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이야기꾼인 예수의 신학은 생활신학이다. 생활 주변의 평범한 것들을 소재로 문제의 정곡을 찌름에 있어 예수는 빼어난 솜씨를 보인다. 어렵고 추상적인 개념들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문제의 핵심에 가닿을 수 있는 예수의 이런 능력은 어디서 왔을까?
그것은 예수가 우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신적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다. 예수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예수의 인간성을 쉽사리 간과하는 태도로는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능력은 예수가 교육을 많이 받아 생긴 걸까? 아니다. 예수는 공식교육을 받은 흔적이 없다. 이를테면 무학(無學)인 셈이다. 예수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복음서를 근거로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 볼 때, 예수가 뛰어난 이야기꾼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던 것 같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것이 이야기의 본질이요 생명이다. 아마 예수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 품에 안기거나 무릎에 기대어 이야기에 맛 들였을 것이다. 동네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 역시 예수의 귀를 마냥 즐겁게 했을 것이다.
예수는 이스라엘 민족사 곧 구약을 이야기로 배웠을 것이다. 출애굽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율법 이야기를 들으며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하신 관심과 사랑을 배웠을 것이다. 예언자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커서 예언자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다짐했을 것이다.
나이가 좀 들어 아버지 요셉에게서 목수 일을 배우면서 예수는 노동하는 삶의 소박한 행복과 고달픔을 서서히 느꼈을 것이다. 밤낮으로 농사짓고 고기 잡고 노동하면서도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주변 이웃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깊어졌을 것이다.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차츰 싹텄을 것이다.
예수는 바쁜 생활 중에도 자연과 벗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인생의 참된 행복은 무엇인가, 삶의 비극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따위의 삶과 역사의 전반적인 문제들을 사색했을 것이다. 이 사색의 과정에서 주변 사람과 사물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섬세한 감성과 날카로운 관찰력이 자라났을 것이다.
예수는 구약을 묵상하는 일에도 꽤 시간을 할애했을 것이다. 구약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적재적소에 써먹을 수 있는 능력, 비록 공식적인 랍비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구약 해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예수의 신선하고 날카로운 시각은 결코 단시일에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이렇듯 ‘이야기꾼 예수’라는 말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가 말을 잘 하는 분이란 뜻이 아니다. 복음서가 전하는 이야기꾼 예수는 사회에서 억눌리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깊고 진실한 애정을 가진 예수요, 그 애정 때문에 사회현상 밑바닥의 본질을 간파하는 예수요, 자연과 인간과 현실에 대한 사색과 고민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과 역사의식으로 승화시킨 예수요, 불의에 분노하고 불평등에 저항하는 예수요, 섬세한 감성과 날카로운 현실인식을 겸비한 예수요, 무엇보다도 작은 자의 아픔과 한(恨)과 희망에 동참하는 예수다.
오늘 한국교회의 신학과 목회와 교회교육의 시급한 과제들 중 하나는 복음의 ‘이야기성(性)’을 회복하는 데 있다. 즉 복음을 현실 한복판의 쉽고 평범하면서도 그 안에 싱싱한 생명력을 담고 있는 이야기로 되살리는 것이다.
이야기 없는 예수, 이야기 없는 신학, 이야기 없는 설교, 이야기 없는 복음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같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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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복 pkom54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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