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를의 랑글로아 다리, 빨래하는 여인들> (1888, 캔버스에 유채, 54×65cm, 크롤러 뮐러 박물관, 오텔로)

예술 세계에서 남의 작품을 모사하는 일이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은 예술계가 그만큼 각박해졌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불과 백년 전까지만 해도 예술계에서 대가의 작품을 모사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재능이 있어 화가의 길에 들어선 이는 먼저 훌륭한 선배 작가의 작품을 모사하는 것으로 견습 과정을 시작하였고 대가들은 어린 후배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태어난 작품이 원작을 뛰어넘어 유명세를 얻는 경우도 있었다. 밀레를 존경해 마지않던 빈센트는 이런 과정을 통하여 원작의 명성에 버금가는 작품들을 남겼는데 <첫걸음마>(1858, 1890), <씨뿌리는 사람>(1850, 1889), <정오의 휴식>(1886, 1889) 등이 그렇다.

같은 제목의 똑같은 작품을 여러 점 남기는 경우도 있다. 예술품의 생명이 유일성에 있다면 작가 스스로가 이를 간과하는 듯하여 똑같은 구도로 같은 채색의 그림을 여러 점 그리는 속내가 궁금하다.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1800/1795~1800)와 <옷을 입은 마하>(1800/1807)가 그렇고 빈센트의 <감자 먹는 사람들>(1885)이나 <아를의 침실>(1889)이 그렇다.

그런가 하면 한 주제나 같은 풍경을 다양한 구도로 여러 점 그리는 경우도 있다. 빈센트가 아를 외각에 있는 랑글루아 다리를 여러 점 그렸다. 4점의 유화와 한 점의 수채화가 전해지는데 모두 1888년에 그렸다. 랑글루아 다리는 지중해로 흐르는 론강의 하류에 위치한 운하에 목재로 만든 작은 도개교이다.

평소에는 사람과 화물이 다리 위를 지나지만 배가 지날 때면 뱃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평야에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빈센트는 운하가 가장 발달한 고향에서 흔히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여러 점의 작품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다. 이 다리의 본래 이름은 드 레지넬르였다. 그런데 다리 관리인 랑글루아의 이름으로 불려진 것은 아마도 다리지기의 성실함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세상에는 성을 세우는 사람과 다리를 놓는 사람이 있다. 일방통행이 보편화된 세상에서 쌍방통행을 실현하며 살 수는 없을까?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던 랑글루아 다리 앞에서 빈센트가 지었을 미소가 떠오른다.

최광열(기독교미술연구소 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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