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지난 2월 28일 열린 WCC총회와 한국교회 개혁을 위한 열린 공청회에서 신학자 대표로 발표한 이정배 교수(감신대, 생명평화마당 공동대표)의 글로 필자이 동의를 얻어 게재함을 알립니다.

한 종교학자는 금번 WCC 한국 준비 위원회 측의 공동선언문 파동을 보며, 그 모임을 일컬어 ‘슬픈 향연’이라했다. 금번 부산 10차 대회가 세계 기독교인들은 물론, 그리고 세상과 함께하는 축제가 되어야 할 것인데, 자신들의 좁은 울타리에 갇혀 누구도 주목치 않을 일회성 행사로 끝날 것이란 우려를 표한 것이다. 어린 신학생 시절부터 공감하며 동경해 마지않았던 개신교의 자부심이자 상징처럼 여겨왔던 WCC 였으나, 목하 경험된 실상은 과거의 명성과 달랐고 여느 단체와 다르지 않게 추했다. 예수정신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 곳간을 위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는 단체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눈엔 하늘 찌르는 이 땅의 소수 초대형교회들만 보였다. 약화된 서구 교회를 대신할 든든한 후원자로서 둑 무너지는 것 모르고 허세에 빠진 한국 교회가 제격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내건 슬로건- 생명의 하느님, 우리를 정의화 평화로 이끄소서( Life of God, leads us to Justice & Peace)- 역시 대회를 치루기 위한 구호로 그칠 공산이 크다. 제 3세계의 가난, 곧 정의의 문제가 서구 기독교에게 부담이었기에 주제 선정 마지막 순간까지 이를 생략 내지 약화 시키려 했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더더욱 핵보유국이 된 북한과 대척상태에 놓인 한반도의 위기상황 하에서 공산주의(반공주의)를 타파대상으로 삼은 공동선언은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졸견이었다. 공산권 치하의 기독교인들과 대화했던 숱한 경험들이 있었음에도 WCC 총무는 이에 바른 답변을 하지 못했다. 정교회가 공동선언을 쓰레기 취급하며 크게 분노한 것도 이 때문이다. WCC가 유불선이 공존하며 1919년의 경험을 지금도 기념하는 이 땅, 유교문화권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동북아 허브인 대한민국의 실상을 배려치 않는 것도 유감이다. JPIC 주제가 특정 종교, 이념의 힘만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님을 알면서도 말이다. NCCK가 한국 7대 종단으로 구성된 한국종교인 평화회의(KCRP)의 주요 首長敎(수장교) 중 하나이면서도 개종주의를 천명하고 가치다원주의 사조를 배격한 것은 이웃종교인들에 대한 몰염치였다. 이런 시각을 묵인한 WCC 방문단 역시 산하 ‘종교 대화국’을 통해 자신들이 축적된 역사를 부정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성서를 신앙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과 성서 무오설은 차원이 다른 사안이다. 성서가 돌이 아니라 진정코 빵이 되려면 때론 의심의 눈과도 맞닥트려야하기 때문이다. 성서 66권 안에 하느님 계시가 종결되어 있다는 확신 또한 하느님을 문자와 과거에 가두는 성서시대의 율법학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성서 안팎에서 하느님 계시를 ‘자기 발견적’ 눈을 갖고 찾고자 하는 것이 오히려 살아계신 하느님을 옳게 믿는 일일 것이다. 혹시 성서무오를 빙자하여 교회와 목사의 무오까지 의중에 두었다면, 그것은 하느님마저 방편 삼는 종교적 탐욕을 적시할 뿐이다. 이렇듯 모든 사안을 종합해 볼 때, 예수께서 드신 채찍은 우선 허세에 빠져 자신의 실상을 보지 못하는 한국 교회와 공동선언을 품고 유/불리를 셈하는 이들에게 향할 것이고, 정작 세상을 구원하겠다면서 스스로 나락에 빠져든 WCC를 내리칠 것이 분명하다. 이를 두렵게 여긴다면 初心(초심)으로 돌아가 虛心(허심)되기를 熱心(열심)으로 빌어야 할 것이다.

주지하듯 2013년 WCC 대회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몇 년 앞둔 상황에서 열리는 개신교 최대의 축제이다. 그렇기에 본 대회는 분명 종교개혁 500주년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나, 아직 그 전모가 밝혀져 있지 않다. 한국 신학계 안에서는 지금 루터의 으뜸 개혁명제를 원용하여 ‘오직 ’생명평화‘ 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명제 하에 신학적 제 견해를 수렴하는 중이다. JPIC 주창자 봐이젝커의 말, ’JPIC 주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기독교 정신(구원)의 구현은 아직 요원하다‘사실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본회퍼 역시도 루터가 오늘 다시 개혁한다면 ’오직 믿음‘이란 말을 달리 표현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루터 시대와 달리, 오늘 우리 교회에 있어 믿음은 율법화 되었고 행위와 단절되었으며, 윤리보다는 기복적이고 지성과 고립된 상태로 오직 교회에서 통용되는 신조로서만 기능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두 번째 종교개혁이 말해지고 교리가 아닌 영성을 지향하는 새로운 기독교운동의 조짐들이 여기저기서 발현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열망 역시 오직 작은 교회, 소수의 견해일 뿐 대다수 중대형 교회들은 자신들에 대한 세상의 염려에 마음을 열기는커녕 하느님 役事(역사)에 무지한 세상의 오판으로 여기며 자기변호에 급급하다. 일찍이 함석헌은 “믿음은 상식적이어야 한다. 상식은 곧 세상을 앎이요, 세상을 앎이란 곧 이웃을 사랑함이다. 상식에 어그러진 믿음은 사랑 없는 믿음, 그것은 뿌리 없는 나무다...”라고 하였다. 이 말대로라면 믿음에 집착할수록 정작 사랑에서 멀어지는 괴이한 오늘의 현실이 잘 이해된다. 상식의 실종 그것은 기독교의 타락과 동의어가 되고 만 것이다. 상식을 필연적인 것으로 느끼고 수용하는 일이 바로 신앙이고 종교의 길이다. 목사의 크기를 교회의 크기에 있다고 믿는 것은 상식이 아니라 탐욕이다. 오히려 그것이 사랑의 정도에 비례한다고 믿는 것이 상식이자 성서적 관점일 것이다. 사람의 완성은 사랑에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기독교의 본뜻 인 까닭이다. 근본(뿌리)없는 기독교, 커지고 넓어졌으나 한 모금의 물도 마실 수 없을 만큼 오염된 교회, 그렇기에 그 문을 박차고 나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새 종교, 새 교회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배당한 기독교인들의 양산은 오로지 대형교회 탓이다. 예수의 실패를 의중에 두지 않고 세상의 성공만 추구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말씀대로라면 이들은 뭇 영혼을 실족케 한 죄 값으로 연자 맷돌을 목에 걸어야 옳다. 자칭 한국 교회를 대표한다는 그들로 인해 뜻있는 젊은 목회자들이 시작부터 좌절하고 있다. 다시 함석헌의 말을 들어보자. “그대는 현실(성공)주의를 자랑하려나. 나는 영원한 실패자란 말을 들으면서도 예수의 발밑에 서서 이상주의자가 되련다.”  여기서 이상주의는 누구나가 하느님의 자녀이자 영적 존재임을 믿는 삶의 태도를 적시한다. 하지만 오늘 교회는 돈의 힘에 굴복했고 거룩의 미명하에 자신의 영혼도 팔아 버렸다. 목사가 세습되고 성직이 돈으로 거래되며 수많은 교회가 사고 팔렸고 - 교인 수가 흥정의 관건이다- 교회정치로 돈 선거가 된지 오래이며, 성전 건축에 편법이 난무하고 구원이 헌금액수와 무관치 않게 된 것이다. 기독교 기업가들 중에는 저임금을 강요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면서 교회에 바치는 헌금 액수를 자랑하는 이들도 있고, 교회 정치판에 터 잡고 기생하는 평신도들도 많아졌으니 이 모든 것이 목사들 탓이다. 잘못 가르쳤고 스스로 그렇게 현실주의자로 살았던 결과일 뿐이다. 믿음과 은총의 이름으로 성공을 가르쳤고 범죄도 묵인했으니, 종교개혁 원리들이 중세의 면죄부보다 더 타락했다는 평가 역시 낯설지 않다. 자본화된 교회 속에 하느님 영이 있을 리 없고 부자들만 선호될 터, 모두가 하느님 자녀란 사실 역시 허울 좋은 말일 뿐이다. 이는 결국 기독교가 자본을 기독교화 시킨 것이 아니라, 자본이 기독교를 자본주의적으로 만든 결과라 하겠다.

일찍이 함석헌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통해 이 땅에 기독교가 전래된 목적을 계급주의, 사대사상 그리고 숙명론의 난파에서 보았다. 이런 난제를 해결해야 할 기독교가 오히려 성직자의 종교가 된 것을 그는 기독교의 타락이라 했다. 성직자의 종교가 된 탓에 민족의 난제가 풀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심화시킨 것을 걱정한 것이다. 기독교의 종주국을 미국이라 여긴 탓에,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봐라보았듯 교회의 대미 의존도는 여전히 뿌리 깊다. 스스로함의 정신 보다는 미국 등 서구에서 나온 목회이론, 교회 성장학, 건축양식, 성서교재를 비롯해 심지어 근본주의 이론까지 베껴 익히려 한다. 여기에는 진보주의 교회와 신학도 이런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작 그들의 신학교는 아시아 학생들 없이는 운영도 어려운 상황이고 새칸드 캐리어가 된 교회의 리더십으로 기성교회가 무너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또한 교리지상 주의로 인해 교회가 민족을 편 가르는데 일조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문자는 죽이고 영은 살린다는 성서 말씀이 있듯 이 땅의 기독교는 문자의 종교가 되어, 마을 공동체는 물론 가족 구성원들마저 적과 아군으로 갈라놓았다. 더욱이 자본주의와 짝하면서 성공한 소수의 대형교회와 대다수 미자립 교회의 격차 역시 주목할 일이 되었다. 기독교 교회 안에서 조차 새로운 계급이 생겨난 까닭이다. 그럴수록 소수 대형교회가 지닌 권력은 일반 언론 매체도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무섭고 지대해졌다. 모든 권력이 속성상 다르지 않으나, 거룩의 탈을 쓴 교회 권력은 별개처럼 인식되어 종종 두려움의 대상이 되곤 했다. MB 정부 시절 여실히 보았듯이 정치와 결탁하면서 무소불위가 된 교회권력이 저지른 횡포는 WCC 공동선언문에 이르기 까지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숙명론 역시 새로운 형태로 기독교 안팎에서 확산되고 있다. 과거의 숙명론이 거듭된 外憂內患(외우내환)의 탓이었다면, 기독교가 확대재생산한 변종은 은총의 낙관주의, 내지 맹목적 예정론 혹은 필연(기복)적 승리주의의 모습을 띠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것 없다는 맹목, 예정된 신앙인에게 운명처럼 다가오는 축복과 피안의 천국 신앙은 스스로함의 주체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본래 자주할수록 ‘큰 이’를 섬길 수 있는 법, -자주하는 인격-인데 교회는 처음부터 노예근성(씨종)을 가르쳐,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실종시킨 것이다. 이런 확신이 물질(자본)주의와 연결될 경우 기독교 신앙은 쉽게 맹목적 기복성에 굴복하고 만다. 믿음으로 산을 옮기라는 말은 산과 같이 돼버린 나 자신을 하느님 속에 던질 때만 오로지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도 교회 수보다 성직자 수가 몇 곱이나 많아 질 것이고 더구나 상대적으로 학습이 뒤진 이들로 신학교가 채워지는 현실일 터인데, 장사 속으로 변질된 성직, 신앙을 가장한 비합리성의 폐해가 가중될 것으로 사료되어 큰 걱정이다. 이 모두는 기독교가 진리를 위하지 않고 정작 자신만 위해 존재한 탓이다. 

이렇듯 한국교회를 향한 질타는 소수 대형교회, 한기총 산하 보수교단에게만 향해 질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속한 진보 진영, 에큐메니칼 그룹에게도 똑같이 적용 되어야 옳다. 주변에서 ‘닫힌 진보’가 ‘열린 보수’보다 못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그 현실을 보아왔다. 4대강을 비롯하여 역사 바로 새우기 그리고 경제정의 실천 그리고 교회 구조개혁을 위해 앞장 선 이들이 바로 열린 보수학자들이었다.(여기서 필자는 역사학자 이만열, 환경학자 김정욱, 교회개혁가 박득훈, 교회 언론가 방인성 등을 들고 싶다. 물론 그렇다고 진보 진영 측의 귀한 인사가 없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우리의 상대가 교리, 성장, 축복의 족쇄에 매여 있었다면, 정작 우리는 ‘자기 義(의)’에 갇혀 있었다. 2013년 새 체제를 열지 못한 민주당이 자기쇄신을 못하듯, 진보 에큐메니칼 진영의 자기 성찰 역시 부족한 듯 보인다. 정말 우리 시대 진정한 진보가 있는지 의문이다. 인간은 생래적으로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에 배타하는 법이다. 따라서 보수가 인간의 본성이라고들 말한다. 그럴수록 진보란 힘겹고 어려운 과정의 결과물이다. 자신을 거듭 성찰하지 않고 과거에 안주하거나 기득권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앞전의 진보는 더욱 추하다. 진보는 과거의 훈장이 아니라 미래적 성향이자 가치인 까닭이다. 금번 공동선언문 사태에도 자기 義(의)에 사로잡힌 진보 측 인사들의 과오가 덧입혀져 있다. 평소 진보 측 인사라 알려진 이들이 어느덧 교권, 명예, 성공, 자기 욕심의 좌표에 잇대어 있었던 것이다. 타협을 위한 현실적 이유가 있었겠으나, 대회 자체의 정신과 영혼을 손상시키면서까지 그리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후의 잔을 피하고 싶었던 예수, 정작 스승 예수의 실패(죽음) 속에서 희망을 보았던 제자의 길과 한없이 멀어진 탓이다. 본사태가 수습, 처리되는 과정에서도 NCCK는 물론 가맹 교단 책임자들이 보여준 모습 역시 이해할 수는 있으나, 참으로 처절했다. WCC 대회를 치러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금권과 교권을 지닌 한 사람의 오만과 과시욕을 덮어 버린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잃은 채, 수많은 이들의 헌금과 세금으로 치러지는 WCC 대회가 어떤 의미이며 그 이후는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미 이웃 종교인들로부터 내심 비웃음을 받고 있는 현실을 알고 있는지도 묻고 싶다. 이처럼 소위 에큐메니칼 진보 그룹의 물타기와 현실안주 그리고 자기과시가 기독교의 미래를 후퇴시켰고 WCC 대회의 본말을 전도한 것을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에큐메니칼 진영의 미래를 위해서도 과거와 오늘을 대변해온 귀한 분들과 더불어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다. 과거 독재시절 민주화 투쟁을 위해 힘겹게 살아온 그분들의 과거를 존중한다. 당시 그분들이 있었기에 기독교는 한국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았다. 크게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그 명성만으로 내일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지속될 수는 없다. 주지하듯 목하 에큐메니칼 그룹은 참으로 지리멸렬하며 제각각이고 궁색하다. 모이기도 힘들고 하나의 소리를 낼 역량도 키우지 못했다. 의욕의 부재 탓도 있겠으나, 물적 토대가 빈약한 것이 주된 이유라 하겠다. 에큐메니칼 후학들을 키워내기 위해서라도 절대 빈곤한 목회자, 평생 떠돌이 강사직을 수행하는 젊은 신학자들을 후원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좋은 생각과 의지를 갖고 한국 교회를 바라보는 건강한 목회자들이 존재하고 신학자들의 열정도 아직은 살아있다. 평생 작은 교회 운동을 하고 농촌에서 정주목회를 하며 도서관 사역 등을 통해 대안적 기독교운동을 펼치고 있는 후배들이 있는 한, 그들을 지켜보고 돕는 일은 의당 선배들의 몫이다. 이에 필자는 본 지면을 빌어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이미 생명평화마당을 통해 언급했듯, 첫째는 작은 교회를 근본 가치로 하여 대안적 교회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의 모임을 교파를 초월하여 성사시키는 일이다. 소수 대형 교회만이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들이 내일의 한국 교회의 희망인 것을 자타가 인정토록하기 위함에서이다. 둘째는 에큐메니칼적 가치를 갖고 기독교 공동체에 몸담을 후학들을 위한 후원 단체를 결성하는 일이다. 돕지 않은 채, 시대를 욕하고 후학들을 나무라는 것은 이제 그쳐야만 한다. 어느 방식으로든지 기금이 조성되고 운용되어야 에큐메니칼 운동의 미래가 있을 법하다. 불고 싶은 대로 부는 성령의 바람이 누군가의 마음을 감동시켜 이런 일을 가능케 할 것이라 믿고 싶다.

이제 마지막으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한국 교회에게 외치는 ‘돌의 소리’가 있다. 초록이 동색 되어 누가 누구를 힐난할 수 없고 누구도 말할 자격을 잃었기에, 길가의 돌이 외치게 된 것이다. 예수의 채찍을 피하고 싶다면, 더불어 그 소리에 청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역사는 처음(始)이 있어 마지막(終)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終)이 있어 처음(始)이 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분명 한국 교회의 지난 100년사는 유래 없을 정도로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 역시도 홀로 자랑할 것이 아니라, 고통의 역사, 민족의 문화, 농촌의 희생에 터한 것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대형교회들의 실상을 들고 보면, 교회성장이란 것이 모래위의 집 같다는 생각도 지울 길 없다. 과거 100년사가 훌륭한들, 오늘 우리가 주는 물에 갈증 느끼는 사람 하나 없기에 참으로 허망하다. 하지만 하느님 주시는 마지막 기회가 남아있다. 이 땅의 민족들과 공감하여 미래를 찾고자 한다면, 한국 교회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제삿날 지내듯 하지 말고, 환골탈퇴, 白死千難(백사천난)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기독교로 거듭나는 원년으로 삼을 일이다. 이를 위한 돌의 소리는 ‘고독하라’, ‘저항하라’ 그리고 ‘상상(환상)하라’이다. 이 셋은 앞서 말한 성서해석에 있어 신앙의 눈, 의심의 눈 그리고 자기발견의 눈과 상응할 수 있겠다.

기독교는 무엇보다 고독의 종교이다. 성서는 하느님(진리)을 사랑하는 까닭에, 부모와 자식 심지어 자신까지도 버릴 것을 요구하는 지독한 고독을 강조한다. 이 경우 고독은 고립과 다르다. 닫힌 감정이 아니라 항시 열려진 까닭이다. 영성의 다른 이름이라 해도 좋겠다. 하지만 지금 기독교는 그 어느 때보다 대중성 속에 묻혀있다. 인간적 취향에 맞추고 인간을 두루 즐겁게 하는 일에만 집중한다. 성직자 스스로도 향유적 인간상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관료적이거나 사교집단처럼 변질된 공간(교회)이 적지 않다. 고독하지 않으면, 또한 저항도 없다. 자신의 내면을 옳게 들여다보지 못하면, 거짓으로 치장된 자신은 물론 사회와 국가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하느님 계시의 날선 검은 교회조차 빗겨가지 않는다. 따라서 교회밖에 구원 없다고 말하기 전에, 교회 안에 구원이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자본에 먹힌 자신의 현존에 항거할 것이며 교회를 사사롭게 생각했던 관습이 그쳐져야 마땅하다. 예수와 동시성(고독)을 살면서, 지금껏 자신의 모습과 행태에 항거하라. 저항은 환(상)상을 통해 힘을 얻고 고독 속에서 자라난다. 목하 교회의 타락은 결국 환상 없는 상상력 부재의 결과이다. 믿음의 율법화, 축복의 물질화로 인간 의식을 둔화, 타락 시킨 기독교의 죄악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성직자의 의식이 돌처럼 굳어져 있는 탓이다. 강단에서 전하는 말씀이 빵이 되지 못하고 교우들을 짓누르는 돌덩이가 되고 있다. 하느님이 세상을 통해 교회에게 하는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까닭이다. 더 이상 하느님을 성전 안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예수를 진정 우리의 ‘대답’이라고 믿는다면,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캐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물음이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꾸는 꿈이 빈약한 것이 아닌지 자문할 일이다. 세상을 뒤바꾸는 ‘불가능한 것에 대한 열정’을 잃고 교회에 안주한다면, 하느님 나라는 영원히 실종되고 말 것이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거듭 말하지만 고독, 저항, 그리고 상상(환상) 없이 맞는 2017년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난 100여년의 역사가 기독교의 전부가 아닐 것이다. 어떤 마지막(終)으로 우리의 처음(始)을 뜻 깊게 만들 것인지를 생각하는 공청회가 되길 두 손 모아 염원한다. 

이정배 교수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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