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비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나는 지금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져있다. 무엇이 올바르고 올바르지 않은지 가져야 할 가치관에 대해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경우가 없는 것 같다. 내 정신적 스승 多夕 류영모 선생을 삶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사람의 삶에 대해 매우 낙관적인 관점을 가지게 된 나지만, 방송을 하고 글 쓰며 나름 뚜렷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작금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과 상황을 접하면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 누군가 좋은 조언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에 글을 적는다. (※편집자주 : 이 글은 본지와의 입장과는 무관함을 알립니다.)

장면 하나, 전두환과 이석기의 위풍당당함

전두환의 위풍당당함과 이석기의 위풍당당함이 겹쳐진다. 전두환의 육사생도 사열장면을 보노라면 전두환은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보인다. 어쩌면 저렇게 위풍당당할 수가! 나는 간이 작아서 죄짓고는 저리 살지 못하지만 전두환은 거리낄 것 없다. 하긴 자신을 멘토로 삼는 자가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이 되는 판에 뭐가 부족하겠는가? 그런데 당혹스러운 것은 이석기의 처신을 보면 운동권판 전두환이라는 점이다. 그 증거는 이 한 마디로 족하다 “내가 무너지면 야권은 다 무너진다.” 그가 62년생이니까 80년대 초반 학번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386세대이다. 민주노동당도 아니고(그는 민주노동당원으로 활동한 적이 없다) 통합진보당으로 가입한지 4~5개월 만에 경선 1등을 한 것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지만, 어쨌든 그는 당당하다. 기본적으로 나는 386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서너 명 만 모여 있어도 경찰이 해산시키는, 그런 숨 막히는 대학생활을 보내면서도 전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독재정권과 투쟁하는데 헌신한, 결국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커다란 족적을 남긴 386세대에 대해서는 나는 무한존경을 보내지만 그 결과물이 ‘출세’의 한 방편으로 남았을 때 그들이 가졌던 과거의 가치와 신념에 대한 믿음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는 것은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 <극과 극은 닮았을까? 나는 두 모습을 구분하지 못하겠다.>

과거의 운동경험을 일종의 ‘훈장’처럼 달고 그것을 발판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는 이들에 대해서 그것도 그의 삶의 한 방편이기에 내가 지금 뭐라고 할 수 없겠지만 진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삶을 바꾸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 정치권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금배지를 달아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학교 다닐 때 하방사업 하방사업을 부르짖으며 아래로 내려가라고 하던 선배들은 그 후배들을 이용(?)해서 출세의 길을 달리고 별 볼일 없는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후배들은 그 선배들의 빛나는 미래에 대해서 ‘진보’라고 이름 붙이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망연자실하게 된다. 그들의 과거,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장면 둘, 손학규, 박지원과 김성식

다들 알다시피 손학규 민주통합당 전 대표의 경우 대표적인 한나라당 출신이다. 잠깐이지만 내가 모셨던 이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독자제위의 답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는 14대 국회에 처음 진출을 했다. 물론, 그는 박정희 유신독재에 저항을 하고 학생운동과 빈민운동을 통해 밑바닥 경험을 하면서 인민(人民)에 대한, 역사에 대한, 정의에 대한, 공동체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 <손학규, 스스로 주홍글씨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는 대표적인 학생운동 리더그룹 중에 한 사람이기에 늘 경찰의 표적이 되었고, 박정희 유신정권이 종말을 고한 다음 기독교계에서 - 특히 박형규 목사께서 - 적극 권유를 해서 영국 유학길을 떠나게 된다. 80년 전두환 독재와는 비껴났지만 영국현지에서 늘 고국의 상황을 노심초사 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서강대학교 교수로 돌아왔지만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발탁이 된다. 여기서 재미난 일화가 하나 있다. YS가 김문수와 이재오를 영입하려고 할 때, 이재오가 “우리끼리만 (신한국당에)들어가면 별로 가치가 없다.”라고 직언을 하면서 손학규를 추천한 것이다. YS는 “갸가 누꼬?” 하면서도 손학규를 흔쾌히 발탁했으며 이후 손학규는 14, 15, 16대 국회의원과 33대 보건복지부 장관과 민선 3기 경기도 지사를 지내게 된다. 그 이후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될 가능성이 난망하자 탈당하게 되었다. 이후의 족적은 여러분께서 잘 아시니 생략키로 한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기억을 담고 있는 그가, 멀리 타향만리에서도 광주학살의 진상을 이곳저곳 알리려고 노력했던 그가,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정권인 YS 슬하로부터 정치를 시작했다는 것이 지금까지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오죽하면 그가 스스로 “이제는 제발 그 ‘주홍글씨’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있다”라고 이야기까지 할까? 나는 손학규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다. 또 그의 과거에 대해서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다.

박지원. 그는 독특한 캐릭터다. 천성적으로 부지런함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으며 그 정권에서 代통령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닌 王수석이었다. 그러나 그가 미국에서 전두환 방미 환영위원장을 맡은 사실이라든지 지금도 떠돌고 있는 전두환의 아우 전경환과의 석연찮은 관계에 대해서는 참 말이 많다.(물론 뉴욕의 한인회장이기에 어쩔 수 없는 위치였다는 변명도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그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최선을 다 했다. 남북관계에 대한 김대중의 치밀한 전략과 전술의 이면에서 박지원은 헌신했다. 몸을 던졌다. ‘대북송금특검’ 당시 그는 온통 죄를 뒤집어썼다.

전두환 방미 환영위원장에서부터 김대중의 왕수석까지, 그의 이력은 화려하지만 지금 나의 고민은 그의 과거에 대해서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진정성을 찾아내서 믿어볼까? 어떻게 보아야 할까?

김성식. 나는 김성식을 잘 모른다. 다만 내 학생운동의 지도 선배의 한 마디에 김성식이라는 사람이 CA(Constituent Assembly : 제헌의회그룹)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모두 다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칠 때, “파쇼하의 개헌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를 외쳤던 과격한(?) 그룹이고 ‘헌법제정민중의회’소집 투쟁을 했던, 한 마디로 극좌노선을 걷던 진영이다. 김성식이 한나라당에 들어갔을 때 내 선배는 “김성식이 어떻게? 허 참......”하고 탄식을 했다. 그때 선배는 수배 중이었다. 어쨌든 김성식은 故 제정구 의원을 모셨고 제정구 의원이 한나라당에 입당을 할 때 따라 들어갔다.(그때 민중당 그룹 소속으로 김문수, 이재오 등과 함께 한 것이다.) 나름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그러나 여전히 한나라당의 구획된 선 안에서 활동을 했고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헌신을 했다. 하지만 막판에 정태근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을 했고, 지난 19대 총선에는 무소속으로 출마를 했다. 새누리당은 배려차원인지는 몰라도 그의 지역구 관악갑에는 새누리당 후보를 배출하지 않았다. 엊그제는 김종배 선생의 ‘이슈털어주는 남자’에 진중권 교수와 함께 출연해서 새누리당에 대해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돌아 온 것인가? 자기 자리를 찾은 것인가? 그러면 CA → 민중당 → 한나라당 → 무소속으로 변화해 온 그의 과거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장면 셋, 95세 김창인 목사의 회개(?)

회개라는 단어 뒤에 물음표를 붙인 것은 아직 나는 그의 진정성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세습 1호를 기록하면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김창인 목사가 아들 김성관 목사에게 교회를 세습한 것에 대한 회개를 했다고 한다. 또 70세가 넘으면 원로목사로 은퇴해야 한다며 아들에게 일갈을 했다고 한다. 처음 이 기사를 볼 때, 어이가 없었다. 기사의 댓글이 달린 대로 ‘아들한테 재산 상속해줬더니 아들내미가 컸다고 아버지한테 막 대해서 삐진 노인네가 상속해준 재산 다시 내 놔라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완전 쪽팔린 한국교회의 민낯을 다시 한 번 보게 하는 현장이었다. 또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 쓴 느낌이기도 하다. 이 추한 몰골을, 이 형편없는 사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편향된 사람인가?

한국현대사를 사는 사람으로서, 지난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무엇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따진다는 것이 결코 나의 삶에 부정적인 요소는 아닐진대, 자꾸 사람들의 눈초리와 입방아가 맘에 걸린다. 나는 과연 편향된 사람인가? 박정희가 ‘긴 칼 차고 싶어서’ 일본 관동군에 들어가고, 머리 벗겨진 박정희라 불리는 전두환이 국민들을 학살을 하며 권좌에 오를 때, 수많은 지식인들이 사사오입의 이론을 제공하는 부역을 저질렀다. 국민교육헌장이라는 일본 메이지 시대 교육칙어를 그대로 베끼면서 박정희에게 아부를 했다. 전두환 시절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수많은 민주인사를 탄압했던 공안검사는 김대중 정권으로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자신의 고향이 ‘광주’임을 내세우며 ‘역사적인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김대중 정권의 첫 민정수석으로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이 신아무개 전 수석은 그 후 뇌물수수혐의로 잠시 ‘학교’를 다녀오시더니 지금은 강남에 로펌을 내고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일진대, 이 현실을 가감 없이 지적한다고 해서 내가 편향된 사람인가? 하는 자문을 자주하게 되었다.
“정치권은 여도 야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지, 뭘 그리 따지나?”
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다.
“최 선생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이상론적이야...... 좀 현실적이 되어봐”
라고 충고하는 사람도 있다.
“왜 스스로의 좌표를 자꾸 왼쪽으로만 밀어내고 있나? 중도 쪽으로 옮길 수 없나?”
라고 요구하는 부류가 가장 속상한 부류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똑바로 눈뜨고 보면 나는 결코 치우치지 않았는데, 오른쪽에 편향된 사람들이 자꾸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참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러면서도 나는 늘 스스로 끊임없이 물어보게 된다.
“나는 진짜 편향적인 사람일까?”

 

세상적 가치로 따져 스며든 열등감

한결이가 한동안 놀이치료를 받았다. 요즘은 ‘마음클리닉’이라고 불리는데 의사선생의 소견은 “정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으나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증후가 있다”라는 것이어서 6개월 이상 치료를 받았다. 병원비가 장난이 아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학교에서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고 한다. 병원비 부담이 많이 낮아질 것 같다. 아이들은 자꾸 크는데, 방송은 고정되어 있고, 또 학교는 아직 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별도의 시간을 내서 돈 벌기도 한계가 있다. 이런 것으로 따져서, 세상적 가치로 따져서 내게 스며든 열등감이 나도 모르게 큰 모양이다. 나와 같은 생각과 주파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곧잘 우리 사회 주류에 입성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이들에 대해서 나는 주눅이 들어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A채널’에서 함께 방송하자는 밥그릇 이야기에 단칼에 ‘종편’이라고 거절을 하고 말았으니, 애 셋을 키우는 아빠로서 자격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주 처신을 잘해서 생각은 생각대로, 삶은 삶대로 그저 잘 메꾸고 나가는 이들에 대해서 부럽기도 하고 그 처세술에 놀라기도 한다.

 

복수와 기록

강풀의 만화를 매우, 아주, 특별히 좋아하는 입장이지만 그의 만화 ‘26년’을 보면서 가슴이 덜컥했다. 맨 마지막 만화의 결말 처리가 강풀답게 결론지은 것은 적이 안심되지만 전두환 암살을 통해 복수한다고 해서 우리의 겪은 그 모든 비극의 결말을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후 1957년에 건립한 예수살렘의 유대인 대학살 박물관이 있다. 이른바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 [ Yad Vashem Holocaust Museum ]이다. 여기서 ‘야드 바셈(Yad Vashem)’이라는 의미는 히브리말로 ‘이름을 기억하다’라는 의미다. 이 박물관에 들어서면 학살당한 이들의 이름이 차례로 흘러나온다고 한다. 이 박물관에는 “망각은 포로상태를 이어지게 한다.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라는 경구가 있다. 2차 대전 중 유태인의 대학살 희생자는 600만 명에 이르렀으며 이 숫자는 유럽에 거주하는 유태인의 2/3에 이르는 숫자다. 또 희생자 600만 명 중에는 어린이의 숫자가 15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야드 바셀 개관 50주년 기념 표어에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다.”라는 경구가 있다던데, 과연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자세로, 어떤 입장으로 기억하고 있는가? 어떤 기억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나는 묻고 싶다. ‘기억은 하되 복수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좌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궁금하다. 어떤 기억으로 지금 2012년을 살아가고 있는지.....

시사평론가 최요한  consulting69@par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