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는 일은 대양 속의 물 한 방울 격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대양에서 물 한 방울이 모자랄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작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좌절하거나 불행할 이유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수천, 수만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때에 한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한번에 한 사람만을 구할 수 있으며, 우리는 한번에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마더 테레사·수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이 자기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게 참 어렵다고 느껴진다. 겉모습은 그럴 듯한데 인격과 삶으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공허한 말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떠도는지 모른다. 그 공허한 말의 홍수 속에는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남발한 수천 수만의 공수표 같은 말들도 들어 있는 게 틀림없다.

나는 고3 어느 가을 윤동주 시인의 '서시' 중의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구절을 발견하고 그것을 내 삶의 좌우명으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그 구절을 주문처럼 외웠다. 어쩌면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선뜻 신학교를 택할 수 있었던 것도 그 한 구절의 힘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제 내 나이 어느새 쉰 둘. 그 구절을 비문처럼 가슴에 새긴 지 3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그 동안 나는 뭘 했던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나로 인해서 사랑의 행복을 맛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열 사람? 다섯 사람? 참 부끄럽게도 나는 내 피붙이 이외의 사람을 뜨겁게 사랑해 본 적이 별로 없다. 누군가를 크게 미워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눈물겹게 사랑해 본 기억을 나는 떠올릴 수 없다.

서른 살 무렵에 민중(民衆)을 내 인생의 새로운 화두로 삼고 한눈 팔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오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내면의 추악한 모습을 감출 길이 없다. 남들에게 민중을 이야기하고 민중신학을 전하는 글쟁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내 삶은 민중과 동떨어져 있다. 차가운 거리의 노숙자들이나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맹인들을 대하면서도 별다른 느낌이 없을 만큼 나의 감정은 메말라 있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내 인생은 어디에서부터 어긋난 걸까?

한평생을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이들의 어머니로 살다가 몇 년 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간 우리 시대의 성녀(聖女) 마더 테레사 수녀. 남들이 외면하는 더러운 몸뚱이의 병자들을 만지며 예수의 몸을 만진다고 느꼈던 그녀. 그래서 자신이 병자들을 돌보기보다는 병자들이 자신을 구원한다고 생각했던 아름다운 그녀.

그녀가 말한다. "나는 한 때에 한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번에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그녀는 이 세상의 "모든" 가난하고 병들고 굶주리고 헐벗고 소외된 이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지 않았다. 그녀는 "작은 일"에 충실했다. "한 때에 한 사람", "한번에 한 사람만을" 생각하고 사랑했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이 "대양 속의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녀의 그런 "작은" "물 한 방울"이 수천 수만으로 모여 사랑이 메마른 이 시대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생(生)이 되었다.

예수도 그랬다. 전태일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각에도 이 세상 어디에선가 말없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에 한줄기 구원의 빛을 비추고 있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사람"을 눈물겹게 사랑할 수 있다면! 나의 목회, 나의 교회, 나의 기도, 나의 봉사가 "한 사람"을 진정 사랑으로 섬길 수 있다면!

사랑이나 구원은 도매금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 신자들, 특히 목회자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연복  pkom54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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