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과 고통 중에 우리는 웃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 ⓒGetty Images

오늘 로마서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의 현재가 여전히 십자가의 시간이며 고난과 환난의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고통과 절망만이 지배하는 고난이 아닙니다. 그것은 해산의 고통이며 구원을 낳는 신음입니다. 그저 수동적인 인내와는 다른 것입니다. 완전한 정의와 평화로 가득 찬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의 다른 곳에서 우리가 고난을 기뻐할 줄 알고, 그 약속의 희망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롬 5,2-5).

여전히 죄와 죽음의 법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그 약속을 비웃고 적대하는 힘 앞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힘과 의지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신 그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경험으로 인해서 우리는 어리석게 보이는 그 희망에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결속되고 연대하고, 또 연대 그 자체로써 우리의 희망이 헛된 것이 아님을 증거하고 정의가 깃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알립니다.

창세기 본문에서 하나님은 약속의 실현이 지연되는 것에 좌절하는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십니다. 아브라함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의 약속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체념하며 항변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달래 주려 그에게 하늘의 별들을 보여 주시고 저만큼 그의 자손이 많아질 것이라고 다시 약속하십니다.

배려 깊으신 하나님 덕분에 때문에 아브라함은 체념과 실망을 딛고서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됩니다. 비록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고 희망 둘 곳 하나 보이지 않지만, 실망한 자신을 찾아와 정성스럽게 대해 주신 하나님이 자신의 희망이며 약속 실현의 근거임을 아브라함은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약속을 다시 믿고자 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은 인정해 주시고 의로 여기십니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기다림이 길어지고 그 세상을 반대하는 세력이 득세하는 시대에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항변하고 그의 약속을 의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그리하셨듯이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를 달래 주시고 도우시며 우리의 약함과 기다림을 함께 해주십니다. 우리 속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보존케 하시고 그 세상의 도래의 증거가 되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그 희망으로 구원을 얻고 그 희망 안에서 이미 새로운 세상을 살아갑니다. 악이 득세하고 희망하는 것을 볼 수 없을 때에도 우리는 희망으로 인내하고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악과 불의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다림과 인내는 그 자체로 저항입니다. 우리의 탄식과 신음은 그저 고통스런 아우성이 아니며 오히려 희망이 우리를 탄식하고 부르짖게 만듭니다.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과 착취로 인해 전 지구가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모든 피조물이 함께 신음하며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죄와 죽음의 법으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약속은 따라서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땅과 그 위에 사는 모든 피조물을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탄식하며 우리를 도우시듯이, 피조물의 고난에 연대하고 참여하는 것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지금 우리와 땅과 성령이 모두 신음하고 새로운 세상의 열망으로 탄식하는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요? 하나님은 그 신음에 가슴 아파하시고 그 기다림의 연대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뒤틀린 창조 세계를 펴시고 모든 피조물에게서 죽음의 굴레를 벗겨 주기 위해 행동하실 것입니다. 이 큰 탄식 소리를 축제의 기쁜 외침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미 그 속에서 축제를 맛보고 사랑과 자비와 정의의 세상을 살아갑니다. 정의의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리하시듯이 고난당하는 자들을 홀로 두지 않고 그들과 연대하며 악과 불의에 맞설 것입니다. 그들의 희망을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아무리 커 보여도 장차 우리가 얻을 영광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영광을 들어 우리의 고난이 지극히 작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영광에 대한 소망은, 새로운 세상과 죽음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희망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시작하신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 안에 심어 주신 소망이고 희망입니다.

그러니 그 희망은 공허한 것일 수 없습니다. 그 희망으로 우리는 존재하고 살아가며 죽음의 현실을 넘어 생명의 세상을 꿈꿉니다. 그 희망으로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인내하고 희망의 증거가 되기를 빕니다. 우리의 희망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우리가 가는 길에 주께서 주시는 기쁨과 감격과 기대와 위로가 넘치기를 간절히 빕니다.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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