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Getty Image

바르트의 관심은 아가페와 에로스를 비교하고 단순히 아가페의 우월성을 제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선사된 그 아가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가를 고찰하는데 있다. 바르트는 이 아가페 사랑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을 세 가지 방식으로 말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의 근거이고, 두 번째로 우리 인간 존재와 실존에서의 사랑의 행위이며, 마지막으로 그것이 지향하는 사랑의 대상이다.

사랑의 근거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화해사역의 결과는 성령을 통하여 기독교인의 삶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바르트에 의하면 기독교인은 바로 이 하나님의 선행하는 사랑 때문에 사랑하게 된다. 아가페 사랑은 정확히 이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기 때문에, 인간은 결코 사랑의 주도권을 잡을 수도 없고 또 잡지도 못한다. 그는 단지 하나님이 그를 먼저 사랑하셨고 또한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은혜의 성격을 지니고, 인간의 사랑은 감사의 성격을 띤다(CD Ⅳ/2, 753).

그런데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은 우선 그의 본질적 존재 안에서의 내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본래 그 자체로 사랑하는 하나님이다. 그는 단지 사랑하면서 존재할 뿐이다. … ‘하나님은 존재하신다’는 말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은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CD Ⅳ/2, 755).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CD Ⅳ/2, 756이하).

따라서 바르트가 사랑의 근거를 말할 때, 그가 지시하는 것은 자유롭고, 감동적이며, 역동적인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에 근거하는 영원한 사랑이다. 여기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가 서로 자기를 내어주는 영원한 사랑으로 서로를 묶는 사랑의 띠이다. 성부, 성자, 성령은 이와 같이 영원히 분리할 수 없는 공동체적인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고 또한 동일한 목적을 갖고 존재한다.(1)

바르트에 의하면 바로 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르고(opus Dei ad extra), 그 사랑으로 우리를 구속하고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사랑은 결국 “창조적인” 사랑이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랑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분에게서 사랑을 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가 된다”(CD Ⅳ/2, 776).

베버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말하자면 기독교인의 사랑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근거하는 사랑이고, 성령에 의해 우리 안에서 반영되는 사랑인 것이다.

사랑의 행위

그러나 죄된 우리 인간에게서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날 수 있는가? 기독교인 또한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죄인이 아닌가? 그는 사랑과 전혀 관계없는 참으로 많은 일을 하지 않는가? 물론, 기독교인에 대하여 그의 존재를 사랑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기독교인인 한에서” 그는 “또한” 사랑한다. 그의 사랑은 그것이 근거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에 의하여 “공개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그가 하는 모든 활동을 방해한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그의 다른 행동들에 흔적을 남긴다. … 그것은 잿더미 아래 있는 작은 불티와 같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사랑할 자유를 주셨기 때문이다.”(CD Ⅳ/2, 783-784).

기독교인의 사랑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하나님에 의해 그에게 허락되고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자유롭고, 자발적인 행위의 특징을 갖는다. 그것은 언제나 이 세상의 법칙을 따르는 자연적이고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에로스와 대조적으로 그 자체를 새롭고 비범하고 예기치 않은 어떤 것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의 사랑은 성령을 통한 새 창조와 거듭남의 사건에 의해 결정된 기적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행위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신적인 사랑의 연장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꼭두각시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고 그에게 대답하며 그의 계약상대자로서 그에게 책임을 다하는 한 독자적인 주체로서 그 자신의 마음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행하는 행동이다”(CD Ⅳ/2, 786). 여기서 우리는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활동이며 또한 믿는 인간의 행위 안에서의 우리의 활동이기도 한 우리의 신앙의 핵심에 있는 역설을 본다.

바르트가 다음과 같이 진술할 때 바로 그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성령으로부터 진정한 자기자신이 되는 자유를, 곧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동료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랑을 단순히 어떤 태도나 견해, 감정, 혹은 느낌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없고 또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것들이 아무리 고상하고 심오하더라도, 그것들은 아직 어떤 것을 주는 구체적인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이 단지 내적인 차원에 머문다면, 그것은 결코 진정한 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모범을 따르면, 사랑은 상대방에게 무엇을 주는 행동에 있고, 따라서 그것에 의하여 사람이 그 자신에게서, 즉 그의 내적인 영역에서 빠져 나오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하는 행위에 일치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사랑은, 예수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행 20:35)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본질상 “전달”이요 “주는 것”이다(CD Ⅳ/2, 786). 그것은 단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제한되지 않고, 자신의 정력과 시간, 그리고 심지어 자기자신까지도 주는 그러한 특징을 갖는다(CD Ⅳ/2, 733). 바로 이 점에서 그 사랑은 “기쁨”이고 “즐거움”이다(CD Ⅳ/2, 788).

그러나 이 기쁨은 에로스를 통해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기쁨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의 사랑은, 소유와 상실, 도취와 각성, 환희와 환멸 사이를 진자처럼 끝없이 왕복하는 에로스와 달리,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존재하며,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사랑 그 자체인 하나님의 행동을 모방하고 있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CD Ⅳ/2, 789).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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