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차 안에 차가 타면 어쩌겠다는 거여.”
“그러게 말여유. 허허허허”
“근디 워디 갔다 온 겨”
“아. 장터에 댕겨 오는 거 구먼유.”

대형자전거를 싣고 시골버스에 막 올라타서 자리를 잡은 한 할아버지에게 형님 벌 되는 이웃 할아버지가 말을 건네는 장면이다.

▲ 우리마을 앞을 지나가는 버스에 한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들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운전기사도 늘 있는 일인듯 눈길하나 주지 않습니다.       ⓒ 송상호 /에큐메니안

항상 사람을 만나면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묻거나 아니면 어디 갔다 오는 길이냐고 묻는 게 시골사람들의 일상이다. 사실 어디 가는 것이 궁금한 것도 아니고 어디 갔다 오는 것이 궁금한 것도 아니지만 항상 그렇게 묻는다. 젊은 사람들은 그런 게 귀찮기도 하고 때론 사생활 침해라고도 할 법하지만 시골 어른들은 그런 것을 두고 서로 시비를 거는 일은 없다.

이렇게 시골 영감 두 분이 반갑게 대화를 나누고 있어도 시골버스 운전기사는 눈살 하나 안 찌푸린다. 버스에 자전거를 실고 타는 일이 일상이라는 듯.

그 영감님들 좌석 뒤로 여중생 한 명이 피리를 분다. 주위에서 친구들이 낄낄대며 웃는다. 피리소리를 방귀소리와 비유하며 한참을 그런다. 주위에 있는 어른들이 야단칠 법도 한데 오히려 한 할아버지는 피리를 좀 더 잘 불러보라고 주문을 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

버스 안에 피리소리가 하나 가득해져도 누구하나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눈과 귀를 두고 싶은데 두고 있다. 여전히 여중생들은 깔깔대며 뭐가 그리 좋은지 버스가 떠나가게 웃어도 말이다.

우리 마을을 지나가는 버스는 한 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그러다보니 한참을 기다리다보면 학교 갔다 온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등과 일터에 갔다 온 아주머니·아저씨 등과 장에 갔다 온 할머니· 할아버지 등이 모두 모여 버스를 타고 갈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다보니 세대차이가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타는 일은 다반사다.

아침나절에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노라면 마을 미팅 시간이 되기도 한다. 버스가 오는 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선영이 엄마, 어디가?”
“아, 시내 나가요.”
“안녕하세요. 할머니.”
“그려. 미연이 이제 학교 가는 구먼.”
“근디 자넨 왜 이제 직장 가나. 늦지 않았나.”
“예. 오늘은 직장에 일이 있어서 조금 늦게 가는 거 구먼유.”

▲ 지난 겨울 시골 들녘의 눈길을 헤치고 시골버스가 가고 있습니다.      ⓒ 송상호 /에큐메니안

버스를 기다리는 한참동안 최근 근황과 동향, 변동 사항 등의 조사를 서로 간에 끝낸다. 요즘 시골이라고 서로 바빠서 대화 나눌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만나진 사람들과 말이다. 이게 다 한 시간 간격으로 다니는 버스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보다 더 시간 간격이 벌어진 시골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호강하는 것이 아니겠나 싶기도 하다.

버스가 자주 다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버스를 탈 수 있는 도시 사람들에겐 주어질 수 없는 시골버스에서 나누는 정감과 여유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일 게다. 한 시간에 한 번 다니는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를 타기 위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그렇다고 시골사람들이 배차간격 늘여 달라고 데모도 하지 않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버스 시간에 생활 사이클을 맞추며 그렇게 나름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들인 게다.

그 옛날 산에나 들에 길을 낼 때 큼지막하게 뚫지 않고 지게 하나 다닐 정도로 길을 만들었던 조상들의 마음이 괜히 떠오른다. 커다란 나무가 있고 바위가 있으면 그것을 제거하거나 치우지 않고 돌아서 길을 만들어 사람들이 돌아서 다니게 했던 게 우리 조상들의 마음이 아니었던가. 조금은 변한지는 모르지만 옛 조상들의 그런 삶의 여유가 시골에는 아직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송상호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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