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속 문화에 대한 비판은 대안적 문화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Getty Image

우리는 지금까지 문화에 대한 바르트의 신학적인 이해를 살펴보았다. 흔히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 이후 문화에 대한 철저한 배타주의자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문화 그 자체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적 신앙에 도취되어 하나님과 세계, 문화와 종교, 신적 질서와 지상적 질서를 혼합 내지는 동일시하고 인간의 역사와 문화와 정신을 신비화시킨 19세기 문화개신교의 자유주의 신학을 공격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그렇게 자유주의 신학을 공격함으로써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백한 말씀, 즉 완전한 신성의 무게와 위엄과 함께 직접적이고 인격적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맞서게 했다. 그것을 위해서 그는 그가 분리(diastasis)라고 불렀던 것을 만들어 놓고, 기독교인들의 이해에 있어서 거짓된 종합을 깨뜨리고자 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에서 실행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의 말씀의 화육에서 성취하고, 확립하신 은총에 의한 심오한 종합만이 있도록 했던 것이다.

끝없이 성서로 돌아간 바르트

바르트는 언제나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을 의존하여 성서의 예언자적 가르침으로, 특히 바울의 문서들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고, 종교개혁자들이 그것에 대한 진정한 해석자들이라고 믿었다. 그가 단언하건데, 기독교의 메시지의 본질은 무조건적인 자유와 은총 가운데서 인간이 되기까지 자신을 낮추고 오신 하나님의 압도적인 사랑이다. 그것은 그가 두드러지게 ‘하나님의 인간성’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것이다.

바르트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셨다”(고후5:18)는 역사적인 화해의 사실로부터 인간과 인간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단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하나님이 되려고 인간을 향해 돌아서는 하나님으로서 알려지고, 또한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인 인간으로서 알려지는 화해의 사역 안에서만, 인간의 삶과 활동에 대한 최대한의 경의와 존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바르트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은 반문화적인 어떤 성향을 나타내기는커녕, 하나님은 그분 자신이 만드시고 제정하신 모든 것을 긍정하고 지지하고 보증하며 보호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가장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르트는 신학적 활동을 그것의 고유한 대상, 곧 계시 안에 있는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떼어놓고, 그것을 인간의 실존에 있어서의 문화적 모형들에 대한 인간의 독자적인 해석들의 이데올로기적 범주 내로 끌어내림으로써 신학의 과제를 문명과 문화의 일반적이고 주된 과제에 종속시켰던 19세기 신학자들을 공격했다. 왜냐하면 진정한 신학은 인간 자신에 의해 결정된 어떤 관점에서부터 인간의 삶에 의미를 주려는 시도를 결코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학은 마음과 정성을 모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인간의 행위인 동시에, 하나님과 파트너 관계에 있는 피조물의 자유로운 행위이다.

세속 문화를 뛰어넘는 신학적 문화를 향해

바르트는 여기서 인간의 다른 문화적 성취들과 나란히 있으면서 또 그것들과 마주 대하고 있는 진정한 문화가, 곧 그 문화를 통해서 다른 문화들의 참 모습이 드러나는 진정한 문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신학이 바로 그 진정한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거기서 인간을 만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만나는 인간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므로 그들의 파트너 관계의 내적인 역사와 의미를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1)

하지만 바르트는 그러한 ‘신학적인 문화’(2)도 여느 다른 문화와 같이 인간의 반성과 해석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의심스럽고 모호한 인간의 활동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학적인 문화 그 자체는 결코 신학적인 반성과 구성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단지 거짓 신학만이 그런 식으로 수행되고, 그 결과 문화에 심각한 해를 끼치게 될 뿐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신학이 문화 전체에 공헌하려고 한다면, 단순히 그 대상인 하나님께 충실한 신학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왜냐하면 단지 그때 신학은 ‘문화의 세계’ 속에서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또한 교회의 울타리 밖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에 화답하게 하는 능력 있는 참 진리의 유일한 복음을 울려 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인간의 문화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는데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지도 않았고, 또한 어떤 말들이 성서와 교회의 울타리밖에 있는 참된 말들인가 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예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참된 문화는 어떤 건설적인 결과와 좋은 결실을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고, 참된 문화와 참된 말들을 판별하는 방법과 기준을 제시하면서, 그것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은 바로 교회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따라서 한국 사회와 같은 다원적인 사회에서 교회가 자신을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으로 만들지도 않고, 또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모호하게 만들지도 않으면서 세상과 만나고 대화하고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교회는 토마스 토랜스가 현 시대에 있어서의 “신학적인 문화의 최고의 본보기”(3)라고 했던 바르트의 견해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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