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개벽사상 연구의 흐름들

▲ 사진 왼쪽부터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 선생과 2대 교주인 최시형 선생

올 연말이면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가 탄생한 지 2백 주년(1824년 12월 18일)이 된다. 서세동점의 시기, ‘다시 개벽’을 내걸고 나라와 민중을 구하려 했던 그의 개벽 사상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불교의 원효, 지눌, 유교의 퇴계, 율곡 그리고 기독교 사상가로 다석 유영모와 함석헌이 호명되나 정작 민족에게 ‘개벽’을 선물한 수운과 해월 선사를 그 반열에 세우지 못한 현실에서 말이다.

그간 동학은 이 땅에서 자생한 신흥종교의 범주에 갇혀 올바르게 평가받지 못했다. 유불도로부터는 기존 질서를 해친다는 이유로, 서구 기독교의 개화사상에 밀려 또는 사회주의 이념에 호의적이었던 까닭에 배척된 것이다. 유불선과 관계하며 토착화 전통을 창출했던 감리교 신학조차 동학에 냉담했던 일은 패착이었다. 이후 민중신학을 통해 생태, 생명 신학의 등장과 더불어 동학사상이 기독교 내에 수용되기 시작했으나 총체적 연구는 여전히 부재했다.

필자는 수운의 가장 큰 공헌을 ‘종교해방’ 차원에서 보며 기독교와의 관계를 ‘존재 유비’, ‘신앙 유비’ 차원을 넘어 ‘역사 유비’라는 신조어를 통해 이해한다. 이는 신학자 이신을 통해 배운바 제목서 언급한 인문학적 동학 연구자들, 김지하, 김용옥, 백낙청 선생의 사유 의미와 한계를 언급할 것이다. 최제우의 삶과 개벽 사상을 설화를 통해 재구성했던 조동일 교수의 시도 역시 첨언 할 생각이다.

주지하듯 3.1운동 백 주년(2019년)을 전후하여 ‘개벽(자생) 적 근대’란 이름으로 동학을 새롭게 조명하는 연구 흐름이 생겼다. 19세기 말 지키려는 ‘수구(유교)’와 열려는 ‘개화(기독교)’ 양편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를 함께 비판했던 자생적 근대화론, 소위 개벽 사상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는 동도서기란 어정쩡한 입장과 달랐고 동양의 도로 서학(교), 곧 개화의 병폐를 적시했으며 극복한 사례였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시인 김지하의 동학 연구 ⟪동학 이야기⟫에서 비롯했다. 인문학적 소양을 지닌 외부 연구자로서 시인만큼 동학에게 문명사적 의미를 부여한 사상가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동경대전⟫ 1, 2권을 펴낸 도올 김용옥 선생도 이런 김지하를 찾아 함께 동학을 공부한 시절이 있었다. 자신이 펴낸 ⟪개벽 사상과 종교 공부⟫가 말하듯 동학 사유를 공부 차원에서 연마하는 영문학자 백낙청 선생도 한때 김지하의 민중 생명론에 깊이 공감하며 그 연원에 관심했고 도올의 책 출판 이후 더욱 깊게 사유하기 시작했다. 결국 최근 동향을 비롯하여 도올과 백낙청 선생의 연구 역시 일정부분 시인 김지하의 영향 사 속에 있다고 봐도 좋겠다.

하지만 이들 연구 경향마저 같지는 않았다. 서 있는 자리가 달랐기에 강조점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익히 알듯 이들은 증산교, 개신교, 원불교를 나름 의지처이자 동학 이해의 근거지로 삼았다. 가톨릭에 몸담았던 김 시인은 후천개벽 사상에 경도되어 증산과 실존적으로 관계했던 적이 있었다. 기독교 비판 가로 악명높은 도올이지만 그의 학문적 실존은 결코 기독교를 떠나지 못했다.

영문학자로서 ⟪대종경⟫을 비롯한 원불교 경전을 영역한 백낙청의 경우 개벽 종교로서 원불교를 재탄생 시키고자 애쓰고 있다. 영국 소설가 D. H. 로렌스를 개벽 사상가로 자리매김한 일 역시 주목할 일이다. 개벽을 동서 회통의 사상으로 본 것은 ‘역사유비’와 잇댈 여지를 남겼기에 필자에게 특히 소중하다. 조동일의 경우 수운의 삶을 구비문학적 차원에서 조명하여 역사적 연구의 한계를 보완코자 했다. 통합 학문적 시각을 요청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개벽 이해에 차이와 다름만 있지 않았다.

최근 동학 연구자들의 경우 그간 홀대의 반작용이겠으나 ⟪을묘천서⟫ 논쟁에서 보여지듯 개벽 사유를 잉태한 수운의 신 체험을–과거 기독교 계시 실증주의(근본주의)자들이 그랬듯이- 그의 독자성, 특별성 차원에서 역설하곤 했다. 기독교 절대성과 맞서왔던 필자로선 이런 연구 과열(?) 현상에 우려를 표한다. 그로써 구심(집중)력이 생길 수 있겠으나 동시에 원심(확장)력을 반감시킬 수 있는 까닭이다.

시인 김지하나 조동일의 경우와 달리 김용옥, 백낙청 선생 등은 오히려 조선 사상사의 맥락에서 개벽 사유를 이해했고 동학의 통시적 차원에서 연구했다. 본고에서는 언급할 지면이 없어 유감이나 필자 보기에 고운 최치원을 거쳐 ⟪천부경⟫ 에로 소급할 여지 또한 충분하다. 동학의 의미와 가치를 더욱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역사 유비’를 논하는 이유도 결국 동학의 미래, 개벽 사유의 보편적 확장을 위한 것이었다.

주지하듯 ‘다시 개벽’은 수운 최제우 사상의 핵심이다. 중국(유교) 문명의 몰락에 충격을 받으며 시천주 체험을 통해 보국안민의 길을 제시한 선언이었다. 유교의 민중화로 불릴 만큼 민중 친화(탈계급)적이나 서구 기독교(문명)의 병폐와 모순에 저항했고 종교해방의 길 또한 제시했다. 제국주의 침략에 일조하는 기독교, 자기 이익만 취하는 종교(인)의 현실을 여실히 경험한 결과였다.

이런 연유로 수운은 기독교는 물론 서구적 근대를 추동하지 않았다. 우주의 정신적 차원, 곧 기화를 몰랐던 서구 기독교를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빼앗는 제국주의와 중첩시켜 이해한 까닭이다. 이에 대한 거부 및 저항 차원에서 ‘개벽(자생)적 근대’란 말이 연구자들 사이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다. 아울러 그의 ‘다시 개벽’은 선/후천 시기를 나누는 소위 ‘후천 개벽론’과도 달랐다. 일상의 종교(거룩)화, 곧 사람 노동을 하늘의 일로 여길 만큼 일체 종교 틀을 허물어 버린 것이다.

인간이 하늘을 모셨다는 자각에 근거했던 것으로 해월 최시형은 이를 ‘향아설위’로 명명했다. 이것은 종교에 있어 주객을 전도시킨 혁명적 사건이었다. 하늘 모신 자기 마음을 갈고 닦아 지키는 일을 예배(미사)로 본 것이다. ‘무위이화’의 하느님 또한 필시 인간을 통해 일하는 하느님을 뜻할 수밖에 없다. 이는 신서학이라 불리는 과정 사상에도 담길 수 없는 ‘인중천지일’ 즉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다’라는 이 땅의 문화/종교적 차원–고운 최치원을 거쳐 ⟪천부경⟫에 이르기까지- 에서 이해해야 할 사안이겠다.

하지만 동학혁명에 좌절된 민중들에게 천지가 뒤바뀌고 음양이 역전된 후천의 세상, 유토피아가 필요했던바 강증산의 역할도 없지 않았다. 일부의 ⟪정역⟫에 근거하여 시대를 구분한 ‘후천개벽’론에 종교(신화)적 옷을 입혀 민중들을 위로했고 보듬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증산교는 몰락과 분열을 거듭했고 이런 정황에 잇대어 소태산의 원불교가 탄생되었다. 물질 개벽 시대에 정신 개벽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다시 개벽’의 뜻을 계승한 것이다. 백낙청이 강조하듯 수운의 ‘다시 개벽’을 원불교가 재생, 복원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삼동윤리 중 하나인 ‘동척사업’이 바로 이를 적시한다. ‘세상으로부터의 출가’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세상으로의 출가’를 역설한 것이다.

▲ 사진 왼쪽부터 동학 연구에 있어 빛을 냈던 시인 김지하, 김용욕 교수, 백낙청 교수, 조동일 교수

짧게 서술했으나 이상의 글 속에서 개벽 사상 연구자 네 분의 시각은 물론 상호 논쟁점도 살필 수 있다. 우선 민중 생명론을 역설한 시인 김지하는 동학을 강증산의 ‘후천개벽’론의 시각에서 이해했다. 그에게 후천개벽은 인간과 우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가 통일되는 세계였다. 그것이 강증산이 그랬듯 ‘남조선’으로 불리는 이 땅, 곧 ‘남’에서 이뤄질 것을 믿었다. 이는 민중 생명론에 민족의식이 잇대어진 결과였다.

이에 더해 강증산은 종교 혼합적 방식으로 신화적인 천상 세계를 묘사했다. 자신을 예수, 석가를 비롯한 그 어떤 성인보다 우위의 존재, 즉 옥황상제라 칭한 것이다. 여기서 시인은 옥황상제를 강증산 한 개인이 아니라 병신, 광대, 공돌이, 공순이를 비롯한 여러 모양의 민중 속에서 재림하는 존재로 여겼다. 실제로 강증산이 그렇게 믿었는지는 더욱 살펴 논의할 일이다.

여하튼 시인은 뭇 민중 속에서 옥황상제의 재림 및 재현을 봤고 이를 시천주, 인내천의 본뜻이라 여겼으며 개벽 신앙의 골자라 생각했다. 이를 위해 ‘천지공사는 인류 문명사의 기본질서를 뒤집어 바꾸는 일로서 우주적 상상력 차원에서 매우 중요했다. 남/녀, 노/소, 양반/상놈의 관계가 역전되는-천지‘비’괘가 지천‘태’괘로 바뀌는- 세상을 상정한 것인데 동학이 말하는 ‘시천주의 자각이 그 시작이자 발단이었다.

이렇듯 시인은 수운의 ‘다시 개벽’을 증산의 ‘후천개벽’론으로 재구성했으며 후자를 전자의 본질이자 완결판이라 확신했다. 후천의 종교 표상이 시인에게 문자가 아닌 민중을 위한 상징언어로 수용되었고 무엇보다 담긴 뜻에 동조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다시 개벽’을 후천의 틀에서 이해하는 것은 일리 있되 전리일 수 없고 동학의 본뜻과도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도올 김용옥 선생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는 다시 개벽을 선/후천의 분리 차원에서 보는 것을 경계했다. 오히려 앞서 말했듯 그는 동학을 조선 사상사의 틀에서 살폈다. 동학의 개벽론, ‘다시 개벽’에 집중했기에 종교화된 후천개벽에 공감하지 않은 것이다. 시인처럼 민중을 강조하기보다 민본(플레타르키아)개념을 중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본’의 연원을 인간과 하늘 본성을 같게 봤던 선진유학(맹자)에서 찾았고 불교로부터 ‘민’의 개체성(개별아)을 배웠던바 시천주, 인내천 사상 역시 그 선상에서 이해한 것이다.

이어 조선 성리학에 있어- 퇴계와 기대승 간의- 이기 논쟁 역시 그에게 중요했다. ‘리의 능동성을 강조한 퇴계보다는 기에 무게중심을 둔 고봉을 선호했다. 이런 선상에서 도올은 수운의 하느님 체험, 곧 지기론을 궁극적으로 최한기의 ‘기학(기일원론)’과 연계시켜 이해했다. 이로써 신유학의 성리 대신 기적인 ‘몸’ 자체가 중시되었다. ‘몸’적 존재인 사람이 하느님이란 것이 시천주, 인내천의 요체이자 본뜻이 된 것이다. 도올은 여기서 조선 사상사의 ‘개벽적’ 측면을 보았다. 안병무의 민중신학 역시 조선 사상사 면에서 볼 때 오롯이 기일원론 철학의 산물이라 했다.

하지만 동학의 ‘지기’를 ‘리’없는 기일원론과 동일시 할 수 있을지 토론이 필요하다. 수운의 시천주 체험을 기만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안의 신령과 밖의 기화가 결국 같은 것이라면 이기 묘합의 경지라 봐도 좋을 듯싶다. 다석이 말했듯 ‘없이 계신 이’의 존재처인 ‘바탈’ 개념과의 논쟁 또한 기대할 수 있겠다.

주지하듯 도올은 ‘개벽적 근대’란 말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어떤 성격이든지 근대란 말과 동학을 같이 묶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서구 개념으로 조선사상과 그 혼을 재단치 말라는 뜻이었다. 해월이 말한 삼경 사상에서 드러난 탈근대적 사조를 서구가 뒤늦게 감지하여 제 것으로 취한 현실이 우습다는 의미도 담겼다. 동학뿐 아니라 동학 이전의 유교(성리학) 역시 서구 근대성 차원을 훌쩍 넘어섰다고 도올 선생은 확신했다. 시인 지하처럼 민중적이지는 않으나-민본과 민중은 뜻이 같지 않기에- 그 역시도 민족의식에 철저했다. ⟪동경대전⟫ 첫째 권의 부제가 ‘나는 코리안이다’인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비교적 늦게 개벽 사상에 입문했으나 백낙청 선생은 도올 책 출판에 고무되어 이를 종교 공부의 주제로 삼았다. 무엇보다 원불교를 개벽 종교로 자리매김하는 일에 매진하였다. 개교표어인 물질 개벽과 정신 개벽의 상관성을 통해 자본주의적 근대의 이중과제를 설정한 것이다. 개벽 종교의 자각 없이 불교식 마음공부에 빠진 원불교 현실에 대한 비판도 오롯한 그의 몫이었다.

원불교를 개벽 사상의 한 지류로 봤던 도올과 달리 백낙청 선생은 물질문명을 추동하는 현 자본주의 체제와 맞닥트릴 주체를 개벽 종교로 태어난 원불교라 여겼다. 개벽에 관한 그의 종교 공부는 언제든 기승전 ‘원불교’로 끝나곤 했다. 증산의 시각에서 개벽을 봤고 후천개벽을 역설한 김 시인과 달리, 즉 후천개벽의 열망 대신 원불교의 공부(수행)법을 강조한 것이다.

보았듯이 서구의 조어, 근대란 말에 동의치 않는 도올과도 달랐다. 그는 자본주의(적)적 근대를 인정했고 그와 맞서고자 한 것이다. 극복은 적응의 과정을 통한 것이지 부정만이 능사가 아니라 했다. 원불교의 개교표어가 이를 실증했고 그럴수록 공부법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극복 이전의 ‘적응’이란 말에 갈등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김지하는 물론 <녹색평론>의 주간 고 김종철 선생도 이 주제로 그와 논쟁했다. 종교 공부가 자본주의 사조와 맞설 힘을 줄지 모를 일이다.

필자 보기에 백낙청 선생은 시인이나 철학자와 달리 개벽 사유에서 민족주의적 요소를 벗겨 낸 유일한 존재였다. 개벽 사상가를 기독교 서구에서 예컨대 –지면 관계상 내용을 말할 수 없지만-영국 소설가 D. H. 로렌스의 저술 속에서 찾아냈고 예수를 개벽 사상가로서 관심한 것이다. 도올은 이런 시도에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조선 사상사로 동학(개벽)의 지평을 넓혔으나 그를 한국 고유한 유산으로 인식한 결과였다.

필자는 어느 토론 자리에서 ‘토착화는 곧 보편화’란 말을 했었는데 백낙청 선생은 이점에 공감했다. 개벽 사상을 이 땅 밖에서 찾고자 한 것이 그의 공헌일 수 있겠다. 필자가 ‘개벽 기독교’를 언급하면서 그 토대로서 기존 유비와 변별된 ‘역사 유비’를 논했을 때 선생은 이를 수긍했고 수용했다.

조동일의 경우 수운이란 존재에 대해 구전되는 설화에 관심을 집중했다. 앞서 말했듯이 도올이 수운 저서의 진위에 관심하며 판본 연구에 초점을 두었다면 조동일은 구비문학 차원에서 역사를 의미화시켰다. 경주 인근을 수없이 탐방하며 친인척은 물론 지역주민에게 전승된 기억을 수집하여 분석한 것이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의 삶을 전설과 신화로 이해하며 기존 역사적 연구에 의미를 보충코자 했다.

이렇게 해서 출판된 책이 ⟪동학성립과 이야기⟫이다. 이 책 뒤편에는 채집된-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동학과 수운 관련된 설화가 한가득 실려 있다. 조선사상사 맥락에서 수운을 이해했던 도올에게 퇴계 문하에 있던 아버지 최옥이 중요했던 반면 조동일은 그의 동생뻘 되는 친척 최림이라는 인물을 주목했다. 유교 한계를 벗고 개벽을 선포하는 일에 음양 술수를 연구했고 무술을 연마한 그가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하여 ‘칼의 노래’, ⟪검결⟫을 수운 작품 중 가장 의미 있게 여겼다. 이는 최림에 대해 일체 언급 없었고 수운의 주술성을 배격했던 앞선 연구자들과는 크게 다르다. 나아가 수운이 유학, 곧 조선 성리학과의 단절을 강조했다고 본 조동일의 시각은 도올과는 아주 이질적이다. 물론 백낙청 역시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조동일은 수운을 민중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구전들이 변형된 것 역시 역사 왜곡으로 보지 않았다. 구비문학은 성격상 역사학이나 철학과 달리 민중의 열망을 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인 김지하의 민중적 시각과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조동일은 수운에 집중한 나머지 개벽 사상 전반에 걸친 연구가 부재했다. 수운이 민중의 영웅이 된 구비적 전승에 역량을 쏟은 탓이다. 이후 구비문학의 도움을 받아 역사적 수운에게 더욱 풍성한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조동일의 관점을 앞선 연구자들과 연계시키는 일이 쉽지 않을 듯하다.

필자가 ‘역사 유비’란 조어를 생각한 것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서였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신학 원리로 작동했던 두 유비론-존재 유비(Analogia entis)와 신앙 유비(Analogia fidei)-을 갖고서는 세상을 치유하기는커녕 옳게 만날 수도 없다고 판단한 탓이다. 전자는 신 론에, 후자는 기독론에 방점을 찍었고 각기 포괄주의와 배타주의의 에토스로서 세상과 관계했다.

이에 반하여 ‘역사 유비’는 하느님 영의 활동(요아킴 휘오레)에 의존한다. 동서를 대표하는 주개념이 되었으나 영과 기가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전제에 근거해서다. 따라서 영을 성령과 구별하여 그리스도 없는 영을 ‘범 허무주의(Pannihilism)’로 평가절하는 신학적 시도를 거부한다. 동시에 기를 몸과 연계시킨 도올 선생과도 생각이 같지 않다. 몸의 요구만이 아니라 의식과 관계하는 영의 활동을 인정하는 까닭이다. 같은 현실을 살고 있지만 사람 사이의 의식차 또한 의당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신학자 이신은 성서의 묵시 의식과 수운의 신 체험에서 역사(상황)적 제요인을 제거(판단중지)하면 지향성 차원에서 친족 관계성이 있다고 봤다. 개벽 사상을 잉태한 동학과 기독교의 모체인 묵시 의식을 통으로 엮어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들을 역사를 변형시키는 전위(아방가르드) 의식의 동시적 현(계)시로 성찰했다. 이는 동학(개벽)과 기독교를 부분적으로 접목한 기존 신학적 시도들과 변별된다.

여기서 W. 벤야민의 성좌 즉 별자리 이론의 도움을 받아도 좋겠다. 상호 다른 듯한 사건들이지만 성좌가 형성되듯 의식들 또한 지향성 차원에서 일정한 틀로 관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식의 지향성 및 관계성은 포괄주의와 배타주의 양자로는 이해할 수 없다. 동시에 저마다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소위 (종교)다원주의 사조와도 크게 변별된다. 독자적이지만 관계성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선 두 유비는 정도 차가 있겠으나 역사의 진보를 추동해왔다. 하지만 ‘역사 유비’는 ‘실패한’ 역사, 곧 과거 치유(구원) 없는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역사 유비’의 신학은 실패한 과거를 관계성의 파괴이자 부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느님 영은 역사의 인간 의식 속에서 지금도 활동한다. 실패한 역사가 존재하는 한 하느님의 영은 그것의 치유를 우선할 수밖에 없다.

원불교를 통해 근대성의 이중과제를 실현코자 했던 백낙청 선생은 ‘실패한 역사’라는 말을 불편하게 생각했다. 원불교의 경우 은, 혹은 은혜 사상에 방점을 두었던 까닭이다. 기독교도 근자에 원죄보다 원 은총을 강조하는 추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 또한 악해진 현실 역사를 회복시킬 근거를 마련코자 함이었다.

아시아 신학자의 다음 말이 중요하다. “힌두교만큼 세상의 궁극성을 강조하는 종교 없고, 불교 이상으로 세상의 관계성을 말하는 종교가 없으나 기독교는 궁극성과 관계성에 앞서 세상의 부정성에 관심한다.” 본디 개벽이 서세동점 시기 정세적 위기 상황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이렇듯 궁극성과 관계성을 인정하되 부정성에 주목하는 기독교와 더 잘 만날 수 있다고 본다.

필자가 생각하는 ‘개벽적’ 기독교가 바로 이를 지향, 적시한다고 믿는다. 그럴수록 개벽의 사상사 즉 그 문화(한국)적 요인(배경)에 낯설어하는 기독교를 위해 이론적 작업에 헌신하는 토착화 신학이 더욱 요구될 것이다. ‘개벽적 기독교’가 정립, 정착될 수 있다면 수운 최제우, 그의 탄생 200주년을 맞는 올해는 뜻깊게 기억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니 이글을 마감하는 오늘(5월 11일)이 동학혁명의 날이다. 기독교 신학에도 혁명의 가운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이정배(顯藏아카데미 원장) ljbae20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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