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선거는 선거였다. 실종된 선거니, 우스운 선거니, 조롱을 받으면서도 선거는 끝났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계산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물론 계산법과 전선은 다르지만 계산은 가능하다고 본다.

“왜 야바위꾼이 됐냐구? 킥 킥 킥… 내 사정 아는 ‘놈’에게 물어봐. 내가 왜 야바위꾼이 됐는지 알아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느니 등등의 유치한 핑계는 대고 싶지 않아. 정치자금 몇 억 던져 놓고 수천억씩 대출받아 장부 적당히 조작해서 한 입에 털어 넣거나 해외 도피시키는 것보단 그래도 낫다는 생각이야”

강촌의 만화 <야바위>에 나오는 프롤로그다.

#1

서울시장 오세훈이 더 이상의 뉴타운은 절대로 없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참패했지만 서울에서 압승을 거둔 한나라당과 같은 당적인 서울시장의 고백이 좀 더 일렀으면 좋았겠지만 세상에 양심 있는 야바위판이 어디에 있을까?

유전자 조작적인 계급배반의 주범은 역시 ‘돈’이었다.

이번 선거로 물신교(物神敎)의 극단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집단 주거지가 뉴타운임도 밝혀졌다. 물신교가 교세를 확장하고 있고 신도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정권을 바꿀 정도의 폭발성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야바위꾼과 애정행각이 발각됐지만 그들은 이미 사실혼 관계였다. 참으로 ‘야바위스럽다’

#2

4.9 총선 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통합과 경제 살리기를 역설했다. 담합이라면 몰라도 야바위 통합이 가능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총체적 야바위판이 서울시장의 고백으로 드러난 마당에 경제 살리기조차도 공허하게 들린다. 이명박의 경제 살리기 중심부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가 자리 잡고 있다. 승자독식(The winner-take-all)의 독기가 번득인다.

처음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영어몰입의 냄새 때문에 친 기업(親 企業)에 자리를 물려 줬지만 이 역시 정경유착 냄새가 짙어 기업 친화 정책으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개명을 시비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내용에 있다.

경제를 망친 좌파정권(?)의 재벌 증오를 일거에 제거하는 신기술 도입이 비즈니스 프렌들리이기 때문이다. 그 신기술은 무얼까? 대기업 집단 지정제도는 재벌 규제가 핵심이고 그 내용은

1) 상호 출자 금지
2) 채무 보증 제한
3) 내부거래 규제로 정리할 수 있다.

재벌 윤리강령인 셈이다. 최소한의 필수적인 공공 기제를 없앤다는 게 경제 살리기의 신기술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 삼성을 찬찬히 드려다 봤으면 좋겠다.

재벌 규제는 지켜지지 않았다. 규제가 있는데도 불법은 입맛대로 저질러졌다. 김용철 변호사가 아니었으면 계급배반 투표를 자행했던 유권자들은 삼성회장 이건희의 “정치는 삼류다. 모두 바꿔야 한다”는 훈계 앞에서 또다시 감격했을 터이다.

최소 규제 장치는 그들의 다양한 불법신기(不法神技) 앞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으니 하는 말이다. 그들이 ‘행복한 눈물’을 숨기는 이유는 이처럼 명백하다. 1,000억의 세금포탈도 불구속 수사하는 검찰의 특검신기(特檢神技)도 ‘행복한 웃음’을 숨기고 있지 않을까?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일리걸 프렌들리(illegal friendly)로, 기업 친화정책은 야바위 친화정책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고 없다.

그게 이렇다. 지난해 12월에는 시대정신의 실종에 망연했지만 선거에 대한 평소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적어도 씻김굿의 역할까지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 ‘고물’족이 실성했을 수도 있을 거라고 막연히 의심은 했지만 4월이 있어 기다릴 수 있었다. ‘고물’족이긴 해도 격식은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물’족은 지구상에 새로 출현한 신인류가 아니다. 자학적이긴 해도 떡값을 퍼주고도 ‘고물’ 얻어먹을 생각밖에 할 수 없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게 한계다. 거기까지다.

이만큼 살게 됐으니 6·25때의 은혜를 갚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며 베트남 파병이나 이라크 파병 아프간 파병에 앞장서 나서는 건 '고물'족의 기본이다. 국익으로 포장된 떡‘고물’ 때문이지만 그걸 겉으로 내세우지 않는 영민함도 갖추고 있다.

우선 역사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 있어 탁월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방과 분단에 대해서도 구구한 분석 따위는 필요 없으며 브루스 커밍스의 '전쟁의 기원' 같은 책은 위서로 단정할 수 있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제 이념의 시대는 갔다. 시대착오 이념을 버려라’고 꾸짖으며 자신은 “한국에서 학살” 같은 피카소의 그림에도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문화적 안목도 갖추고 있다.

물론 ‘고물’족은 ‘개평’족으로도 불려진다.

그러나 그런 ‘고물’족에게 조차도 그 앞에 펼쳐진 선거라는 이름의 굿마당, 그건 씻김굿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4월 씻김굿의 결산서는 “야바위 종합세트”의 결정판으로 판정이 났다. 선거는 더 이상 '씻김굿'이라는 이름을 차용할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우리의 현대사는 유독 4월이 아프다.

제주도 4.3 항쟁은 아직도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꼭 60년 전의 일이다. “제주 4.3 평화 박물관”을 “제주 4.3 폭도 박물관”으로 조롱하는 야만이 주류 신문의 광고에 버젓이 올라 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미완의 4.19 혁명, 4.9 인혁당 조작 사법살인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뉴라이트 계열의 대안 교과서가 식민사관의 망령을 불러 진보의 여린 싹들을 짓밟으려 들고 있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고쳐야겠다는 움직임이 버젓이 이름표를 달고 나선다. 음지에 머물던 야바위와 사기가 공공의 영역으로 커밍아웃한 초유의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도 미완의 4월은 참담하기만 한데.

이제 더 이상 4.9 총선이 할퀸 자국이 성장통이라고 우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야바위 놀음의 여진이 높아 보이지만 우리의 경험칙은 미풍에 그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더군다나  범죄심리학은 사기나 야바위꾼을 막론하고 주체와 객체의 죄질 경중은 있지만 저지른 자나 당한 자나 쌍방이 범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공범사회의 아우성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분기(奮起)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온통 어둠뿐일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사천의 혁명이 있지 않은가?

강기갑을 지켜낸 그 불씨가 있어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지못미(심상정, 노희찬을 못 지켜줘서 미안해하는 네티즌들의 약칭)의 의지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제 4월의 생채기에서 새살을 돋아나게 해야 한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드는 건 우리의 몫으로 남겨두자. 미래는 그냥 오는 게 아니잖은가? 새벽이 눈뜬 자에게 먼저 찾아오듯 희망은 아픈 기억 저 너머로 힘들게 오시는 손님인가 보다. 이렇게 어두운걸 보니 아무래도 새벽이 가까이 왔나 보다. 어둠을 뚫고 오실 고운 손님 맞을 생각에 나는 그만 이리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 먼저 '놈'이란 단어를 칼럼에 쓴 것에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바꿔 부른 작은 소동을 기억할 것이다.

자(者)자는 '놈' 자(者) 자이고 인(人)은 '사람' 인(人)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人 字와 者 字가 들어간 단어들을 검색해 봤더니 범인(犯人), 죄인(罪人), 정치인(政治人)은 꼭 인(人)을 썼고 성자(聖者), 학자(學者), 기자(記者)는 별 거부감이 없이 者란 글자를 쓰고 있어 퍽 괴이쩍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문에 대한 지식이 얕은 나는 아직까지 그 연원을 몰라 의문을 갖고 있으며 '놈' 자를 쓴 데 대해 거듭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김승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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