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친히 가르치신 기도인 주기도문은 마태복음(6:9-13)과 누가복음(11:2-4) 두 곳에 나옵니다. 누가의 기도가 마태의 기도보다 한층 간결한 걸로 보아 누가의 기도가 원형에 보다 가까우리라 짐작됩니다.

신자들의 입술에 늘 붙어 다니는 주기도문이기에 어쩌면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주기도문을 읊조리는 데 꽤나 익숙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주기도문은 예수의 하나님나라운동 핵심 내용을 담고 있는 몹시 중요한 본문이라는 게 학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입니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나라이 임하옵시며”에 바로 이어지는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구절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지기를 기도했던 사람들은 “일용할 양식”이 문제가 될 정도로 참으로 절박한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혹은 달리 말해서, 하나님 나라는 무엇보다도 “일용할 양식”으로 대변되는 최소한의 경제 정의와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혹은, 평생을 먹고도 남을 물질을 쌓아두고 있으면서도 자기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을 외면하는 사람은 적어도 이 주기도문을 드릴 자격이 없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간구입니다. 그냥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 “모든 사람” 상호 용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가 무조건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인간 상호간 화해와 신뢰성 회복을 조건으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상호 책임적 존재가 되려는 노력에는 게으른 채 무턱대고 하나님의 용서를 빌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말입니다.

주기도문의 마지막 간구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입니다. 주기도문은 한갓 낭만적인 기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나라운동의 핵심 “강령”(綱領)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은 하나님나라 “운동”에 참여라는 힘겨운 제자직에서 슬그머니 이탈하려는 유혹을 이기고 매순간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지킬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기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들, 그리고 그 교회의 한 지체를 이루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는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이런저런 이유로 갈라지고 쪼개진 세상에 인간 상호간의 참된 화해와 “용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애쓰고, 또 재물에 대한 욕심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올바른 신자로 살아가려는 매서운 결단의 자세를 늦추지 않을 때라야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실현된다는 아름답고 당당한 신앙이 담겨 있는 주기도문!

그런 주기도문을 드릴 수 있는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정연복  pkom54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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