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월 27일에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 200만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0만명이나 모여서 ‘예배’를 드리자면서 내거는 슬로건은 이른바 ‘악법 저지’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악법’이라 쓰면 ‘차별금지법’이라고 읽어야 한다는 거야 이미 두 말하면 잔소리가 되었구요. 100개 기도문이라는 것을 함께 내걸었는데 그 기도문이라는 것 하나하나마다 ‘동성애’를 반대하고 ‘페미니즘이라는 악한 사상’을 물리쳐야 한다는 말들로 가득합니다.

이 사람들이 이런 예배와 기도문이라는 것을 발표하자마자 저의 SNS 타임라인은 이른바 ‘에큐메니칼’이건 이른바 ‘복음주의’건 간에 이 사람들에 대한 규탄으로 가득찼습니다. 이게 무슨 예배고 이게 무슨 기도냐면서요. 오히려 ‘복음주의’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분들이 더 강한 규탄을 하시더군요. 그리고 결국 이 100개 기도문에 대항하는 다른 100개 기도문도 나왔습니다. 제가 대표로 일하는 무지개센터도 단체명으로 연명을 했습니다.

뒷이야기로 이 200만명 운운하는 집회가 생각만큼 이른바 ‘한국 교회’가 총동원해서 치르는 집회는 아닌 것 같다는 말도 들리긴 하더군요. 특정 교회 목사가 자기 존재를 드러내려 치르는 것에 가깝다는 말도 들립니다. 뭐 그렇다고 한들 이런 집회가 더 쓸데없어지거나 덜 쓸데없어지는 건 아니겠습니다만.

이 집회의 다른 슬로건이 “건강한 가정 거룩한 나라”라고 하더군요. 그 “건강한 가정”이란 아마도 동성애 같은 ‘불건전한’ 성적 지향과 성적 정체성이 모두 사라지고 ‘페미니즘이라는 악한 사상’에 흔들리지 않는 가정을 의미하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묻고 싶어지는 겁니다. 과연 그런 소위 ‘건강한 가정’을 성서가 지지해 주기는 하나요?

2.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사랑하는 나의 임을 찾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를 만나지 못하였다. ‘일어나서 온 성읍을 돌아다니며 거리마다 광장마다 샅샅이 뒤져서 사랑하는 나의 임을 찾겠다’고 마음 먹고, 그를 찾아 나섰지만 만나지 못하였다. 성 안을 순찰하는 야경꾼들을 만나서 “사랑하는 나의 임을 못 보셨어요?” 하고 물으며, 그들 옆을 지나가다가, 드디어 사랑하는 나의 임을 만났다. 놓칠세라 그를 꼭 붙잡고, 나의 어머니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어머니가 나를 잉태하던 바로 그 방으로 데리고 갔다.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서 부탁한다. 우리가 마음껏 사랑하기까지는, 흔들지도 말고 깨우지도 말아 다오.”(새번역 아가서 3장 1-5절)

위의 성서 구절을 이런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겠죠. 어떤 여자가 한밤중에 연인이 그리워 잠에서 깼는데 그 그리움을 도저히 참지 못하겠어서 아예 집 밖으로 나가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내 연인 어디 있냐고 찾다가 마침내 연인을 만나서 침실로 데리고 가서 밤새껏, 지쳐 곯아 떨어질 때까지 사랑을 나누었으니, 아침에 늦잠 잤다고 깨우지 말라고 하는 이런 이야기 말입니다. 덧붙여 보면, 이 두 연인은 아직 서로 결혼하기 전이겠지요?

소위 “건강한 가정”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종종 말하고 싶은 것 중에 이른바 ‘혼전순결’이라는 게 있을 텐데, 저는 아가서의 이런 구절을 성서에서 빼 버리지 않는 한 도대체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혼전순결’이란 걸 말할 수 있는가 생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인용한 새번역에서는 이 구절에 “아름다운 꿈”이라는 제목을 붙여 놨는데요. 그럼 이게 실제 상황이 아니라 꿈이라는 거 아니냐 이렇게 질문하실 분들도 있겠지요. 그런데 꿈이라고 하더라도, 소위 ‘혼전순결’이라는 것과 정반대 되는 걸 꿈으로, 그것도 “아름다운 꿈”으로 꿀 수 있다면, 아가서의 세계에서 소위 ‘혼전순결’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는 게 당연한 결론 아니겠습니까.

아가서는 꼭 이 구절이 아니더라도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은유한 것이라느니 하는 일종의 변명이 붙어다니는 성서이긴 합니다. 그러니 이 구절에 대해서도 그런 변명을 붙이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 “하나님의 사랑”이나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말을 붙인다고 할 때, 이렇게 해석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그 말이 붙음으로써 그 “하나님의 사랑”이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사실은 소위 ‘혼전순결’과는 상관없는, 사랑하는 서로간의 뜨거운 사랑의 요소까지 포괄하게 되는 것이라구요.

3.

아가서 가지고 좀 길게 이야기를 했으니 그 다음 이야기는 비교적 짧게 해 보겠습니다. 언젠가 이 연재칼럼에서도 한번 다루었지만 복음서의 예수님도 ‘가정’에 상당히 냉담하신 분이죠. 밖에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 왔다는데 대놓고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란 말이냐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내 형제고 자매고 어머니다라고 하시기도 했고요. 소위 ‘건강한 가정’ 운운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 중의 하나인 ‘결혼’에 대해서도 부활 이후의 세상, 즉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세상에선 장가고 시집이고 갈 일이 없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지요. 예수님은 그래도 ‘부활 이후의 세상’이라고만 하셨습니다만, 바울의 경우에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아시다시피 한 술 더 떠서 아예 지금 이 세상에서도 결혼이란 걸 하지 말라고 권하기까지 합니다.

성서에 이런 이야기들이 버젓이 나오는데, 혼전순결 운운은 뉘집 이야기냐 하는 이야기, 결혼에 대해서도 안 하는 게 좋다 내지는 하나님 나라에선 그런 거 하는 거 아니다라는 이야기, 가정이라는 것도 혈연이 아니라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 등등이 나오는데 말입니다. 그럼 도대체 저 200만명 모이자는 사람들은 무슨 자신감으로 소위 ‘건강한 가정’이란 걸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주장한다는 슬로건이라고 내건 걸까요.

그럼 가정이고 뭐고 다 박살내 버리잔 이야기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는데요. 거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변을 드릴 수 있겠죠. 소위 ‘건강한 가정’이니 뭐니 운운하는 이야기들이, 정작 사랑으로 뭉쳐야 할 그 ‘가정’이란 걸 지금까지 병들게 만들어 왔다구요. 그러니 정말로 ‘건강한 가정’을 만들고 싶으면, 지금까지 ‘건강한 가정’ 운운했던 이야기들은 모두 폐기처분 하고, 혈연이건 아니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을 나누어야 하고 나눌 수 있는지를 새로 만들고 발견해야 한다구요. 그러자는 이야기가 페미니즘/퀴어 등등의 이야기인 겁니다.

4.

이 칼럼을 구상하던 도중에 뜻밖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한강 작가에게 일단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저 200만명 모이자는 사람들이 요즘 열심히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자기들이 마음대로 뽑은 “성교육 유해 도서”를 공공도서관에서 퇴출하자고 악성 집단 민원 넣고 다니는 건데요. 그 악성 민원에 굴복해서, 혹은 아예 동조해서, 그 “유해 도서”를 정말로 퇴출한 도서관 같지도 않은 도서관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퇴출당한 도서들 중에, 한강 작가의 소설들도 끼어 있었답니다.

저 200만명 모이자는 사람들 대부분도 아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에 환호를 할 겁니다. 주위에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하고 다니겠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그 자랑스럽다의 ‘자’자가 입밖에 나오는 순간, 자기 얼굴에 침뱉는 이야기가 될 거라고 반성은 할까요? 아니, 자기 얼굴에 침뱉는 이야기가 될 거라는 거 알기는 할까요?

왠지 이런 생각이 드네요. 그걸 알기라도 할 정도라면 저 200만명 운운하는 집회를 애시당초 할 생각 자체를 못 했을 거라고 말입니다.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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