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국민MT(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 마지막날인 6월 7일, 촛불문화제에 앞서 대학로에서 연 <국민무시, 고시강행 이명박 정부 심판 범국민대회> 참가 뒤 시청까지 10대 학생들이 행진을 주도했다. ㅣ 이철우

‘한번 운동권은 영원한 운동권’이라는 475세대인 모씨는 술자리에서 투덜거리는 게 일이다. “우리 세대 팔자는 왜 이래? 학교 다닐 때부터 박정희, 전두환이랑 쌈박질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사회에 나와서도 뻑 하면 머리띠 묶고 길거리에 나서는 게 일이니, 이제 늙으면 노인운동 같은 거 해야되나?” 구시렁거리며 나와 함께 시청 앞에 나간 모씨는 그야말로 ‘경악’했다.

상큼 발랄한 촛불

아이 먹을거리가 걱정되어 나왔다는 유모차 부대, 예비군복 차림의 형님 부대, 넥타이 부대, ‘나, 배운 여자야’라는 펼침막 아래 행진하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이힐 신은 아가씨들, ‘나라가 걱정되어 시험을 제치고 나왔다’는 교복 입은 깻잎머리 여중고생들. 이들은 딱딱하기 그지없는 헌법 조문까지도 노래로 바꿔 부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모씨의 입에서 “이건 지구최강 시위대이며 상상할 수 없는 세력”이라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이 거리에서 80년대의 엄숙함과 비장함은 찾아볼 수도 없다. “값 싸고 맛있는 쇠고기를 먹게 해주겠다는데 왜 그래?”라면 “미친 소 너나 쳐드삼”이라 받아치고, ‘모의고사 죽 쒔는데 재수하면 책임지삼’, ‘오죽하면 고3도 왔겠냐?’에 이어 ‘오죽하면 초딩도 왔겠냐?’고 댓글을 단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70,80년대 빈둥빈둥 놀면서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 이 대통령은 이 아이들이 ‘공부도 지지리 못하는 것’들이 ‘마땅한 놀이문화’가 없어서 몰려나온 거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우리 조낸(매우) 바쁘거든요. 학교 가랴. 촛불 켜랴’, ‘착한 누나가 진짜 민주주의가 뭔지를 보여줄게’, ‘100일이 100년 같다. 쥐박아 우리 헤어지자’는 아이들이 ‘탄핵 천국, 명박 지옥’손팻말을 내흔든다.

▲ 여성주의 긴급행동단 <불타는 언니>들의 퍼포먼스. “집시법, 청소년·여성보호, 전의경제도 됐거든요!” ㅣ 이철우

“우리 조낸 바쁘거든요. 학교 가랴. 촛불 켜랴”

이들의 발랄한 시위 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들은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 조·중·동, 그리고 뉴라이트 등 수구세력과 야당, 진보세력에게도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는 것이다. 엠마 골드만의 말처럼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혁명이 아니다.”

“광우병 쇠고기라도 SRM(특정위험물질)만 제거하면 스테이크를 해먹어도 안전하다.”는 복어로 착각한 것 같은 발언을 한 심재철 의원 앞으로 날아온 것은 후원금 폭탄이었다. 1원 또는 어감이 안 좋은 18원을 정치자금으로 보내자는 의견이 나왔고 게시판에는 1원 또는 18원을 보낸 송금내역이 갈무리 사진과 함께 연이어 올라왔다.

분노의 표시라지만 티끌모아 태산으로 상당액의 후원금이 쌓이는 거 아니냐는 걱정에 18원을 보내고 정치후원금 영수증을 등기 속달로 요구하자는 기상천외한 해법이 제시되었다. 등기 속달 비용은 1750원. 18원을 받고 심 의원 측은 한 건당 100배 가까운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조·중·동 광고내면 그날부터 불매운동”

다중이 긴밀하게 통합된 복합지능이다. 조·중·동에 광고를 낸 업체들의 명단과 전화번호, 홈페이지가 게시판에 올라오고 업체에는 항의하는 전화와 메일이 폭주한다. 광고를 낸 기업들이 곤욕을 치르고 사과광고를 내며 올렸던 광고를 내린다. “조중동 광고내면 그날부터 불매운동”이라니 두 손 들지 않을 방도가 없다. 실로 재치 있고 발랄한 ‘한 방 먹이기’이다.

‘자기만 알고, 세상에 무관심하고, 나약하다’는 아이들이 촛불을 통해 ‘참여와 연대’를 배운다. 거리는 민주주의 학교다. 교육의 목적이란, 공부 잘 하는 몇몇 아이들을 명문대 보내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인간다운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일 게다.

▲ 참가자들이 준비해온 다양한 손 피켓들. MB지지율 빼고 모든 것이 다 오르네, 교육도 나처럼 미쳤냐? .. ㅣ 이철우

아이들은 우리가 ‘무한경쟁’에 몰아넣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아이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는 동안, 학교축제에서 원더걸스를 보러간 대학생들은 ‘개념 없는 집단’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촛불은 토플 책에 고개를 처박고 밥벌이를 걱정하던 대학생들도 ‘쪽팔려서’ 거리로 나오게 했다.

배후도 지도부도 없다. 글을 올리고 댓글이 달리고 오프라인에서 만난다. 각자의 견해와 정보가 실시간 인터넷으로 교류한다. 이제 이들은 혼자가 아니다. 흩어져 있던 개인들이 하나로 묶여져 혼자이며 모두인 집단지성이다. 이 역사의 현장을 노트북을 든 개인들이 생중계한다. 이제 아무 것도 왜곡하거나 은폐할 수 없다.

광우병에 대한 염려는 전문가들 말대로 ‘과학적’인 뒷받침이 더 나와야 하는 문제라고 치자. 확률의 문제이며, 그래도 무섭다면 이 대통령 말대로 안 사먹으면 되고, 심재철 의원 말대로, 복어처럼 SRM만 제거하면 안전하다고 치자. 그러나 문제는 “고기 마다하기는 처음이다.”라는 광우병만이 아니다. 촛불은 광우병을 넘어 ‘대운하’로, 공기업 민영화로, 학교 자율화로 번졌다. 그리고 촛불은 이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을 물대포와 소화기로 ‘소통’하여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전기세 아깝다. 불꺼!” “조중동 쓰레기.” 조·중·동이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악의 축이라는 것을 국민은 이미 알아버렸다.

경찰 버스에 붙어있는 ‘함께 해요 닭장 투어!’라는 벽보에서 보듯, 2002년 월드컵 길거리 응원처럼 시위도 함께 하면 이렇게 즐겁고 신난다는 것도 알아버렸다. 정권은 반미로 몰아가고자 하지만 미 대사관에 음료수병 하나도 날아들지 않는다. 서로 연결 된 인식의 자각과 자발적인 불복종이 시작되었다.

▲ 빠라빠빠 개사곡에 맞춰 춤추는 10~20대 참가자들. 티셔츠에 적힌 2MB 뭥미?!는 2MB는 알다시피 2메가바이트, 뭥미?는 뭐임?의 오타. 풀어쓰면 이명박 뭐니?! ㅣ 이철우

“촛불, 민주주의 활화산.. 대한민국의 힘으로”

2008년 6월 촛불항쟁은 청소년과 시민, 학생과 노동자들이 서로가 서로의 배후가 되어 “촛불아 모여라. 될 때까지 모여라!”며 타오르고 있다.

더 이상 정치가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직접 거리로 나서는 아테네식 직접민주주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촛불은 우리사회 에너지를 분출시킨 민주주의의 활화산이다. 이 에너지를 대한민국의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 촛불만이 희망이다.

어린 아이 ‘백일 찬치’와 단군신화의 ‘백일’ 모두 ‘이제 사람이 되었다.’ 또는 ‘사람구실을 한다.’는 의미다. 그럼 이명박 정부의 100일은 어떤 의미일까? 취임 백일이 지나고 인적 쇄신을 한다는데 과연 이명박 정부의 ‘소통’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제 더는 ‘국민과 대화’고 ‘국민 눈높이’가 이렇게 높은 줄 몰랐다거나 국민 뜻을 ‘겸허히’ ‘받아드린다’는 말도 지겹다. 당신들이 언제 국민과 대화 했고 국민에게 겸허했고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했는가?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기도처럼 “경찰, 검찰, 기무사, 국정원을 동원해 촛불난동을 하는 빨갱이들을 잡아들이고 좌파 노릇 하는 엠비시(MBC), 케이비에스(KBS)를 척결해” 촛불에 기름을 붓든지 “지혜와 명철을 받아” 이 대통령이 당장 철저한 반성과 고백을 하고 재협상에 나서든지 선택하라.

미적거리며 교언영색으로 난국을 모면하려다가는 쇠고기를 탐하다가 대통령직을 잃는다는 ‘소탐대실’ 지경에 빠지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낮은 지지율로 임기 내내 허우적거리며 초·중·고생들에게까지 조롱의 대상이 되는 정치 ‘식물대통령’이 되고 말 것이다.

‘신념과 추진력으로 세상을 바꿔온’ 이명박 대통령은 시기를 놓치면 밝아오는 새벽 시청 앞 서울광장에 “미국 쇠고기 수입 중단되고” “검역주권 찾게 되고” “대운하 없던 일 되고” “2MB 리콜되고” 하는 ‘되고 송’이 울려 퍼지는 바뀐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 촛불문화제에 이어 행진에 나선 시민들. ㅣ 이철우

* 김경원 기자는 극작·연출가이며 ‘아리랑(나운규) 필름 되찾기 100인회’ 회장, ‘아리랑예술단’ 단장입니다. 그는 한국과 일본에는 연극 <바람매장>, <밀레니엄 베이비-바리데기>, 무용극<귀천지(歸天地)> 등을 연출했고, 희곡집 <당신 누구요? - 김산과 나운규의 백년 아리랑>을 냈습니다.

김경원 기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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