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찢어진 폐가 앞으로 이삿짐 차가 무심히 지나간다. ⓒ 송상호

“그 정도로 설쳐대다 그 만큼 보상 받아 나가면서 뭐가 아쉬워서 그러나”

혹자들은 위와 같이 말하곤 합니다만, 다 부서진 고향을 차마 등지지 못해 깡 소주로 밤을 새운 김 씨 할아버지에게도 과연 그럴 까요. 그래도 내 땅의 흙냄새가 최고라 싶어 만져보고 안아보고 밟아보던 간난이 할머니에게도 그런 말이 가슴에 들어갈 자리가 있을까요. 농사 아니면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이젠 어디로 가서 그 삶을 찾아야 할까요.

“역시 힘없는 우리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누구나 예상 했을지도 모를, 아니면 예상된 싸움의 결과라지만 차마 승복하기엔 그동안 살아왔던 세월이 무심합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노래했던 시인 이상화 선생의 부르짖음이 밤새 한 뭉치가 되어 이사하는 날은 비가 내립니다. 대추리가 아프니 한반도가 모두 아픈 가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추리가 이사하는 이날에 어찌 전국적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겠습니까. 이빨이 아프면 온 몸이 아픈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요.

▲ 갈 길 몰라 헤매는 누렁이가 바로 우리의 심정이로구나. ⓒ 송상호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이삿짐을 싸서 차에 싣느라 정신이 없을 때, 길거리에는 누렁이 한 마리가 주인을 찾아 헤매고 다닙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누렁이가 듬뿍 먹으라고 참치에다가 흰쌀밥 가득히 넣어 만들어 놓았건만, 누렁이는 차마 다 먹지 못하고 남겨 둔 채 거리를 헤맵니다. 누렁이가 어찌 그 많은 밥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으며 어찌 주인이 없이도 밥맛이 있겠습니까. 살맛이 안 나서 떠나는 주인을 생각하면 쌀 맛인들 나겠습니까.

▲ 차마 평생을 일구어온 터전을 떠나야한다고 생각하니 맨 정신으로는 힘들어서 깡소주로 밤새워 아픈 가슴을 달래었다. ⓒ 송상호

어젯밤 새도록 깡 소주를 마시다, 아침에야 겨우 짐을 싸고 떠나는 이 씨 아저씨네 폐가엔 불이 켜져 있습니다. 그동안 살았던 곳이라 차마 불을 끄지 못하고 여기저기 환하게 불을 켜둔 채로 떠났습니다. 몸은 떠나지만, 마음은 차마 떠나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라 하겠습니다.

▲ 주인이 떠난 빈 집에서 멈춰진 시계는 인내의 시간 3시 5분을 가리키고 있다. ⓒ 송상호

대추리가 정치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모르는 그들에겐 그저 지난 세월이 악몽 같았습니다. 경찰과 군인, 시민단체와 학생들이 번갈아가며 야단법석을 치던 지난 세월 속에서 그저 마음은 뒤숭숭하기만 했습니다. 그전에는 마을에 사람이 찾아오면 반갑기만 했지만, ‘미군기지 이전’ 발표가 난 후부터 수많은 날엔 마을에 사람이 찾아오면 덜컥 겁부터 나고 심장부터 콩닥거렸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란가 모르겠습니다.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루도 맘 편하게 잘 수 없었던 날들을 이제야 청산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고향, 내 집, 내 터전, 내 생명 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투쟁할 때보다 지금이 오히려 속 편한지도 모르겠습니다.

▲ .금쪽같은 새끼들과 보내었던 옛집의 추억을 이젠 세상 어디에서도 볼수 없다니 ⓒ 송상호

▲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대추리의 땅과 함께 호흡했던 지난 날들이 이젠 꿈이런가 하노라. ⓒ 송상호

어차피 이렇게 된 것을 하루 속히 잊어버리고 새 출발 해야 할 텐데. 하지만 사람이 어찌 맘먹은 대로 잘 되던가요. ‘우리만 이런 일을 당한 게 아니라 수많은 역사 속에서도 그래왔고, 우리나라의 현대사 속에서도 그래왔고, 지금도 다른 곳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았던가.’라고 자위하며 안타까움을 달래보지만, 대추리의 하늘과 황새울 들녘을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가슴 한 쪽에서 찡해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 폐허가 된 빈 집 앞에서 개나리 아가씨가 활짝 웃으며 집을 지키고 있다. ⓒ 송상호

그래도 주인이 떠나 다 부서지고 깨진 폐가 앞에 노란 개나리가 만발했습니다. 폐가로 둘러싸인 마을 공터에도 새파란 마늘 새싹이 올라옵니다. 어미 까치가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나뭇가지를 날라다가 아기 까치를 위해 집을 짓습니다. 종달새와 참새 들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이삿짐 사느라 바쁜 마을을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며 재잘 거립니다.

빼앗긴 들에 봄 대신 비가 왔지만, 그래도 이 땅에 힘없이 소외되어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폐허위에 펼쳐진 우주와 자연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아봅니다.

▲ 손주 녀석들이 좋아하던 인형들이 마당에 버려진 채로 널브러져 있는 만큼 우리의 영혼도 기가 막힌다. ⓒ 송상호

▲ 손주의 장난감 자동차가 텃밭을 지나 미군기지를 향해 막무가내로 달려갈 듯 폼을 잡고 있다. ⓒ 송상호

▲ 이곳에 평화가 있다고 외쳤건만 평화는 맛보지도 못하고 짐을 꾸려야 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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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송상호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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