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을 인간이 나무를 연료로 얻은 제1의 불과 화석연료에서 얻은 제2의 불에 이어 제3의 불이라고 했다. 인공적인 원자핵의 분열에 의해 에너지를 얻는 이 방식은 악랄한 고리대금업자에게서 사채를 빌려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당장 필요한 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지만, 일단 그런 방식으로 에너지를 이용하고 나면, 그에 대한 이자와 원금을 갚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그 시설에서 얻은 에너지를 쉽게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사업으로 친다면, 밑지는 장사 정도가 아니라 당장 사업자금을 빌리는 대가로 평생을 노예로 살아야 하고 몇 대가 지나도 노예 신분을 면할 수 없는 노예계약을 하는 것이고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런 계산이 단지 확률적 기대치라는 이유만으로 그 동안 무시되어 왔지만, 확률을 알 수 없는 불확실과는 달리 확률적인 기대치는 실체에 가까운 것이며, 그런 시설은 희생제물을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항공기 사고확률도 1백만회에 1회 정도라는 확률이 경험치로 나와 있어서 사람들은 빠르게 지구상을 여행하는 대가로 기계문명에 인간의 목숨을 정기적으로 제물로 바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분명히 실체가 있는 것이지만, 인간이 쉽게 감수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몇 가지 원인으로 정리된다.
첫째, 그것이 확률과 통계의 세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영역에서는 인간은 자기 자신이 희생자로 뽑힐 확률이 그런 걱정을 하면서 살기에는 너무 낮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를 아예 무시하고 산다. 그것을 인지불일치(cognitive dissonance)라고 하며 이것을 경제이론으로 설명한 사람이 언젠가 노벨상을 받았던 애컬로프이다.
또 한 가지는 그 실체의 정체와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에 어떤 괴물이 있어서 지구 사람들을 평화롭게 살게 해 주는 대신에 매년 지구상의 수십억 인구 중에 일정 수의 사람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하여 당장에 그 괴물을 잡아들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룬 기계문명은 인간사회가 유지하고 있는 것이며 어느 특정한 사람이 좌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인간이 윤택하게 살기 위한 것일 뿐, 거기에 어떤 악의가 있다고 볼 수가 없다는 점 때문에 그에 대한 인신제물을 바치는 데 무감각해진다.
도로교통사고일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동안 신체적 손상의 피해자가 되거나 가해자가 되는 일을 겪는 것 같으므로 확률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 문명에 수많은 사람들이 차량 소유자가 되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분노는 많이 희석된다.
항공기나 선박의 경우에는 그 위험은 항공기와 선박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로 국한되고 그 사람들은 약간의 위험을 느끼지만 편리함을 대가로 그 위험을 감수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이것이 큰 쟁점은 되지 않는다.
원자력은 그 에너지의 수요자들은 많지만, 이 산업에 종사하거나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그 수가 한정되어 있고, 거의 정보와 전문성을 독점한 폐쇄적인 집단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발생한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묻기에는 어렵지 않지만 지금까지 그 위험도나 치러야 할 대가를 일반인들이 아주 낮게 인식해 왔기 때문에 그냥 수용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위험이 절실한 현실로 다가오며, 사회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사결정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 의사결정에서 우리는 몇 가지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1) 인간의 현재 과학기술 수준에서 전과정(life cycle)으로 보아 이익보다 피해가 더 클 것이 예상되는 에너지나 기술은 사용하지 말아야 할 책임이 현재 살아 있는 인류에게 있다.
2) 인류 역사에서 지속 가능한 것으로 검증된 나무, 바람, 수력, 태양열 에너지를 근간으로 하는 경제를 중심으로 미래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
3)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수량이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화석연료는 앞으로 남은 사용 기간 동안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학술연구와 재난방지, 복구 등 비상 목적을 위해 최대한 저장되어 보관되어야 한다.
4) 인간사회의 교육은 현재의 경제활동을 영위할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고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창조적인 작업을 하도록 초점이 바뀌어야 한다.
모든 인간이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고 그 능력을 낭비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위기를 넘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꿈이라도 꿀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을 능률적인 생산의 도구로 만들어 정신과 육신이 지치게 하는 현재의 교육제도와 직업노동 제도는 적합하지 않다. 끊임없이 동료와 경쟁을 하여야 하고 미래를 걱정하여야 하는 지금의 체제에서는 사회의 미래를 타개해 갈 수 있는 지식과 지혜가 제대로 생산될 리가 만무하다. 산과 들의 야생 수목이 그러하듯이 생산적 목적을 위해 인공적으로 비료와 농약을 뿌려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지 않고 수목 그 자체의 생긴 모습대로 자라게 놔둘 때 생태계에서 다른 동식물과 인간에게 그 수목이 가진 생명력과 잠재성을 다 발휘하여 도움을 주고 일생을 마치게 된다.
사람에게 있어도 정형화된 틀에 맞추어 규율과 지식을 세뇌시키고, 교묘하게 설계된 직업노동 제도로 그 사람의 기력을 고갈시킬 때까지 그 사람의 역량을 뽑아내는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인간의 정서와 관찰력과 통찰력이 제대로 자라나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이것이 물적 자원의 낭비보다 더 심각한 인적 능력의 낭비라고 할 수 있다.
농경사회에 마련된 공자, 맹자와 석가 같은 사람들의 인간 교훈이 결국에는 인간사회의 미래를 책임지지 못하는 상공업 중심의 자본주의 교육을 넘어서 인간사회에 미래의 희망을 갖게 해 주는 길이 될 것이다. 이번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는 그런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이승무 순환경제연구소 소장 sngmoo@cyclecono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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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에 남아 있는 일본 제국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