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의가 득세하는 시대에 살아가며 사회에서 통용되는 복을 꿈꾼다는 것은 어쩌면 신앙을 저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Getty Images

말씀을 나누면서 설교를 준비했던 과정 하나를 설명하며 시작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전혀 다른 본문과 설교문을 준비했었습니다. 그렇게 설교문 작성을 모두 마치고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예전 기억을 더듬거렸습니다. 매해 첫 주 설교에 사용했던 본문이 어디였나 하는 기억을 검색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어느 교회 어느 부서를 맡았던지 새해 첫 설교는 늘 시편 1편이 본문이었다는 기억을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원래 준비했던 설교문은 그대로 저장해 두고 새로 설교문을 작성해 여러분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럼 왜 매해 첫 주는 거르지도 않고 시편 1편을 설교했을까 하는 잊혀진 기억을 또 더듬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우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와, 유대인 같다.” 저는 종종 극단적인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야웨와 예수 중 하나만 믿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야웨가 아닐까.’ 그리스도인들 중 누가 들으면 ‘쟤 정신이 외출했니?’ 할 소리입니다.

하지만 더 우스운 것은 이는 비성서적인 이야기가 전혀 아닙니다. 예수가 섬겼던 신은 야웨였고, 예수의 어머니도 야웨였고, 예수의 아버지도 야웨였습니다. 예수는 철저히 야웨 신앙을 가지고 있던 인간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부활 신앙으로 예수는 야웨의 아들이 되었고, 야웨와 성령과 삼위일체 신이 되었습니다.

또한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간의 예수의 모든 지상 사역을 통틀어 한 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야웨의 나라가 가까이왔다’는 선포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제 신앙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를 믿습니다.”

이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 저는 시편 1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구약성서를 공부하기로 마음 먹고 그렇게 매해 거르지 않고 시편 1편을 설교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야웨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런데 매해 나이를 먹어갈수록 마음을 짓누르는 게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복”이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 모든 신학은 다 틀렸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확신이 생겨났을 무렵, 제게 경기를 일으키게 하는 단어가 바로 “복”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저는 이 단어를 사이비 가짜 신앙과 동의어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매해 시편 1편을 설교하면서 얼마나 제 마음이 짓눌렸겠습니까. 그래도 꾸역꾸역 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입니다.

특히 복이 물질적 번영으로 치부되는 한국 교회 상황에서 시편 1편의 복은 마치 영성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더 힘들었습니다. 내면적인 것 같고 영성적인 것 같은 복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야웨를 믿는 사람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몫인가 하는 불만이 제 안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시편 1편을 설교하기 위해 다시 혼자서 히브리어 본문을 펼쳐놓고 번역하다가 제가 잘못 생각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일단 내년에도 혹시 새해 첫 주 설교를 하게 될지 몰라 오늘은 시편 1편 1절과 2절만 살펴보겠습니다. 하여간 다시 시편 1편을 펍교회에서 설교할 기회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먼저 2절을 살펴보면 야웨의 율법이 굉장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율법이 강조되고 있을까요? 본문의 행간을 읽어보면 될 일인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전통적인 신앙은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야웨께 제의를 드리는 신앙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전에 대한 이야기가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또 하나, 성전신앙은 엄밀하게 말해 남왕국 유다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하자, 포로로 끌려가지 않은 북왕국의 신학자들은 살 길을 찾아 남왕국으로 이주합니다. 북왕국의 신앙과 신학인 야웨의 해방전통은 이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즉 두 왕국 중 남왕국만 남은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신앙은 성전신앙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포로기 이전에 선포되었던 제1 이사야서를 읽어보면 성전신앙과 성전신학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런 중요한 성전신앙과 성전신학이 그것도 시편 제일 첫 번째 편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네, 성전이 사라진 상황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성전이 사라진 시대에 이스라엘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방법은 율법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곧 시편 1편을 저작한 개인이나 집단이 거주했던 지역이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였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방인들 사이에, 이방 신들 사이에 살아가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절 하반절에 “야웨의 율법을 밤과 낮으로 읊조린다”는 표현은 전형적인 제사장의 모습니다.

포로 생활은 고통의 나날이었을 것입니다. 야웨의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산다는 것, 삶의 양식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산다는 것은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과 그 무거운 짐이 그들의 어깨를 짓눌렀을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거부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편에서 생각하면 불의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는 의문만 매일 그들의 머리를 감싸게 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까지 성서 주석가들은 1절을 소극적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아니 1절을 2절, 즉 복과 연결시킬 때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2절을 강조하다 보니 1절은 읽는둥 마는둥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얼마나 복 있는 사람인가, 악인들의 계획 가운데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도 않으며,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도 아니하니.” 이 구절은 소극적 저항이 아니라 불의에 대한 적극적 저항입니다. 걷지 않고, 서지도 않으며, 앉지도 않는다는 것은 점진적으로 심화되는 참여와 동조를 거부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행동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악인의 삶의 방식과 전반적인 가치 체계에 대한 거부를 의도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악인들, 죄인들, 조롱하는 자들은 대상이 점점 구체화되며, 단순히 개인의 행동뿐 아니라, 그들이 속한 공동체와 문화에 대한 거부를 포함합니다.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를 떠나는 행위는 불의한 시스템에 대한 거부와 결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행동적 거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의에 대한 적극적 저항을 짱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학내를 벗어나기 위해 체류탄 가스를 들이키고, 전경과 대치하고 싸우고, 그러다가 백골단이 뜨면 도망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면 우리는 불의에 대한 적극적 저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특히 저 같이 50 넘은 사람들의 사고 체계입니다. 그렇게 죽을 고비 몇 번 넘겨야, 아, 내가 적극적으로 저항했구나 하는 안도감마저 듭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1절은 정말 비겁하기 짝이 없게 읽힙니다. 경상도 사람들이 자주 쓰는 표현처럼 ‘뭐고’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요. 삶의 체계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소극적인 저항일까요. 저나 여러분의 삶을 냉정하게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불의한 시대라고 말하지만 이 시대의 삶의 양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집도 한 두채 있어야 할 것 같고, 차도 좀 좋은 거 있어야 할 것 같고, 주식이든 비트코인이든 뭐든 투자도 좀 해야 할 것 같고, 그런 생각 속에서 이게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생각 자체를 안 하고 따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 불의한 시대와 상황이지 바벨론이나 페르시아 사람들에게는 전혀 불의하지 않은 삶의 양식을 시편 1편 기자는 적극적으로 거부하라고 종용합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 스스로는 속에서 조용히 이렇게 외칩니다. ‘저 사람들처럼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살면 거지되기 딱 십상인데…’

네, 삶의 양식을 바꾸는 것은 결코 가벼운 것도 쉬운 것도 아닙니다. 시편 1편 기자는 그런 삶의 양식이 아니라 야웨의 율법을 생각하며 살라고 등을 떠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능하시겠습니까. 네, 우리는 가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올 한해 우리의 등을 떠미는 야웨의 율법 속에서 기쁨을 얻으며 삶의 양식을 바꾸어 갑시다.

이정훈 목사(모두의교회P.U.B.)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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