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뚝이는 봉산탈춤에 등장하는 한 인물로 주로 양반들의 무능과 부패를 조롱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순더마이어에 따르면 “예술이 인간의 문제를 주제로 삼는다면, 예술은 언제나 어느 정도 신학을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술 안에 있는 이런 신학을 발굴하고 언어화하는 것이 설교자의 과제라는 것이다. “이해하는 관찰자로서 설교자는 예술 안에서 자기 시대와 하느님의 길을 이해하고 조명하는 동반자를 찾을 수 있다. 예술을 통한 현존의 조명이 말씀을 통한 현존의 조명을 능가하기 때문에 설교자는 예술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1)

다시 말해 예술은 그 시대와 문화의 상태를 언제나 앞서 이해하기 때문에, 위대한 예술은 언제나 시대의 지진계이며 어느 정도 예언적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예술이 시대인식 혹은 복음화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말이 아니다. 예술을 도구화하는 사람은 예술을 파괴할 뿐이라고 순더마이어는 경고한다.(2)

선포의 동반자로서의 미술

신학이 예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또 다른 까닭은 “예술이 말로 표현되는 신학적 통찰에 선행하며, 신학적 통찰을 형상화”하기 때문이다.(3) 예술의 진리가 신학의 통찰을 선취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개신교는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언어와 택스트에 의존해 왔고, 그것은 구약성서적 종교가 가진 형상에 대한 적대감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 형상에 대한 적대감이 초대교회, 이슬람, 종교개혁 전통의 그리스도교에로 지속적으로 발전했으며, 예술작품은 단지 부분적으로만 주목받았다는 것이다.

순더마이어는 선교학의 새로운 해석학적 전거를 ‘문화간 이해를 위한 해석학’으로 정립하기 위해 언어보다는 상징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까닭은 상징이 생각에 앞서고, “상징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상징은 해석에로 초대하고, 해석을 촉진”하기 때문이다.(4)

물론 예술이 꼭 해석을 요청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해석 없이도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순더마이어는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술은 해석을 기뻐하고 거부하지 않으며,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예술을 탄생한 문화세계와 그것의 종교적 전망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예술작품과 신학적 해석 사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5)

미술과의 선교신학적 대화는 순더마이어의 신학적 고향인 유럽과 아프리카에만 머물지 않는다. 순더마이어는 인도네시아 발리 출신으로 힌두교도였다가 후에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리스도교를 예술적으로 발리에 토착화시키려고 시도한 예술가, 니오만 다르사네(Nyoman Darsane)의 작품은 물론,(6) 한국의 민중미술에까지 확대된다.(7)

순더마이어의 민중미술 해석

순더마이어는 위르겐 몰트만(J. Moltmann)과 더불어 한국의 민중신학을 독일어권 신학세계에 알리고, 민중신학과 에큐메니칼 대화를 가장 활발하게 한 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8) 순더마이어가 민중신학을 민중미술과의 관계에서 해석하게 된 계기는 1986년 그의 제자로서 80년대 초 교환학생으로 한국교회에 왔었던 앙드레아즈 융(Andreas Jung)이 민중 판화자료집 ‘말뚝이’를 제작하고 하이델베르크에서 민중 판화전을 연 것이었다.(9)

순더마이어는 그의 논문, “민중미술과 민중신학”에서 먼저 민중신학 탄생의 배경을 설명하고, 민중신학적 담론들을 안병무의 성서해석, 서남동의 성령론적, 통시적 해석학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논문의 후반부에서는 판화집 ‘말뚝이’의 네 범주를 따라 작품을 신학적으로 접근한다. 순더마이어가 정당하게 지적한 것처럼 민중신학은 “민중의 삶이 담긴 노래와 춤, 민중 예술에서 드러나는 민중의 자기표현을 배우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사건 속에서 초월을 경험하고, 민중사건 안에서 예수의 구원사건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지하실, 민중 자신에게로 내려가야 하며, 민중의 한, 이름 붙이기 어렵고 표현되기 어려운 민중의 고난을 알아야 한다”.(10)

그러나 민중신학자 가운데 구체적으로 민중문화와 씨름한 신학자는 현영학 뿐이었다. 특히 탈춤을 신학적으로 해석한 현영학 외에는 구체적으로 민중미술과 신학적 대화를 시도한 민중신학자는 없었다. 오히려 순더마이어가 밖에서부터 한국의 민중판화를 신학적으로 해석한 첫 시도를 한 것이다.

판화집 ‘말뚝이’는 장산곶의 매와 운주사 미륵불, 노동하는 민중, 광주민중항쟁, 민중의 일상생활과 축제 등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는 희망을, 눈을 감은 미륵불은 절단당한 저항가들과 정의의 왕국에 대한 희망을, 노동하는 민중은 개인과 전체 민중의 연대를, 광주민중항쟁은 고난과 저항을, 민중의 일상생활과 축제는 부활에 대한 희망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말뚝이의 춤은 고난의 십자가와 - 그의 펼친 두 팔과 탈의 모습 때문에 - 부활의 기쁨을 동시에 보여준다.(11)

민중신학은 민중문화와 예술을 선포의 도구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민중문화와 민중미술이 그 자체로서 이미 하나의 사건이었고,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민중의 삶의 현실을 반영하는 민중 미술도 민중사건이었고, 민중신학자들은 민중 사건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 사건을 경험했다.(12) 그런 의미에서 사건은 신학에 앞서고, 순더마이어의 지적대로 민중미술은 선포의 예언자이거나 동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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