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경제윤리(2) "경제윤리 이야기에 대한 일반적 거부감"

이 글을 쓰면서 앞으로 돌아올 반발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다. 논객이었던 한비자(韓非子)는 설득과 유세에 따른 위험성을 알리는 “세난”(說難)이란 글을 썼지만 스스로 필화(筆禍)를 면치 못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면 반기업, 반재벌 정서를 조장한다는 말과 함께 좌파니 진보니 하는 꾸중을 듣게 되고, 윤리적 투자 즉 개인과 단체의 사회책임투자를 말하면 이번에는 거꾸로 극우니 보수니 하는 소릴 듣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구분해서 말하지만, 의식주에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은 돈 쓰기라 하고, 사업을 일으키거나 저축을 하는 것을 돈 벌기 또는 투자라 하니 동일한 경제행위의 2가지 측면에 있어 사람이 지켜야할 윤리에 대한 거부감이나 반발은 신앙인이든 아니든 정도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또한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증권이야기냐? 투기를 하라는 말인가? 하는 힐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비난 섞인 말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 글은 기본적으로 소비든 저축이든 투자든 모든 경제행위에 있어 지켜야 할 윤리적 기준을 논의하자는 것이고, 그리스도인 특히 교회와 종교단체가 은행에 예금하거나 소액이라도 회사채 또는 주식을 살 때 교회와 단체의 지도자들이 지켜야 할 몇 가지 보편적인 그리스도교적 윤리를 논의한다고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가 확인한 대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고 스스로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부자가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극빈자나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또한, 무신론적 유물론자가 되어야만 큰 재력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의 역사에서 우리 모두가 두 눈으로 확인한 사실은 맑스-레닌의 유물론을 따랐던 모든 국가의 주민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고, 광신적인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지배하는 국가의 모든 주민들은 전쟁과 폭력, 억압에 시달리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어떻게 하여주는 것이 좋을지 나는 이미 뜻을 세웠다. 나는 너희에게 나쁘게 하여주지 않고 잘하여 주려고 뜻을 세웠다. 밝은 앞날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나를 부르며 나에게 와서 빌기만 하여라. 그렇게 하면 들어 주리라.”(예레 29: 11-12)는 것이고, 예수께서도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 10)고 하셨다. 우리시대에 와서 알아낸 것은 이러한 말씀이 모두 “빈자우선”(貧者優先: option for the poor)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돈의 종교”(money as religion)라 이단으로 판정받은 “믿음의 말씀”교회(“The Word of Faith" church)라는 데서는 번영성경(prosperity gospel)을 가리치고 있다. 그 집단에 속하는 부르스 윌킨스(Bruce Wilkins)는 자신이 롤스 로이스 승용차를 3대나 소유하고 있다 자랑하면서 사람들에게 <역대기상>에 나오는 야베스와 같이 긍정적인 자세로 기도하기만 하면 하느님께 들어주시지 않을 수 없다고 가르쳤지만, 그 후 경제위기 중에 자신이 지녔던 재산이 다 없어졌다고 한다. 그들이 자의적으로 선별한 말씀이다.

“그의 어머니는 ‘고생하며 낳아다'고 하면서 그에게 야베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야베스는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이렇게 빌었다. ‘부디 저에게 복을 내리시어 제 영토를 넓혀 주시고, 손수 액운을 막아 어려운 일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느님께서 그가 구한 것을 들어 주셨다.”(역대기상 4: 9-10) “야베스의 기도”(the Jabez prayer)는 겉보기에 탐욕에서 나온 것 같지만, 공의로우신 하느님께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신 것은 우리가 모르는 올바른 지향을 아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칼 라너도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그런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했으니, 그분의 뜻을 누가 짐작할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풍성”한 생활은 개인의 생계유지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에 통합적인 인간의 발전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정치범으로 처형을 당하신 것 자체가 그분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치-경제와 종교의 상호관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정치학자였던 스트라우스(Leo Strauss)는 <서양정치찰학사>에 예수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모시던 아우구티누스, 아퀴나스, 마틴 루터, 쟝 칼뱅, 후커를 정치철학자 명단에 포함시켰다. 이로써 교회가 말하는 것은 정치적인 함의를 지닌 것이고, 정치와 경제를 온전히 구분하여 분리할 수 없으니 당연히 경제와도 관계가 있는 것이다.

경제윤리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일반적인 반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먼저 세상의 일반적인 윤리수준을 반영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그리스도교 국가라는 미국의 경우에도 금융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조사해본 결과 신앙인인 자산운용자와 신앙인이 아닌 자산운용자 사이에 윤리적 잣대에서 아무런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을 따로 구분하여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그리스도교 신자의 이중적인 생활에 대하여 교회의 지도자들이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그들 또한 이중적인 사고를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언행을 하여 신자들의 의식이 더욱 흐려진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권력자나 재력가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일반 신도들을 대하는 태도와는 달리 오히려 우대하면서 신자들 앞에서 하는 윤리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설교가 무슨 힘을 발휘할 것인가?

이런 권고가 생각난다. “임금이 즐기는 맛난 음식을 바라지도 말아라. 그것을 먹으면 화를 입는다. ...인색한 사람과 한 식탁에 앉지도 말고 그가 즐기는 맛난 음식을 바라지도 말아라. 그것은 네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잠언 23:3, 6-7)

<필자 소개>

박상조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 공부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정책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천주교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중앙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사)기업책임시민센터 이사장(2010-2014.3)을 역임하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이사로 있다.

저서로는 "인간중심발전론적 시각으로 본 대기업정책의 평가"(한국학술정보/2007), "기업의 사회적 책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사람인가 돈인가" (이담북스/2011), "경제시평 -무너지는 바벨탑 수리하기"(이담북스, 2014)가 있다. 2011.11부터 내일신문 에 경제시평을 기고하고 있다.

박상조 pxzsim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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