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쾌대, 「군상4」 (216x177cm, 천에 유채, 1948). 개인소장

한국의 신학자로서 미술에 관심을 가진 신학자가 없지는 않겠지만, 미술과 신학적 대화를 시도하고 글을 쓴 첫 신학자는 아마도 유동식일 것이다.(1) 성서 신학자이자, 종교학자이고, 또한 선교학자이기도 한 유동식은 저서 ‘한국신학의 광맥’을 통하여 70년대 초 한국의 신학적 발전과정을 세 유형으로 나누어 정리했다. 당시에도 그는 이미 한국신학의 한 광맥을 스스로 이루고 있었다.

한국의 예술신학자, 유동식

그의 신학적 사유의 발전을 토착화신학, 종교신학, 풍류신학, 최근의 예술신학으로 정리한다고 해서 그의 신학적 사유가 꼭 연대기적, 발전론적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동식 자신이 고백하듯이 미술에 대한 관심은 이미 그가 신학수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싹텄기 때문이다.(2) 미술에 대한 유동식의 관심은 그러나 그의 가족력, 개인적 기호 이상의 것이다.

그가 신학자로서 예술에 관심을 갖는 배경에는 ‘예술 없는 종교’가 단순한 도덕종교, 혹은 영적 구원을 파는 장사꾼의 종교로 전락한다는 종교비판, 현대 문명이 본래 종교-예술적 존재인 인간의 왜곡과 상실을 조장한다는 문명 비판,(3) 신학이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학문적이어서 예술가보다도 역사와 문화의 깊이를 직관적으로 꿰뚫어 보지 못한다는 신학비판이 놓여있다.(4)

유동식은 종교와 예술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았고, 또 분리될 수도 없다고 본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종교와 예술이 분리되기 시작했는데, “르네상스가 인간을 발견하고 종교적 지배로부터 해방한 것은 옳았지만, 종교 없는 예술, 예술 없는 종교를 초래”했고, 결국 “예술 없는 종교는 도덕을 위한 종교로 변하던가 영적 구원을 파는 장사꾼의 종교로 변해갔고 … 종교 없는 예술은 자신을 우상화한 예술 지상주의로 흘렀다”는 것이다.(5)

유동식은 예술을 “미적 이념의 형상화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런 의미에서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최초의, 최대의 예술가”라고 말한다. 이점은 순더마이어도 동의하는 데, 그도 “하느님의 첫 번째 행위는 예술가처럼 세계를 창조하고, 혼돈을 제어하고 형상화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하면서,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예술을 통하여 하느님의 창조에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6)

또한 유동식은 “작품은 예술가의 의도를 담은 내용과 그 표현형식의 통합체”라고 정의하면서 “작품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전경(前景)과 그것이 우리에게 현상하고 있는 이념적 세계, 곧 후경(後景)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7) 유동식의 관심은 이른바 ‘후경’의 해석에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가 이른바 종교화만을 신학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는 종교적 통찰에 의해 시대정신을 형상화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로댕의 ‘지옥의 문’, 한국의 ‘석굴암’ 등을 분석하고 해석하지만,(8) 피카소의 ‘게르니카’, 이쾌대의 ‘군상’,(9)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10) 등에서부터, 현대 건설 명예회장 정주영의 통일 소떼몰이(1998년), 동해안을 향한 신년 해맞이 행렬, 백남준의 행위예술 ‘DMZ 2000’ 등 비종교적 전경을 가지고 있지만 후경에는 매우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의미를 함축 혹은 계시하는 사건들도 다룬다.

유동식은 위의 세 가지 사건을, 곧 ‘한반도의 동서남북으로 그려진 거대한 십자가와 그 중심에서 이루어진 DMZ 2000의 연주는 실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형상화한 위대한 행위예술’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이 행위예술에서 새천년을 위한 화해와 평화의 묵시를 읽은 것이다.(11)

예술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영성

미술과 신학의 대화를 위해, 더욱이 미술작품에 대한 선교신학적 해석을 위해 굳이 대상이 종교적 소재여야 할 필요가 없다. 선택의 기준은 작품의 수준이지 매체나 형식 그 자체가 아니다. 지극히 세속적이고 상업적인 작품도 얼마든지 종교적, 신학적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12)

전통적으로 선교, 특히 ‘말씀의 선포’에 비중을 둔 선교의 매체는 주로 언어였다. 지금도 사정은 대부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말씀의 역사적 이해를 위한 주석학과 말씀의 올바른 해석을 위한 해석학, 말씀의 효과적 전달을 위한 컴뮤니케이션 이론이 선교학에서 중요했던 것이다.

미술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기껏해야 효과적인 교육 혹은 선교를 위한 보조수단으로 여겨졌다. 까닭은 말씀은 영원하고 불변하지만, 매체로서의 미술은 시대, 지역, 문화 등 상황적 요인에 따라 다양한 면모를 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3) 그러나 미술은 파울 틸리히가 지적하듯이 가장 직접적이고 즉시적으로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행동하시는 하느님을 증언하는 과제를 가진 선교신학은 미술과 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설교를 ‘말해진 진리’, ‘선포된 복음’이라고 한다면, 예배당, 제단, 제의, 상징, 그림 등의 이미지들은 ‘말 안해진 진리’, ‘해석되어야 할 복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4) 메시지는 언어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미술을 포함한 모든 이미지들도 메시지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빌라데서가 정당하게 지적한 것처럼, “예술에서 우리는 단지 종교적 전통의 비언어적 표현들을 발견할 뿐 아니라, 또한 인간의 의식과 자유에 의해 수용되어지고 있는 계시, 즉 하느님의 자기-의사소통의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15) 하느님은 이미 “자기-의사소통적 장소’로서 예술을 택하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술은 계시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틸리히가 그랬고 유동식이가 그랬듯이 예술현상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계시를 볼 수 있는 예술적 영성의 개발도 선교학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16)

또한 미술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신앙을 가시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선교학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신앙을 가시화하는 작품들, 시대의 정신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을 찾아 그것과 신학적으로 대화함으로써 신앙의 지평을 확대하고 심화할 과제가 있다. 선교학은 역사적으로 굴곡이 심했던 신상금지논쟁과 그것이 토착문화의 배경에서 성장한 피선교지 교회에 끼친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

또한 형상화를 우상숭배와 동일시하는 태도의 배경에는 어떤 성서적, 신학적, 역사적 전이해가 있는지를 분석하고(17) 미술이 얼마나 복음의 토착화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또 얼마나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증언을 풍부하게 하는지, 그리고 한국미술과의 신학적 대화가 세계 신학과의 에큐메니칼 대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과제가 있다.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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