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다. 겉모습은 그럴 듯한데 사실 알맹이는 별로 없는 사물이나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이와 반대로 겉모습은 볼품없어도 속은 알찬 사물이나 사람도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이것은 우리가 사물이나 사람을 판단할 때 겉보다는 속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리새인들은 율법 전문가요 율법을 철두철미 준수하는 것을 삶의 긍지와 보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애초에는 율법을 전 국민적으로 생활화함으로써 이스라엘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에서 출발했다. 출발은 괜찮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율법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율법 본래의 정신에서 점차 벗어났다. 그래서 예수 당시에는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 구석구석을 통제하는 몹쓸 지배 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 무려 39가지에 이르는 안식일 금지 조항과 정결법을 비롯한 율법의 조목조목을 그대로 지키면 의인이고 그렇지 못하면 죄인으로 낙인이 찍히는 무시무시한 악법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므로 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보도하는 예수와 바리새인들 혹은 율법학자들 사이의 갈등과 대결은 단순히 율법 해석을 둘러싼 한가한 학문적 논쟁이라기보다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는 예수운동 진영과 악법으로 전락한 율법을 무기로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소외시키고 못살게 구는 사회의 기득권 진영 사이의 치열한 대결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오늘 본문은 ‘정결법’을 둘러싸고 벌어진 한판 싸움을 보도한다.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손씻는 의식’을 치르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아마 예수는 정결법의 조목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이 법을 고의적으로 무시한다. 악법은 절대로 지킬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을 향해 “너희는 겉은 깨끗하지만 속에는 착취와 사악이 가득 차 있다. 너희는 십일조 등의 신앙생활은 성실히 하면서도 정의를 행하는 일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자칭 율법 전문가들을 향해 도발적인 폭탄선언을 한다.

여기에서 두 입장의 명백한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예수가 “속”을 본질적인 것으로 보는 데 반해 바리새인들은 “겉”을 더 중시한다. 예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문제삼는 반면 바리새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 예수의 신앙이 알맹이 신앙이라면 바리새인들의 신앙은 껍데기 신앙이다.

이 둘 가운데 참이 어느 쪽에 있는가는 자명하다. 하지만 참을 아는 것과 참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별개이다. 율법 전문가요 국민의 교사를 자처하는 바리새인들이 참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그들은 율법의 생활화라는 원래의 훌륭한 취지에서 이탈해서 율법을 자꾸만 쪼개고 분석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다가 결국은 참된 것, 본질적인 것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신앙의 내용과 형식, 속과 겉,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혼동하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본문 중에 주목할 대목은 “정의를 행하는 일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신앙생활의 근본이라는 예수의 말씀이다. 예수는 “정의를 행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구체적이며 본질적 내용이라는 것을 잠시도 시야에서 놓치지 않았다.

오늘 이 땅의 많은 신자들은 혹시 바리새인을 닮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뜨거운 신앙 열정은 있지만 그 열정이 신앙의 속보다는 겉에 쏠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늘을 찌를 듯한 십자가 종탑들은 밤하늘을 총총히 수놓는데 정작 십자가의 핵심인 정의로운 사랑의 실천은 교인들의 삶에서 슬그머니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오늘의 내 삶은 “겉은 깨끗이 닦아 놓지만 속에는 착취와 사악이 가득 차 있는” 빛 좋은 개살구 꼴이 아닐까. 

정연복  pkom54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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