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동조합 조사 발표에 제(際)하야(즈음하여)’라는 제목의 1932년 4월 2일자 동아일보 사설(상단) ⓒ동아일보

유대인은 농업목축 혼합형 문화 유형의 민족이다. 한국은 구약성경의 유대인처럼 농업목축뿐 아니라 해양 혼합형 문명이다. 구약성경의 율법에 기록된 규정의 상당수는 한국의 전통문화에서도 발견된다.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 기근 때 타인 소유의 과수원이나 밭에서 취식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등 사회적 부조의 전통이 깊다.

게다가 한국은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 없는 특별한 전통이 있는데 의병의 전통이다. 외국의 침략이 있을 때 자연 촌락의 거주민들이 자율적으로 무장하여 침략자들에게 저항하는 전통이다. 그만큼 한국은 독특한 문화적 전통이 있다.

한국은 두레, 품앗이 등 농촌 지역의 사회부조의 전통과 계와 같은 경제적 부조의 전통 그리고 향약과 같은 하향식 규율도 있었다. 또 한국은 국가 단위와 대칭되는 지역 사회의 역할을 강조하여 왔다. 근대 한국에서 nation이라는 어휘를 일본은 국민이라고 번역한 것과 달리 민족이라고 번역하였다. 현대 한국의 극단적 국가주의자들은 민족이라는 개념을 종족주의라고 폄하하고 있으나 민족이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의 12지파처럼 한국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민족  즉 백성과 족속으로 이해하여 지역성과 구체성과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한국민족의 특성 때문에 한국은 협동조합의 토양이 충분하였다. 일본의 한국 침략은 정치적 침략과 경제침략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1895년 을미사변을 일으켜 민비를 시해한 일본은 같은 해에 일본 은행권을 조선에 유통시켜 한국 경제를 일본에 종속시키려 시도하였다. 한국은 일본에서 차관을 들여와 국채가 증가하는 등 일본 경제에의 종속이 20세기 초반에서 심화하였다.

이에 대항하기 위한 한국민들의 대응이 이 시기에 등장하였다. 정치적 행위로서 국채보상운동을 시행하는 한편 1905년경부터 한국인들 사이에 자율적 금융조합 설립 운동이 나타났다. 그러나 군사력을 앞세운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주권을 훼손하였다. 그리고 1910년 병합이 이루어졌다. 식민지 시기 한국인들의 정치적 경제적 민족 독립운동은 중단없이 시도되어 1945년 광복을 맞기까지 항일운동이 지속되었다.

1919년 3.1운동 후에 다양한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이 나타났다. 그중에 주목할만한 것이 협동조합운동이었다. 협동조합운동은 정치적 우파에서도 정치적 좌파에서도 그리고 기독교민족운동에서도 시도한 매우 주목받았던 운동이었다. 우파 민족주의는 1895년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한국의 좌파 사회주의운동은 3.1운동 이후에 수용되어 1925년을 기점으로 본격화하였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사회주의자도 민족주의자도 그리고 기독교인도 한국 농촌을 살리는 방법으로 협동조합에 주목하고 이를 확산하려 하였다.

한국 개신교의 민족운동도 1920년대에 활성화되어 중일전쟁이 발발하는 1937년 정도까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중에 한국 감리교회와 한국장로교회의 농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그중에는 협동조합운동도 있었다.

한국 감리교회는 사회신조를 발표하여 기독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천명하였다. 감리교회의 홍병선은 감리교회 협동조합운동의 선구자였다. 그는 서울 사직동 근처에서 태어났다. 미국 남감리회 선교부가 사직동에 위치하여 자연스레 어려서 남감리교회에 입교하였다. 홍병선은 원래 기독교 교육전문가였다. 다수의 교회교육 관련 연구를 하고 저술을 하였다.

그는 1928년 예루살렘국제선교대회에 참관하여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눈뜨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다수의 농업선교사들과 함께 농촌사회운동을 실행하였다. 그리고 농촌의 자율적 성장을 위해서 협동조합이 가장 유용하다고 판단하여 협동조합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전국의 감리교회 및 선교구역 내의 촌락에 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시작하여 1930년대 중반에는 1,200개의 감리교 협동조합을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총독부는 국내의 사회운동을 척결하기 시작하였고 기독교 계통 사회운동은 1939년까지 모두 철폐되었다. 지도자들은 신사참배를 강요받았고 홍병선도 일제의 강압에 무릎을 꿇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홍병선은 협동조합을 재건하기 위해 다수의 협동조합 관련 저술을 1960년대 중반까지 출간하였다.

한국 장로교회의 협동조합운동을 주도한 것은 유재기 목사였다. 그는 경북 영주 출신으로 10대에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보수적 장로교 선교사에게 신앙을 배웠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민족운동과 사회개혁이었다. 그는 20대에 일본에 유학하여 천신만고 고생하며 유학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일본의 기독교 지도자 가가와 토요히코를 만나 영향을 받았고 일본 기독교의 사회운동을 목격하였다. 귀국하여 평양숭실을 졸업하고 평양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었다. 1925년 설립된 장로교회 농촌부에서 배민수 목사와 함께 활동하였다.

배민수는 미국식 사회복음주의 노선을 따랐으나 유재기는 가가와 토요히코의 사회적 기독교를 실천하려 하였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경북 지역으로 내려가 협동조합을 설치하고 운영하여 농촌교회와 농촌마을의 자립을 추구하였다. 그는 언론에 협동조합론을 연재하여 협동조합을 확산하는데 주력하였다. 유재기는 소비조합, 금융조합 그리고 생산조합으로 순서를 밟아 협동조합을 확산시킬 방안을 제시하였다.

유재기 역시 1937년 중일전쟁 발발과 함께 농우회 사건으로 일제에 구속되었고 그의 농촌운동도 막을 내렸다. 그 역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심사를 참배하였다. 해방 후에는 혀동조합운동을 재건하기 위해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인민위원회와 갈등으로 상경하여 함태영 목사의 후원으로 농민운동을 재개하였다. 그러던 중 그의 지병으로 1949년 그 결실을 보지 못한 채 사망하였다.

한국의 자율적 민족 민주운동은 일본 식민지 체제가 분쇄하려던 목표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의 자율 운동은 해방 후 한국 정부에서 권장받지 못하였다. 1959년 제정된 금융조합법은 조합운동을 국가의 통제하에 놓이게 하였다. 한국에는 농협, 수협, 축협 그리고 산립조합 등 조합이 있지만 이 운동은 국가의 과도한 간섭 속에 놓여 있다.

권위적 통치자인 이승만과 박정희의 통치 시대에 시민의 자율성은 장기간 억제되었다. 지발자치의 억압, 협동조합 등 시민자율과 자치의 억압이 오래 이어졌다. 그 결과 한국사회는 중앙정부 중심의 정치 담론의 과잉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장기간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권위적 지배가 이어졌다. 이러한 장기적 지배 체제의 구조화는 민주화 운동으로 서서히 변화되어 왔으나 여전히 시민사회의 자율성은 매우 제한적인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의 개신교회를 대표하는 장로교회와 감리교회는 197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 속에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역사전 전통을 망각하였다. 현대 한국의 교회는 교회의 물리적 성장에 매몰되어 영적인 깊이에 대한 탐구와 사회적 역할에 소홀히 하였다. 기후위기 뿐 아니라 한국이 나타내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성경의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기 위한 한국 개신교회의 전환과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박종현(전 관동대 교수)  cuch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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