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제이든지 기복이 있으며, 이는 자연현상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에게도 바이오리듬이라는 것이 있다. 신체 내부의 순환과정은 매일 반복되는 밤과 낮의 교체에 따른 활동과 휴식, 수면의 사이클, 그리고 여성의 경우에는 달의 공전 주기인 1개월을 사이클로 하는 신체리듬의 순환을 탄다. 농경사회의 순환 체계는 천자문에 그 개념이 담겨 있다. 천자문의 제일 앞부분 일월영측, 서왕한래, 추수동장, 율려조양 같은 문구들이 이런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윤리나 제도는 이러한 자연의 흐름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 천자문에서도 배열순서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미국의 독창적인 저술가 하워드 블룸(Howard Bloom)은 The Genius of the Beast (한국어판 제목: 천재 자본주의 vs 야수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의 장기적 순환사이클도 이러한 자연과 생명체의 기본질서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증산도에서는 우주의 1년을 12만 9600년으로 보는 우주변화의 거대 사이클 개념을 내세워 후천개벽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개념들이 정확한 우주의 운동방정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무수한 크고 작은 순환 사이클이 시계 안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자연계와 인간사회의 일상적인 질서가 유지되며, 모든 일이 이 순환 주기에 따라 적당한 때가 있고, 기복을 겪게 된다는 생각에서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상식이다.

K. 맑스는 인간의 역사발전을 이러한 자연계의 변화원리에 기초를 두고 파악하려고 하였으며, 그는 자본주의가 생겨나게 된 것을 역사적인 필연으로 보았고, 그 역할을 인정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이제 극복이 되어야 할 때가 왔다고 했을 뿐 자본주의가 잘못 태어났다거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형적 경제형태라거나 하는 도덕적인 판단을 하지는 않았다.

거대한 시간 개념으로 본다면, 인간과 인간들로 이루어지는 인간사회 역시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물질세계의 현상이고, 이 현상은 거대한 물질순환 주기의 일정 시점에서 지금 우리가 사는 것과 같은 자본주의적인 형태를 띠고 있을 따름이다.

인간사회가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200년 정도 물질적으로 급팽창하고 인구가 급증한 것은 자연사적으로 그러한 조건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인간의 사상이나 탐욕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유물론적 관점, 인간 현상이 자연계의 변화에 의해 촉발된 물질 현상이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긍정할 것도 부정할 것도 없다.

다만, 자본주의의 운명이 다해 간다고 주장한 K. 맑스가 유럽 자본주의가 한창 성장해 가던 19세기 중반 이후에 출현했고, 그의 사상을 불온시하는 세력과 그의 관점을 지지하는 세력 간에 투쟁이 시작되었고 21세기에는 맑스의 관점이 더 공신력을 얻어가게 된 것은 자연사적 조건 자체가 자본주의라는 경제형태에 균열이 생기게 했으며, 그 균열이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을 시사해 준다.

지구상에 서식하는 인류의 생존환경은 그 동안에는 인간사회의 급성장을 일으킬 정도로 긍정적이었으나 그런 긍정적인 서식환경은 점차 철이 지나가고 점점 차가워지는 가을, 겨울이 닥치게 되면, 지금과 같은 인구와 물적 풍요의 성장 추세는 반전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극도로 열악한 생존조건 속에서 웅크리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인류는 그러한 극한적 조건에서도 지금까지 축적해 온 인류문명과 정신, 인간애를 지키면서 생존할 것이냐 아니면 아무런 준비 없이 자연사의 겨울을 맞이하여 무질서와 야만 속에서 이전의 역사를 완전히 상실하고 원시인으로 다시 시작할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인간은 필시 극한의 조건에서도 생물학적으로 멸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쌓아온 인도적 정신문명을 모두 상실하여 망각하고 다시 시작한다면, 그 동안의 인류가 이상을 추구하며 흘린 피와 땀은 완전히 망각된 채로 허비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중요한 절박한 과제는 변화하는 조건에 맞추어 평화롭게 인간답게 공존하는 사회질서를 이루는 일이다.

그 동안 자본주의를 문제시하고 특히 평등의 가치에 중점을 두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실험해 온 다양한 사상운동과 공동체 운동들도 변화를 맞이하는 인류의 생존수단이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이승무 순환경제연구소 소장  sngmoo@cyclecono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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