 직접 나설 수는 없지만, 주저(躊躇)하고 있었던 나에 대한 격려(激勵)와 동조(同調)의 마음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들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소위 ‘신민당사 난입 사건’의 재판장으로서 검찰의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정의의 여신 리케’의 표상이 되셨던 양헌 판사님. 그 후 양 판사님은, 70년대 이래 기독교 민주화 운동의 성지(聖地)인,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 변호사 사무실을 마련하여 오늘도 약자(弱者)들의 편에서 일하고 계신다.

변호인단을 구성하여, 우리를 위해 무료 변론해주심으로써 우리의 행동에 명분을 제공하셨던 이병린 변호사님. 그리고 1970년대에 검찰의 횡포와 압력에 저항하여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셨던 많은 판사님들. 이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당신들이 계셔서 나는 행복했었습니다.”

<필자 소개> 김경남 목사 1949년 (66세) 전남 완도 생 광주제일고등학교, 서울법대, 한국신학대학 졸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총무, <한국민주화기독교민주동지회> 동경자료센터 관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무주<푸른꿈고등학교> 교장, <한국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업본부장,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김경남 목사  gisoo9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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