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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전기(Zoegraphy)

김용복의 또 다른 전통적인 서구 로고스 신학으로부터 이탈은 thanato-graphy(살생 이야기 또는 사망전기)가 아닌 zoe-graphy(생명전기)라는 구분에서 나타난다. 신학은 형이상학에 빠질 수 있는 로고스적 죽음의 담론(thanato-logy)이 아니라 반생명적 죽음의 세력에 대항한 주체적 삶의 이야기, 곧 생명의 내러티브(narrative)라는 것이다. 생명전기는 그가 주창해온 사회전기를 온생명의 차원으로 확장한 생명학적 민중신학이다.

Zoegraphy는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영적 삶의 이야기이며 모든 생명체의 삶의 영적 순환과 삶의 그물이다. 생명체의 본질적인 핵심은 영적 주체를 의미하는 주체이고, 이 주체는 생명의 그물에서 상생적 삶의 영적 교제 속에 산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와 영적 전통은 이것을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본질로 이해합니다.(1)

여기서 김용복이 “민중의 사회전기”를 선포할 때 socio-graphy가 아니라 socio-bio-graphy라고 표현했던 점도 또한 유의해야 한다. 이미 ‘사회전기’라는 개념에도 bio(life)를 포함하고 있었고, 이미 몸 또는 생물(생명)사상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보다 더 정확한 번역은 민중의 ‘사회생명(몸)전기’이다. 여기서 달라진 것은 생명을 뜻하는 신약성경의 세 가지의 희랍어—Bios, Psuche, Zoe—중에서 Bios(biography)에서 보다 영적이라고 생각되는 Zoe(zoegraphy)로 변경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Bios는 육체적 몸(the physical body)의 생명성(눅 8:14)을, Psuche는 영혼(soul)의 생명성(마 16:25)을, Zoe는 신적(divine) 생명성(요 1:14)으로 구분한다. 생명의 본질적 영적 주체성과 상생적 교제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보다 근본적이고 통전적이고 존재론적인 ‘조에’라는 용어를 택한 것이다. 또한 김용복의 후기 민중신학에 있어서 생명의 주체성은 죽음과 삶의 순환성과 모든 생명들과 그물망 같이 연결되어 있는 상생적 존재론과 깊은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후기 신학은 삶과 죽음 또는 민중과 반민중 간에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구분하는 변증법적 이원론보다는 다함께 순환하고 모두가 상생하는 ‘온생명의 도’의 경지를 추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주목해야 할 그의 궁극적 키워드는 상극(anti-vivality)과 분리(divergence)가 아닌 상생(convivality)적 수렴과 융합(convergence)이다.(2)

그러나 그는 결코 민중의 역사적인 생명 투쟁을 간과하지 않으며, 그것이 생명을 죽이는 살생적 폭력(thanato-graphy)에 저항하여 생명을 살리는 영적 저항 운동들이고, 역사적으로 서로 수렴한다고 밝힌다. 이렇게 생명전기(zoe-graphy)들의 수렴에서 상생적 삶의 우주적 영성의 융합을 도모하는 해석학적 단초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토피아(Seontopia)

김용복은 또한 우리 민족을 지극히 사랑하는 애국자였다. 외국으로 가는 유혹을 받아왔던 내게 그는 항상 한국신학자는 신학의 현장인 우리나라를 떠나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셨다. 그는 이러한 생명전기의 이상향을 우리 민족의 원시 생명 공동체에서 찾는다. 그러한 우리의 고대 부족 공동체의 영적 삶을 선경(仙境)이라고 칭하고, 영어로 선토피아(Seontopia)라고 번역하며 또 하나의 새로운 용어를 생산한다. 

이 구절은 김용복의 신학이 저항적 민중신학에서 상생적 생명학으로, 나아가 ‘선(仙)의 신학’으로 발전하는 것을 시사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서구신학의 틀에서 한국 및 동아시아 신학으로 환골탈태하려는 시도가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는 아쉽게도 그것을 완성하지 못하고 작고하셨다. 이제 그것은 후학들에게 남겨진 과제가 되었다. 앞으로 민중신학이 그의 이러한 시도를 이해하고 발전시켜간다면 한계에 부딪친 서구 사상의 틀에서 벗어나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생명의 주체적 사상으로 격상될 수 있을 것이다.

김용복은 삼국시대부터 한국역사를 훑으며 선경(선토피아)의 영적 저항의 이야기, 곧 생명전기를 발굴한다. 우선 선토피아는 풍류(風流)와 연관된다. 풍류는 “[민(people)] 공동체의 고전적인 영적행사 중 하나”였다. 그는 선토피아 사상으로 하나의 민중신학적 풍류신학을 시도한다. 여기서 그는 한국신학의 고질적 이원화, 곧 토착화(종교) 신학과 민중신학의 두 이야기가 ‘합류’, 곧 ‘수렴’과 ‘융합’할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한다. 그가 한국사에서 찾아낸 생명전기 또는 풍류전기의 요약을 들어보자.

이러한 사상의 기조는 김용복이 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 논문에서 어느 정도 표출되었다.(6) 프린스턴 재학 시절, 그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보다 프린스턴 대학의 동양학 과목들과 도서관에서 더 많이 공부했다고 여러 번 내게 말하곤 했다. 그때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는 강력한 세계적 에큐메니스트였던 맥코드(James I. McCord, 1919-1990) 총장이 재임하고 있었다. 김용복은 맥코드 총장이 에큐메니즘의 세계화를 위해 인재로서 양성한 ‘멕코드 키드’ 중 하나였다. 그는 세계적인 신학 논의가 벌어지는 프린스턴 신대원과 프린스턴 대학교의 동양학 도서관과 세미나들을 오가며 조국에 대한 향수를 동양학 공부를 통해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찾고 신학적 주체성의 확립을 통하여 풀었던 것이다. 

그와 함께 ‘멕코드 키드’라고 불렸던 아시아계 장학생들은 이후 각각 자기 국가로 귀국하여 함께 ‘아시아 마피아’라는 별명을 득하며 아시아 신학과 에큐메니즘 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하였다. 한국의 김용복을 위시하여,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의 총무를 지낸 필립핀의 카리노(Feliciano Carino), 인도의 아브라함(K. C. Abraham), 싱가폴의 유추락(Yeow Choo Lak) 등이 그들이다. 1997년 수원에서 김용복을 위시해서 그들이 주도해서 설립한 단체가 아시아신학자협의회(Congress of Asian Theologians, CATS)이다. CATS는 아시아 대륙의 가톨릭을 포함하여 모든 교회가 참여하는 신학 프랫홈이다. 이런 전 대륙적인 에큐메니칼 단체는 세계에서 CATS가 유일하다. 나는 CATS의 6대와 7대 공동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상기 인용구에서 열거된 생명전기는 한국사, 특히 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에 의해 업데이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김용복은 삼국유사에 기재된 역사가 생명전기로서 중요성을 매우 긍정적으로 인정한다. “몽골제국의 침략 공격에 대한 선토피아의 저항 이야기”로 이해한다. 그의 의도는 이해하겠지만, 그러나 이것은 본래 기득권에 의해 변방에 밀려있는 민중의 사회전기를 발굴하려는 본래의 그의 민중신학 취지에 부합하는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일부 한국 고대사학자들은 단군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을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설화 또는 신화로 이념화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축소 조작했다고 비판하면서 그에 대한 새로 발견된 역사적 고증들을 제시하고 있다. 요하 문명, 홍산 문명 유적들에 의해 재조명되는 고조선을 비롯하여 한국 고대사는 매우 흥미진진한 분야로서 민중신학을 비롯하여 한국신학들이 연구해서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

김흡영(한국과학생명포럼 대표)  heup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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