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hnorr von Carolsfeld, 「Crucifixion」 (1851-1860) ⓒWikimediaCommons

최근 개봉된 영화 중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삶과 죽음을 다룬 영화 <탄생>이 많이 회자하고 있습니다. 저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소년 김대건이 어린 나이에 신부가 될 재목으로 뽑혀 온갖 고초를 겪으며 타국에서 신학 수업을 받고 신부가 되어서 다시 목숨을 걸고 조선으로 돌아와 1846년 순교하기까지를 그린 영화로, 종교영화로서뿐 아니라 19세기 강하게 몰아치는 서세동점 앞에서 조선이 놓인 정황을 그린 역사물로도 훌륭하다고 합니다.

유사한 관심 속에서 저도 올 한 해 동안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神學에서 信學으로」라는 글을 한 기독교 저널에 연재하며 지냈습니다. 동아시아 유교 문명과 서구 기독교 문명의 대화가 더욱 절실해진 오늘 현실에서 특히 한국 유교사에 주목하면서, 동아시아 유교 문명의 구성에서 한국이 어떤 역할을 했고, 조선에 들어와서 어떻게 고유한 조선적 유교를 전개시켰으며, 그중에서도 18세기 이후로 조선 유교가 서학을 만나고 19세기 후반부터는 개신교와 만나면서 어떤 과정과 모양을 거쳐서 오늘의 한국적 신앙과 신학이 이루어졌는지를 살폈습니다. 일종의 작은 <한국 유교사>로서 오늘의 기독인들에게 그들 신앙의 부인할 수 없는 뿌리가 되는 유교 문명을 좀 더 다가가기 쉽게 소개하고, 그것을 통해서 현재 기독교 신앙이 당면한 여러 난제를 돌파할 가능성을 찾고자 한 것입니다.

1. ‘보편 종교’ 시대와 인권(생명권)의 근거

한국 기독교 신앙의 제 모습 가운데서 다석 유영모나 함석헌의 신앙이 가장 열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동아시아 ‘민(民)’이나 ‘인(仁)’ 등의 의식을 기독교 신앙적으로 더욱 밀고 나가서, 즉 만인에게 무조건적으로 하늘 부모가 되시는 인격주의적 하느님 의식에 바탕을 두고서, 우리 모두가 하늘 씨앗(씨알, 仁)의 담지자(民)로서 그 하느님의 자식, 즉 ‘천자(天子)’인 ‘그리스도’가 되는 길을 크게 열어 놓았습니다. 거기서 다시 신앙의 제도화나 성속(聖俗)의 구별로 걸림돌이 되는,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조건’이 되는 교회 공동체나 성직제도 등에 대해서 김교신(金敎臣, 1901-1945) 같은 이는 ‘무교회주의’를 주창했고, 이신(李信, 1927-1981)은 초대교회 정신의 근본적인 회복을 통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로의 환원을 주장했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신앙인 개개인의 자유와 주체, 인격적 덕목의 실천을 중시했습니다.

이렇게 오늘날도 인류 문명의 다양한 종교 전통들이 함께 어우러져 역동하고 있는 한국 토양에서 기독교 신앙이 전개되는 모양과 방향을 보면서 저는 인류가 이제 한 ‘보편 종교(a common religion, 眞敎)’의 시대로 들어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보편 종교란 어떤 사람의 존엄이나 인권을 말할 때 그것이 지금까지처럼 그가 속해 있는 여느 종족이나 국가, 문화나 언어 등의 온갖 외적인 것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 지금 태어나 단순히 이곳에 있다’라는 간단하고 명료한 ‘탄생과 존재의 사실성(탄생성, natality)’에 따라서만 결정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 지금 태어나 존재하는 모든 것, 즉 ‘생리(生理)’를 담지한 것은 그 자체로 존엄성과 인권과 거룩함을 보유한다는 것입니다.

2. 생명 삶의 지속을 위한 여성들의 감수성

그런데 오늘의 이런 보편 종교의 시대, ‘거룩(聖)의 평범성’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그 일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영역이 우리 성별에 대한 차별에 들어있습니다. 상황이 그러한데도 윤석열 정부는 그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평등’ 등 젠더 관련 표현들을 삭제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시대를 역행하는 처사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생각해보고자 하는 누가복음 저자는 그런 측면에서 많이 다르고, 특별한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 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따라온 일련의 여성들을 등장시켜 그들이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함께 지내다가 예수가 처형을 당하는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며 그 모든 장면을 마음에 잘 담아두었다는 참으로 인상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 비단 이 마지막 장면에서만 누가의 여성들이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은 바로 책의 맨 처음을 예수 어머니 ‘마리아의 찬가’로 열고, 그 찬가를 받아주는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자벳을 등장시켜 마리아의 신앙적 선배로서 두 여성의 믿음과 협력을 통해서 예수 탄생의 메시지가 세상에 선포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에 더해서 제가 보기에 가장 핵심적인 것 중 하나는 바로 예수 부활의 첫 증인이 여성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 안식일 전날(금요일)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신 후 그 비참한 장면을 멀리서 보고 있던 여인들은 안식일을 지내고, 그전에 요셉이라는 착하고 의로운 의회 의원이 예수 시신을 빌라도에게서 찾아와서 모신 곳을 알아두었기 때문에, 안식일 다음 첫날 새벽 예수 무덤으로 찾아갑니다. 준비한 향료와 향유로 그의 시신을 닦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그녀들이 만난 것은 예수의 시신 대신에 ‘눈부신 옷을 입을 두 남성’이었고, 그들은 예수가 생전에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기 때문에 거기에 있지 않다는 말을 합니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고 있습니까?”라고 그들은 묻는데, 참으로 생생하고 특별한 구술입니다.

3. 예수 죽음과 자중지란의 파국

저는 요사이 누가복음을 다시 읽으면서 저자 누가가 다른 공관복음서 저자들과 다른 아주 특별한 예수 이해를 하는 것을 여러 곳에서 만났습니다. 그중 하나가 예수를 십자가에 달리게 한 일에서의 로마 총독 빌라도의 행태입니다. 누가복음 23장 이하를 보면 사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끌어온 예수를 심문한 후 그에게서 특별한 죄목을 찾을 수 없다고 했고, 여러 번에 걸쳐서 그를 풀어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과 특히 교회 지도자들, 대제사장들과 신학자들(율법학자)이 그 말을 듣지 않았고, 그러자 빌라도는 예수를 같은 유대인 왕 헤롯에게로 보내서 재판을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거기서도 해결되지 않자 그는 자신의 사면권을 이용해서 사면하려고도 했지만, 유대인들은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보다는 살인 죄인 바라바를 사면하라고 외치자 누가복음은 빌라도고 어쩔 수 없이 “마침내 그들의 요구대로 하기로 결정하였다(누가 23:24)”라고 전합니다.

저는 이 누가의 섬세하고 우리 현실 삶과 잘 부합되게 들리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대인들 속에서 일어난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생각했습니다. 남(빌라도)은 어떻게든 예수를 살려주려 했는데도 자기들끼리 싸워서 예수를 죽게 했고, 이후 자신들 유대인이 그렇게 중시하던 예루살렘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완전 폐허가 되어서 2천 년 이상의 디아스포라 시대로 넘어간 것을 말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이라는 외세와 그 세력에 철저히 종처럼 붙어서 그 세력을 이용하여 자기 동족을 죽이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했고, 그러나 결국 자신들도 함께 총체적 파국을 맞는 것을 보면서 그 모습이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 한민족의 극심한 남북 대치와 남쪽 윤석열 정부에서의 권력자들의 행보와 오버랩됩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군작전 통수권을 내어주었고, 이후 돌려준다고 해도 받지 않고, 그 외세는 평택에 세계에서 제일 큰 군사기지를 세울 정도로 점점 더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으로 이 땅을 점령해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동족 간의 갈등과 미움은 더욱더 쌓이고 있는 상황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매우 염려스럽기 때문입니다.

4. 다시 생명을 위해 첫발을 내딛는 여성들

앞에서 살핀 누가 여성들의 처음 시작의 역할이나 빌라도와 그 반대편 유대인 지도자들과 민중들의 대치 등에서 드러나는 누가복음의 특별한 시각에 근거해서 저는 오늘 21세기 인류 문명과 한국 사회가 직면해 있는 위기 상황에 대해서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가복음에서뿐 아니라 어쩌면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 이야기에서도 드러나듯이 삶의 위기 때마다, 그래서 또 다른 전환과 변혁이 시급히 요청되는 때가 되면 여성들이 그것을 더 예민하게 감지하고 전환을 위한 첫걸음을 떼는 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통 알아왔듯이 우주에서 ‘남성적 힘(陽)’이 시작하는 힘(乾)이고, 여성적 힘(陰)이 그것을 유지하고 지속해서 열매를 맺도록 하는 힘(坤)이라는 이야기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여성들이 삶과 생명을 유지하고 지속하는 일에 주력하다 보니, 어떤 상황에서는 그 일이 더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먼저 더 섬세히 감지하고, 그래서 그 지속의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과감히 새로운 첫발을 내딛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 생태계에서도 종의 생존이 위기에 처할 때는 암컷이 더 많이 탄생된다는 사실에 부합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면 남성들은 거기서 전환된 상황을 세차게 밀고 나가 다시 안정된 삶의 장을 구축하고 전개 시키고자 힘을 쓰면서 그렇게 우리 삶이 지속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이해입니다.

이런 삶과 생명의 내적 패턴을 저는 누가의 예수 이해에서도 보면서 그래서 그것을 ‘페미니스트’ 누가 이해라고 이름 지어 보았습니다. 원치 않게 예수를 임신하게 된 일에서부터 그 일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잉태의 의미로 받으며 찬양한 일, 그래서 그와 같은 마리아 찬가로부터 예수 복음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한 여성적 시작을 받아서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탄생한 아기 예수를 잘 감싸주고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어서 예수로 성장하도록 했고, 오늘 우리가 읽었듯이 그로부터 부활의 주가 되셨습니다.

5. 새로운 시작을 위한 ‘부활의 평범성’ 확대

누가가 전하는 예수 부활의 이야기도 다른 복음서 기자 이야기보다도 오늘 우리에게 훨씬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사랑하는 부모나 자식, 배우자가 죽음으로 떠나려 할 때, 그 주변에서 마지막 자리를 지키는 사람에서 종종 비몽사몽 간 어떤 인물이 나타나서 그 죽어가는 자를 인도해가는 것이 보여집니다. 또한, 죽은 자가 며칠 내에 다시 현현하여 너무 염려하지 말고 잘 지내라는 당부나 사랑의 말을 한 후 진정 떠나는 일을 경험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는데, 누가복음의 이 부활 이야기도 저에게는 이렇게 우리가 우리 현실 삶에서 드물지 않게 경험하는 죽음과 떠나감, 새로운 현현 등의 모습과 유사한 과정으로 서술되어 있다고 보입니다.

새벽에 예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에게 예수의 이생에서의 몸의 마지막이 모든 것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눈부신 옷을 입은 두 남성이 일러주고, 죽은 예수가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잠깐 나타나서 다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위로와 당부를 하신 후,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셨다’라는 기술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그렇게 몸의 마지막이 모든 것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고, 큰 위로를 받아 기뻐하며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지냈다는 이야기가 오늘 우리도 유사하게 겪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특히 우리 사회 세월호 참사나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가족들이 겪은 이야기가 여기서 오버랩됩니다.

저는 이러한 관찰로 이제 예수 부활의 이야기를 서구 기독교 신학이 지금까지 쭉 그렇게 해왔듯이, 예수에게만 유일하게 일어났던 단 일회적인 일로 그려서 그것을 형이상학화하고, 실체론화해서 그만을 유일하고 배타적인 그리스도로 그리는 일을 우리가 그만두어야 하는 의미라고 보고 싶습니다. ‘빛을 주는 자’라는 의미의 누가라는 이름의 저자는 비유대인이었고, 당시 직업이 의사였으며, 바울의 선교로 예수를 알게 되어서 큰 감화를 받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매우 성속 통합적이고, 인간적이며, 여성주의적인 섬세한 안목에서 예수를 이해하고자 한 사람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로부터 저는 이제 누가의 이러한 부활 이해를 우리 신학(神學/信學)이 앞으로 더욱 몰두해야 하는 주제로 ‘부활의 평범성’의 일을 가능케 하고, 그것을 확대하는 일에서 열쇠로 삼고자 합니다.

동아시아 유교 문명권에서 전해지는 우주와 인간 삶에 관한 통찰인 『주역』을 19세기 말 다시 한번 한국적 『정역』으로 그려낸 김일부(金一夫, 1826-1898) 선생에 따르면, 오늘 이미 시작된 후천개벽 시대에는 음양이 과거의 ‘억음존양(抑陰尊陽)’에서 ‘조양율음(調陽律陰)’의 조화와 평등, 화합의 모양으로 크게 변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오늘 기후 위기 등 여러 차원에서 사실적 위기나 종말이 자주 말해지는 때에, 과거에 여성들의 용기에 찬 진단과 생명을 향한 행보가 있었듯이, 그 시작의 용기와 더불어 여성과 남성이 더욱 긴밀히 조율하면서 함께 헤쳐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 행보를 힘차게 밀어주는 토대 중 하나가 부활의 평범성과 보편성을 더욱 확대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신앙인이 이 주제를 진정성 있게 함께 고민하고 성찰해 나갈 것을 기원합니다.

이은선 소장(한국 信연구소)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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