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아시는 이

▲ 하나님의 부르심은 자신을 이해시키는 한 과정이다. ⓒGetty Images

출애굽기 3장은 전체 성경을 통틀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시고, 구원의 하나님으로써 자신의 구원 계획을 계시하신다. 자신을 드러내시고 인간을 마주하여 만나주신다. 나약한 자를 불러서 하나님의 일에 책임 맡은 지도자를 삼으신다.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신앙의 주요 주제가 모두 집약되어있는 부분이다.

물론 그 모든 이야기들을 한 번에 다 깊이 다룰 수는 없다. 우리가 이번 출애굽기를 읽어가는 주된 맥락은 ‘나라고 하는 사람, 우리라고 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존재들이며,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어떤 삶으로 인도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목적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길에 우리는 광야를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함께 묵상해 보자.

‘우리들은 목적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길에 우리는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 고백에서 제일 중요한 단어가 뭘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약속을 하셨는가?’ 이것이 우리 신앙의 제일 큰 기둥이다. 이 기둥이 올바로 선 후에야, 우리가 그 약속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교리적이고 철학적인 논리가 아니다. 우리 신앙의 구체적인 자리에 긴박한 질문이다. 우리는 절실하게 기도한다. 간절히 간구한다. 그런데 그 간구가 누구를 향해 있는지 명확하지 않으면 아무리 간절한 기도라 해도 그 기도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고 삶의 하소연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알라신 천지신명님, 누구라도 좋으니 나 좀 살려 주세요.’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다. 이 말은 말 그대로 우스갯소리이다. 웃기는 소리다. 신앙의 대상을 향한 신실함과 간절함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목소리만 크게 외쳐대는 세상을 향한 발악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하나님은 모세 앞에서 자기 자신을 분명히 밝히신다. 13절에서 15절 말씀에 ‘나는 곧 나다.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의 이름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히브리말로는 ‘에흐예 아세르 에흐예’라고 하는데 이 말을 정확하게 옮기기는 어렵다. ‘나는 곧 나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대로 되는 존재다.’ 등등 무수한 해석이 있다.

그런 해석들도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이름을 밝히시는 이유는 그런 신학적 철학적 분석을 해서 하나님의 이름의 의미를 파악하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고 계신다. 앞서 우리가 제일 중요한 단어라고 말했던 ‘하나님의 약속’이 선포되는 바로 그 자리인 것이다.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 무엇이 제일 중요할까?

우리에게 하나님이 누구신가가 중요한 것처럼 하나님께도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인가가 중요하다. 우리가 아무 신에게나 기도하고 아무 신이나 믿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도 아무나 자기 백성을 삼고 아무나에게 구원을 베풀지 않으신다. 선착순도 아니고 무작위도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분명한 기준과 분명한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마음씀’이다. 진부한 표현으로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정론이니 하는 어려운 이야기들은 칼빈의 후예들에게나 맡기자.)

‘나는 곧 나다’라는 짧은 말을 길게 해석해 보면 아마도 이럴 것이다. “나는 이런 존재야. 나는 그냥 이래, 아브라함에게도 마음이 가고, 이삭에게도 마음이 가고, 야곱에게도 마음이 가고, 그렇게 마음 가는 사람들을 품어주는 게 나야. 나는 그런 신이야. 그런데 너희들에게 마음이 간다. 너희들이 어찌 사는지 계속 눈에 밟히고, 너희들이 힘들어하는 소리가 계속 귀에 들리고, 내 머릿속에 너희들 생각이 계속 떠올라서 어쩔 수가 없네. 그래서 너희들을 내가 어떻게라도 해줘야만 할 것 같아.” 이게 바로 하나님의 고백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의 고백이다.

7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2장 마지막 부분에도 이렇게 증언되어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된 일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고된 일 때문에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렀다. 하나님이 그들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의 종살이를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셨다.”

그래서 또한 모세를 부르셨다.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의 일을 이 땅에서 이루시기 위해서 이 땅의 사람을 만나신 것이다. 물론 모세가 출애굽의 영웅이요, 우리 평범한 이들을 넘어서는 신앙의 위인이지만,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 영웅도 아니요 위인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인생길을 하나님 없이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 몸부림치다가 실패한 인생이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는 나그네길을 걷는 자가 아니라, 제 갈 길을 걷는 자였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새로운 인생길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출애굽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정체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면, 우리를 바라보고 계셔서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의 소리를 듣고, 우리의 고난을 아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신학적으로 이성적으로 서술되는 것으로 족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현실과 관계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런 분이 우리의 삶에 관여하시는 것이 구원이다. 우리 삶을 가만두지 못하고 우리에게 마음 쓰시는 분께서 과연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것, 그것이 구원이다.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구체적인 우리 존재들을 부르시는 것, 그것이 구원이다.

홍해를 가르고, 만나와 메추라기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고, 가나안 땅을 전쟁으로 다 정복하고, 여리고 성이 함성으로 무너지고 하는 그런 기적들이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 쓰신다는 것이 구원이다. 우리를 보고 계시는 것이 구원이다. 우리가 하소연하는 그 음성을 듣고 계시는 것이 구원이다. 그렇게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이 구원이다.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아야, 우리가 광야의 백성이 될 수 있다. 그 마음을 공감해야 하나님의 땅으로 갈 수 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 아뢰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주시는 오냐오냐하는 미숙한 부모의 마음 같지 않다. 간절함을 품되 하나님의 행동은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백성에게 단호하고 냉정하다. 거리를 두고 가까이 오지 말라 하신다.

5절 말씀을 보면, 모세를 부르시는데 완전히 가까이 부르지 않으신다. 오히려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신다. 거룩한 땅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다. 불타는 가시떨기를 보고 모세가 스스로 가까이 다가왔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불타는 가시떨기를 통해 모세를 부르신 것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께서 불러 놓고는 완전히 가까이 오지는 못하게 하신다. 오히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일깨우신다.

신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신발이 더러워서가 아니다. ‘신발’은 인간의 걸음을 상징한다. 인간 스스로 자기 생각대로 걸어가는 그 길을 상징한다. 이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니 제멋대로 제 갈 길 가던 신을 벗고 하나님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거룩함은 나의 것을 포기해야 나의 것이 된다. 내가 신던 신을 그대로 신고서 거룩하겠다고 우겨봐야 거룩할 수 없다. 내가 신은 신을 벗어야 거룩이 시작된다. 바로 그때, 우리의 삶을 보고 듣고 아시는 분께서 드디어 내려오신다(출3:8).

오늘 3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핵심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우리가 소망하고, 우리가 그 길을 마침내 걸어가서 하나님의 땅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싸워서 그 땅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너희는 다만 나를 예배해라(출3:12).”

다만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하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다.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서(출3:18)! ‘사흘길’은 3일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을 말하지 않는다. 인간 세상을 등지고 완전히 떠나는 시간이다. 하나님께만 이끌려 순종하며 따라가는 온전한 삼일의 시간이다. 광야의 길을 불평하고 투정하고 부정했던 모든 마음이 사라지고, 다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아뢰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온전히 기뻐할 수 있게 된 시간. 그 온전한 세 날이다. 그렇게 온전해져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광야길의 끝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들어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누리는 것이 광야길의 끝이 아니다. 광야길의 끝은 예배에 있다.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것, 그것이 광야길의 진정한 마침이요. 목표다.

오늘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불타는 가시떨기를 볼 수 있도록 우리 눈의 초점을 하나님께로 맞추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불타는 가시떨기를 준비하시도록 우리에게 마음쓰시는 하나님께 간절히 아뢰고 간절히 부르짖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만난 하나님 앞에서 내 갈 길 가던 신을 벗고, 하나님의 거룩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마침내 광야길을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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