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포기하지 않고 꺾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교만이다. ⓒGetty Image

1. 중꺾마

요즘 갑자기 유행하는 말이 있습니다. “중꺾마”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이런 말입니다.

우리 대표팀도 매우 훌륭한 경기를 했습니다. 16강까지 진출했습니다만, 세계최강이라는 브라질에게 안타깝게 지고 그 도전을 마쳤습니다.

모든 경기가 훌륭했지만, 특별히 우리에게 인상 깊었던 경기가 있습니다. 예선 리그 마지막 경기인 포르투갈과의 경기입니다. 첫 경기를 아쉽게 비기고,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둘째 경기에서 졌습니다. 남은 경기는 제일 강한 포르투갈입니다. 포르투갈을 반드시 이겨야 16강에 진출하게 된 상황입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포르투갈이 선제골을 넣었습니다. 다행히 후반에 동점골을 넣었지만, 경기는 진전이 없습니다. 이대로 무승부로 끝나게 되면 탈락입니다. 후반전 시간도 다 지나고 추가시간이 주어졌을 때, 기적과도 같이 역전골을 넣고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 선수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카메라 앞에 펼쳐든 바로 그 태극기에 적혀 있던 글입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어려웠을 것입니다. 두려웠을 것입니다. 불가능하다고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국민들의 기대가 부담스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몸은 힘들고 지쳤습니다. 바로 그 때 생각했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많은 국민들이 그 마음에 공감했습니다. 어느 때보다 힘들다고 하는 지금, 경제가 힘들고, 정치가 힘듭니다. 청년이 힘들고, 노인이 힘들고, 어린이가 힘들고, 청소년이 힘듭니다. 남성이 힘들고, 여성이 힘듭니다. 모든 것이 힘듭니다. 놓아버리고 싶습니다. 바로 그 때, 이 말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래, 꺾이지 말아야지. 꺾이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야지.”

2. 신앙에서도 중꺾마?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이 말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힘을 준다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우리 신앙에 들어오면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 말의 방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꺾이지 말자’ 그렇죠? ‘꺾이지 말자!’ 우리 마음을 꿋꿋하게 유지하자! 내 마음을 지키자. 내 생각, 내 신념, 내 가치관, 내 세계관, 끝까지 지키자!

그런데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내 생각, 내 신념, 내 가치관, 내 세계관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포기하고 순종하고 엎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하나님 앞에서도 ‘꺾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도, 일단은 그 기초에 내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내 생각 위에 하나님을 모십니다. 내 삶의 소망 위에 하나님을 올려놓습니다.

내 마음대로 사랑하고, 내 마음대로 봉사하고, 내 마음대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라고 하면서, 사실은 내가 해석한 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랑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돌이켜 보세요. 어떤 사랑을 했습니까? 내가 하고 싶은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원하는 식으로 사랑하지 않았나요?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랑하지 않았나요? 다른 사람이 말하는 사랑? ‘그게 무슨 사랑이야?’ 하고 비웃지 않았나요? ‘그런 사랑은 하지 않을 거’라고 속으로 다짐하지 않았나요?

봉사도 그렇습니다. 어떤 봉사를 합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 합니다. 내가 하기 싫으면 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합니다. 그러면서 그 일이 선한 일이라는 것, 선하게 보인다는 것 하나로 모든 것이 인정받습니다. 그래, 나는 아름다운 봉사를 했어.

우리가 하는 신앙의 실천이라는 것이 모두 그렇습니다. 내가 원하는 사랑을 하고, 내가 원하는 봉사를 하고, 내가 원하는 기도를 합니다. 내가 원할 때 예배드리고, 내가 원할 때 사랑합니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신앙을 이끌어갑니다.

죄송합니다만, 안타깝게도, 이런 모든 것은 나를 속이는 일일 뿐입니다.

3. 내 마음을 꺾어봅시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 속에서 주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해라.’ 예, 어려운 말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말씀을 실천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주님의 말씀이니까요.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미워했던 사람, 불편했던 사람, 다퉜던 사람, 싸웠던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 나를 저주하고 모욕하는 사람, 오해하는 사람, 나를 해치는 사람까지. 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떤 식으로 사랑하려고 합니까? 그 사랑의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원수를 사랑한다는 그 사랑의 정체가 뭐냐는 겁니다. 혹시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사랑 아닙니까? 내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그런 사랑 아닙니까? 상대방도 그게 사랑인 줄 압니까? 다른 말로 하면, 원수도 인정하는, 아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는 그런 사랑 맞냐는 겁니다. 나만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니냐는 말입니다.

내가 이만큼이나 사랑하는데, 내 사랑을 몰라준다면, 혹시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래서 안타깝고 아쉬웠다면, 내 사랑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 사랑이 혹시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었는지, 나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랑은 아니었는지, 상대방이 사랑이라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랑이었는지.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이었는지, 혹시 무언가 댓가를 바란 사랑은 아니었는지, 사랑이라고 인정받고 싶었던 표면상의 사랑은 아니었는지. 하나하나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의 핵심은 ‘희생’입니다. 자기 포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한번 봅시다. 뭐라고 하십니까?

“너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해라.” 나를 저주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똑같이 저주하고 싶은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포기하라는 겁니다. 겉으로만 축복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너를 모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라.” 나를 모욕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모욕으로 갚아주고 싶은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바로 그 마음을 포기하지 않으면, 겉으로 기도하는 척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네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다른 뺨도 돌려대고, 겉옷을 빼앗은 사람에게 속옷도 벗어주어라.” 다른 뺨을 돌려대고, 속옷을 벗어주는 그 마음이 좋을까요? 어느 누가 ‘그래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면서 미소를 싹 띄우면서 뺨을 돌려댈 수 있을까요? 그렇게 못합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모욕감과 억울함이 가득하지 않을까요? 바로 그 마음을 감내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감수하고서 뺨을 돌려대라는 겁니다.

또 말씀하십니다. “달라는 사람에게 줘 버려라. 가져가는 사람에게서 다시 찾지 말아라.” 우리가 무슨 재벌입니까? 그저 허허허 웃는 무골호인입니까? 내 음식을 뺏기면 당장 내가 굶어야 합니다. 그 배고픔을 그냥 감내하라는 겁니다. 내 집을 뺏기면 당장 길바닥에서 자야 합니다. 그 아픔을 참아내라는 겁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그저 비유의 말씀일까요? ‘이럴 정도로까지 사랑해 봐라’ 하는 강조법인 걸까요? 아닙니다. 진짜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31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황금율, 골든룰이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쉬운 말이 아닙니다. 단순하게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심지어는 하나님의 뜻이 이거야 하고서 하나님마저도 재단하려는 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나에게만 있습니까? 상대방에게도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은 항상 같을 수가 없습니다.

죽고 사는 일 아니라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 아니라면, 그리고 그게 사랑하는 일이라면, 한번 내 마음을 내려놓고 상대방 마음대로 해 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게 사랑 아닙니까? 그렇게 할 수 있어야 사랑 아닙니까? 예수님은 심지어 ‘그래, 알았다. 내가 죽어주마’ 하고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꺾이지 않는 마음”이 훌륭하다고 감탄하고 감동하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오늘 ‘그 마음 한번 꺾어 봐라’ 하시는 겁니다. ‘그게 진짜 사랑이다’ 하시는 겁니다. ‘그게 너희를 향한 내 마음이다’ 하시는 겁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사랑의 정체는, 하나님의 마음 앞에서 내 마음을 꺾는 것입니다. 내 가족, 내 이웃, 내 친구, 내 교우 그들 앞에서 내 마음을 내 생각을 한번 꺾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를 희생해 보는 겁니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랑을 하고, 내 마음에 맞는 믿음을 믿고, 내 마음에 맞는 봉사를 하고, 내 마음에 맞는 선행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위해 내 마음을 포기하고, 믿음을 위해 내 마음을 내려놓고, 봉사를 위해 내 생각을 접어두고, 하나님을 위해 나를 포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포기로 인한 아픔을 슬픔을 억울함을 아쉬움을 삭이는 겁니다. 주님 앞에 고백하는 겁니다. “주님, 포기했더니 내 마음이 아픕니다. 마음이 억울합니다. 아쉽습니다. 사랑 한번 하기 어렵네요.” 그렇게 기도하는 겁니다. 그런 기도가 주님의 위로를 받고 주님의 은혜를 받는 기도입니다.

4. 주님이 보낸 사람

오늘 이사야의 말씀에 하나님께서 백성을 되찾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마음을 절대로 꺾을 수 없다고 하나님 앞에서마저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목이 곧았던 백성들입니다. ‘나는 주님의 백성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야’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랬던 그들이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 그 뜻을 꺾게 된 것입니다. 자기 뜻을 꺾었더니 ‘거룩한 분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런 백성을 앞장 세우고 오신다고 합니다(사62:11). 단순히 ‘앞뒤’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백성을 먼저 이 땅에 보내신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마음을 꺾은 사람들, 하나님의 마음만을 가득 채운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주님 보다 먼저 이 땅에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일 마지막 예언자가 있습니다. 말라기입니다. 말라기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특사, 대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자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자기 생각이 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자기를 보내신 분의 말씀만을 해야 합니다.

그 말라기의 마지막 말씀이 이렇습니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용광로의 불길같이, 모든 것을 살라 버릴 날이 온다. 모든 교만한 자와 악한 일을 하는 자가 지푸라기같이 타 버릴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불이 그들을 살라서, 그 뿌리와 가지를 남김없이 태울 것이다. 그러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이니 너희는 외양간에서 풀려 난 송아지처럼 뛰어다닐 것이다.” 아멘.

주님의 불길이 모든 교만과 악을 불사르십니다. 주님 앞에 꺾이지 않는 교만을 불사릅니다. 사랑 앞에 내려놓지 못하는 고집과 아집을 불사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주님 앞에 나를 꺾고서, 주님의 광선으로 치료받는 사람들이 됩시다.

대림절. 주님 오심을 기다립니다. 기다리다 못해 우리가 먼저 갑니다. 내 마음을 꺾고, 주님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먼저 갑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로 먼저 갑니다. 주님 오신다고 부족하지만 그렇게 삶으로 외쳐봅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먼저 간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보내셨음을 문득 깨닫게 됩니다.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제서야 깨닫게 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