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파"는 유대교의 근간을 이루는 율법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율법의 조목조목을 일상생활 속에서 빈틈없이 실천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완전주의를 지향하는 치밀하고 열정적인 종교인들이었습니다.

믿음으로써 욕심에 재갈을 물리는 자들이요,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은 자들이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는 자들이요,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종교의 제단에 바치는 자들이요, 따라서 보통 사람들과는 판이하게 구별되는 드높은 신앙생활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속에서 거룩을 사는 것을 삶의 이상으로 삼은 자들이었습니다.

여기에 반해 “세리”는 예수 당시에 세상 사람들의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는 자들이요, 동족의 피를 빨아 로마제국에 갖다 바치면서 이 과정에서 자기 배를 불리는 더러운 매국노며 불의한 세금 징수원요, 종교의 거룩한 문턱에는 감히 발도 들여놓을 수 없는 불경스럽고 비종교적인 사람들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러니 본문 중에 세리가 성전에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라고 기도하였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보라는 듯이 서서” “오, 하느님! 저는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고 기도할 수 있었던 바리새파 사람과 죄로 얼룩진 세리, 이 둘은 종교와 비종교, 거룩과 세속, 신앙과 불신앙, 고결함과 비천함, 깨끗함과 더러움, 정직과 부정직, 정의와 불의, 하늘과 땅, 교회 안과 교회 밖의 극명한 대조를 상징합니다.

바로 이 두 사람이 성전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상식적인 종교의 눈으로 볼 때 하느님께 상달되는 기도는 마땅히 바리새파의 기도여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어찌 되었습니까? 놀랍게도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습니다.” 바로 그 세리! 비종교와 세속과 불신앙과 비천함을 대변하는 세리의 기도만이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왜? 바리새파 사람은 자기를 높이는 데 혈안이 되었던 반면에 세리는, 어느 것 하나 자랑할 것이 없는 세리는 하느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빼어난 종교성과 헌신적인 신앙생활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고결하고 거룩한 생활을 너무도 잘 아는 바리새파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을 내세울 수 있었던 데 반해 세리는 “가슴을 치며” 하느님의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상황은 역전됩니다! 왜 하느님은 바리새파 사람의 그 뜨거운 종교적 열의를 외면하신 것일까요? 왜 하느님은 세리의 그 초라한 모습을 높이 사신 것일까요? 하느님은 바리새파 사람의 자신만만한 태도에서 무슨 불길하고 역겨운 냄새라도 맡으신 것일까요? 하느님은 “가슴을 치며” 사죄를 비는 세리의 왜소한 모습에서 무슨 진실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면모를 발견하신 것일까요? 왜 하느님은 이다지도 종교적 상식을 깨뜨리는 혼란스런 무질서를 초래하고 계시는 걸까요? 하느님께 한 기도, 혹은 한 사람이 기쁘게 받아들여지거나 거절당하는 기준은 대체 뭐란 말입니까?

하느님의 오묘한 뜻을 내 아둔한 머리로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아둔한 내게도 몇 가지를 넉넉히 느끼도록 해줍니다. 종교에 대한 지나친 열성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느낌, 세속성을 소홀히 한 채 거룩성에만 매달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 됨과 종교의 참된 본질을 잃을 수도 있으리라는 느낌, 음탕하지 않은 생활이나 단식이나 십일조 같은 종교의 외면도 소중하겠지만 외면이 보기 좋다고 해서 종교의 내면마저 맑고 순수하다고 쉽사리 장담할 수만은 없으리라는 느낌, 우리 주변의 일반적인 종교적 상식과 하느님의 깊은 뜻은 전혀 상반될 수도 있으리라는 느낌......

오늘 나는 대체 누구입니까? 바리새파 사람입니까 세리입니까? 나는 이 둘 중 어떤 부류에 속합니까? 어느 쪽에 더 근접합니까? 내가 자랑할 만한 종교성이나 거룩성은 무엇입니까? 그 종교성/거룩성의 외면과 내면은 일치합니까? 최소한 일치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까? 둘의 불일치를 알면서도 모르는 체 수수방관하는 것은 아닙니까? 내 생활의 어느 구석이 세리와 닮았습니까? 생활은 세리 마냥 온통 죄로 얼룩졌으면서도 마음이나 믿음만은 바리새파 사람을 닮아 거룩한 종교성의 깃발을 자랑스럽게 흔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일상의 생활은 엉망이어도 교회생활만 착실하게 하면 된다는 편리한 공식에 내 구원을 떠맡기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닙니까? 나도 때로는 “가슴을 치며” 하느님의 사죄와 자비를 구합니까?

그렇게 자신만만했지만 하느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 바리새파 사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생각지도 않게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은 세리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요? 다음 번에 성전에 올라서는 이 둘의 처지가 어떻게 될까요? 다시 한 번의 기막힌 역전극이 벌어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께 인정받는 참된 인간의 길, 종교의 길, 구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숱한 질문들을 모르는 체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정연복  pkom54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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