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단거리 경기인 100미터 경주와 마라톤을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100미터 경주가 짜릿한 승부에 묘미가 있다면, 마라톤은 긴 호흡의 승부라는 점에서 색다른 감동을 준다. 100미터 경주가 등수 내에 드는 경주자들에게만 시선이 쏠리는 반면, 마라톤 경주에서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며 먼 길을 성실히 달려가는 선수들 모두에게 골고루 시선을 보낸다. 그래서 비록 등수 안에 들지 못해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결승점에 도달한 선수들 모두에게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마라톤에서는 설령 꼴찌를 해도 부끄러울 게 하나 없다.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먼 길을 달려 숨이 끊어질 듯 결승점에 다다른 꼴찌가 주는 감동은 우승자가 주는 감동 못지 않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관중들은 꼴찌일망정 최선을 다해 달려온 선수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바로 이게 마라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참된 감동이 아닐까. 고독한 승부를 넘어 펼쳐지는 가슴 뭉클한 한 편의 인간 드라마!
끝없이 달려야 할 길을 앞에 둔 고독한 주자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서로 무리 지어 가는 마라톤.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일등과 꼴찌의 순위마저 무색한 마라톤. 숨이 넘어갈 듯한 지점에서는 시원한 냉수 한 잔으로 목을 축일 수도 있는 마라톤. ‘나의 달려갈 길을 최선을 다해 달린다’는 데서 오는 환희와 고통이 어우러지는 마라톤. 만일 우리가 인생을 늘 마라톤 경주자와 같은 자세로 살 수만 있다면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인생이 마라톤일진대 믿음의 길 역시 마라톤에 빗대어 이상할 게 없다.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라는 히브리서 기자의 평범한 듯 가시 돋친 격려, 때로 힘겨운 믿음의 길이지만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구름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아 믿음의 길을 달려 마침내는 후대 사람들에게 믿음의 증인이요 본이 되자는 굳센 각오와 결의,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가 되시는 예수”를 닮아 우리도 “온갖 무거운 짐과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끝내는 믿음이라는 마라톤의 결승점에 도달하자는 매서운 촉구.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의 길이 설익은 낭만의 길이 아닌 뼈와 살을 깎는 진지한 장거리 경주임을 느낀다.
다음으로 믿음의 기초와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보자.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가 되는 근거로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생각하고 부끄러움도 상관하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어 내시고 지금은 하나님의 옥좌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히 12:3)라는 설명을 제시한다.
그렇다. 최선을 다해 성실히 제 길을 달려가는 것 말고는 마라톤에 비법이 따로 없듯이 믿음의 길에서도 한결같이 불의와 억압에 맞서 정의와 해방을 부르짖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한몸을 이루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는 것 말고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별다른 묘수가 없을 것이다.
교회라는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예수의 삶을 닮아 가는 인생길을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서로 격려하고 기쁨과 희망, 아픔과 슬픔을 함께하는 믿음의 벗들과 함께 달리는 믿음의 마라톤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정연복 pkom54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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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에 남아 있는 일본 제국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