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포기하는 자유

▲ 성서의 역설은 종이 되어야 종의 신분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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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십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일이 시내산에서 일어나죠.

이집트를 탈출하고 광야를 지나서 가난한 땅을 향해 가기 시작했을 때, 맨 처음에 이집트를 탈출하고 홍해바다 건너고 광야를 막 걸어갈 때, 이때는 막연한 소망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소망이 무엇이었을까요? ‘이 노예 같은 생활 벗어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에 가서 잘 살아 보고 싶다.’ 이런 소망이었죠.

그 공통적인 소망을 가지고 한데 뭉친 사람들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는 또 다른 말이 있습니다. ‘히브리 백성.’ 그런데 사실 ‘히브리’라고 하는 말은, 하나의 민족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히브리라고 하는 말은 ‘떠돌이, 거지, 강도, 도둑놈, 노숙자, 도망자, 부랑자, 천대받는 사람, 무시당하는 사람, 일용직 노동자, 포로, 용병...’ 이런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별 볼 일 없는 사람, 그럴 듯하지 못한 사람, 범죄를 저질러 가면서까지 근근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 이런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 아피루, 하피루, 히브리 같은 말입니다.

‘순수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있는데, 딱 이 사람들만 데리고 출애굽하고, 딱 이 사람들만 데리고 광야를 건너고, 딱 이 사람들만 데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잘 살았다. 그게 이스라엘 민족이다. 그게 히브리 백성이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지시고 새로운 삶을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나도 구원받고 싶다’고 모여들고 동참한 사람들이 한데 뭉친 민족, 그게 히브리 민족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저 사람들 구원해 주신대, 저 사람들을 구원해서 새 삶을 주신대,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인데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해 주신대, 나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이고 나도 아무것도 아닌데 나도 거기 가서 구원받고 싶다. 나도 거기 동참해서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다.’ 이런 소망으로 한데 뭉친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낸 해방사건, 이게 출애굽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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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모두 처음부터 하나님을 잘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을까요? 아니겠죠. 이 사람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투철한 사람들이었을까요?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에 가슴 뜨겁게 아멘으로 응답하면서 그 소명을 이루어내는 그런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니었겠죠. 심지어는 순수한 이스라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들마저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투철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이 현실의 삶을 벗어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가서 인간답게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따라나선 사람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오합지졸 같은 사람들이, 신앙적으로도 볼품없는 사람들이 시내산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출애굽기입니다. 하나님의 순수한 혈통이 있어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선택된 민족이 있어서, 이 훌륭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홍해 바다를 가르고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는 그런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원받을 만한 대단한 사람 훌륭한 사람을 구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별 볼 일 없는 사람 그럴 듯하지 못한 사람 그래서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로 죄를 지으며 살아가던 사람 그래서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도 고개 들지 못할 그런 사람들을 거듭나게 해주시는 사건이 출애굽 사건입니다.

그 거듭남의 전환점이 바로 시내산 계약인 것이죠. 존재가 바뀌었다고 선언하는 겁니다. ‘너희들은 이전까지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는데. 손가락질받던 사람이었는데. 죄짓고 살았는데 이제는 아니다!’ 하나님께서 선언해 주시는 사건입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그렇게 살았던 존재였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 수 없다. 아예 하나님을 섬기며 살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놨다!’ 하고 하나님이 선언해 버리시는 겁니다. 그것이 지난주에 이야기한 십계명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가서 행복하게 배 두드리면서 콧노래 불러가면서 사는 것이 구원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바로 이 선언이 진짜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존재를 바꿔주셔서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으로 삼아 주시고, 세상에 온갖 아름다운 일들 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삼아 주시고, 세상의 온갖 불행한 일들 나쁜 일들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신 사건. 바로 이게 구원이죠. 이게 진짜 구원의 정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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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내산 사건을 통해 히브리 백성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는데요. 새로워진 사람들, 정체성이 바뀐 사람들, 존재가 변화한 사람들이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옛날이랑 똑같이 살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지 말은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모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살아야지’ 하는데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께서 알려주셔야지죠! 율법이 바로 그 가르침입니다.

마태복음서의 말씀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라’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으로 나아가서, 내 모든 것 내어놓고 주님 앞에서 편히 쉽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서 편히 쉬기만 합니까? 마냥 쉬기만 하나요? 쉬기만 하면 그게 하나님 나라입니까? 아니에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라’ 하고는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있어요.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던 그리스도의 삶을 배우는 거죠. 그리스도의 삶을 배워서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삶이 뭡니까? 나 혼자 행복하고 나 혼자 복 받고 나 혼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넘치게 받는 것 그게 그리스도의 삶인가요? 아니죠. 오히려 십자가에 내 생명을 바치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내어놓는 삶. 그게 그리스도의 삶이잖아요. 하나님께 나와서 쉼을 얻은 사람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배 두드리면서 행복하게 살게 되는 사람들,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는 새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는 삶의 법칙이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은 그저 인간을 규제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율법 속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 슬퍼하고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해 내기 위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어요. 그래서 율법을 읽을 때는 철저하게 그 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읽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시고, 율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 주시고... 그런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서 하나님 기뻐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율법의 진짜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교 율법 속에는, 다른 종교의 율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회정의법입니다. 희년법, 안식일법 같은 것들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는 전적으로 종교적인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의 본뜻은 인간들의 사회 구조가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들 착취하고 억압하고 파괴하지 못하도록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인간들뿐만 아니라 동물까지도 가축까지도 심지어 땅까지도 쉴 수 있도록 쉼을 허락해 주는 것이 안식일법이고 희년법입니다. 또 율법에 관용구처럼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 이 말이 왜 계속 등장합니까? 고대 사회에 제일 힘없는 사람, 제일 돌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입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억울하게 빼앗긴 사람들이 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그런 사람들을 눈여겨보시는 것입니다. 그들을 눈여겨보라고 만들어주신 게 율법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런 세상인 것이죠. 오늘날 근대국가를 지나 현대국가로 넘어오면서 겨우 모든 사람들의 안녕복지를 추구하는 복지국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데, 우리 하나님은 이미 그런 이상적인 복지사회를 우리에게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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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함께 읽은 이야기로 돌아와 봅시다. 오늘 말씀은 종이 자유를 얻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율법 전체를 대하는 인간의 마음자세와 결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율법 앞에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설 것이냐 하는 것을 우리에게 제시해 줍니다.

주인이 종을 삽니다. 종을 사면 평생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6년 동안 일하고 7년째 되는 날에는 자유를 얻어서 제 갈 길로 가게 됩니다. 안식년이나 희년과 비슷하죠.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7년이 되어서 자유를 얻었는데, 이 종이 떠나기 싫어합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주인님이 너무나 잘 대해주시고, 여기서 결혼도 했고, 아내가 남편이 여기에 있고, 자식들이 여기에 있어서, 나가기 싫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아니야! 법이니까. 7년 됐으니까 무조건 나가!’ 하고 억지로 등 떠밀어서 밀어냅니까? 그러지 않습니다. 이 종을 데리고 문설주 문기둥으로 가서 거기에다 송곳으로 귀를 뚫어 박습니다. 상징적인 행위죠. ‘너는 이 주인의 집에 완전히 속했다.’ 그러면 떠나지 않아도 됩니다. 영원히 주인의 종이 됩니다.

‘자유를 찾는 게 좋습니까? 종으로 사는 게 좋습니까?’ 이렇게만 물어보면 누구나 ‘자유를 찾는 게 좋다’고 대답하겠죠. ‘왜 바보같이 영원히 종으로 삽니까?’ 이렇게 말하겠죠.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내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면서까지 진짜 행복이 있는 곳, 진짜 자유가 있는 곳에서 살겠다고 스스로 결단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의 백성이에요.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에요.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종이에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복종해야만 하는 종이에요. 그런데 그냥 종이 아니에요. 종이라고 해서 맘대로 마구 부려먹고 끌려다니는 그런 종이 아니라, 오히려 돌보시고 품어 안아주시고 눈동자와 같이 소중하게 대해주시는 그런 종이에요.

하나님께서 왜 종을 이렇게 소중하게 대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우리를 통해서 하시니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니까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들 소중하게 대해야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니까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일생일대의 소원 하나님의 간절한 바람 그게 이루어지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이지만 멸시천대받는 종이 아니라, 높임받고 귀하게 여김받는 종입니다. 자, 이제 우리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주인의 집에서 하나님의 품에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까지요? 종의 기한이 다할 때까지! 그런데 이 시간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이별의 날이 찾아옵니다. 결심의 날, 결단의 날, 선택의 날이 찾아옵니다.

모세가 40년 광야 세월 다 끝나고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설명해 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생명과 번영, 죽음과 파멸을 놓았습니다. 당신들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신명기 30장 15절의 말씀이에요.

여호수아가 가난 정복을 다 마치고 각 지파들에게 유산으로 땅을 다 나눠준 후에, 세겜에 백성들을 다 모아놓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당신들은 결정하십시오. 오직 나와 내 집은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여호수아 24장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선택의 날이 찾아옵니다. 광야길을 다 걸었다고 해서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인 것 아닙니다. 가난한 땅 들어가서 정복 전쟁 열심히 했다고 해서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헛된 자유를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참된 종살이를 선택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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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시간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영원히 종이 되겠습니까? 그러면 진정한 자유가 주어집니다. 참된 주인의 영원한 종이 될 때, 우리는 진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주인을 떠나 내 맘대로 살아갈 때, 잠시 잠깐 자유로운 것 같지만 우리는 영원히 파멸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집 문설주에 우리의 귀를 뚫어야 합니다. 그렇게 영원히 내 자유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매인 자 되어서 영원히 자유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헛된 자유? 그런 것은 다 하나님께 반납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겠습니다’ 하고 스스로 송곳을 들고 주님의 집 앞에 설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야말로 나의 집이라고, 이곳에 참된 자유가 있다고, 여기에 참된 행복이 있다고, 다른 곳에서 허탄하게 방탕하게 살지 않겠다고, 그렇게 결심하고 결단한 우리의 귀를 주님의 집 문설주에 뚫고 영원히 주님의 종이 되어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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