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들이 이동권과 장애인 권리보장 예산 수립을 촉구하며 삭발을 이어가고 있다. ⓒ페이스북

하나님은 출애굽 처음에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심으로 자연을 고치시는 이로 일하셨고 출애굽 끝에는 뱀에 물려 죽어가는 이들에게 살 길을 마련해주심으로 사람을 살리시는 이로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세상을 지으신 분일뿐만 아니라 세상을 고치시는 분이기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환희의 미래는 이렇습니다.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될 것이다”(사 35,5-7a).

이것은 고치시는 하나님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놀라운 미래가 우리의 내일이기를 빕니다. 그 꿈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우리이기를 빕니다. 그 꿈으로 온갖 혐오와 차별을 거부하고 공감과 배려의 삶을 살며 동시에 우리의 삶이 자연을 살리며 자연과 공생하는 삶이 되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이 땅에서 보여주신 삶도 이와 같습니다. 그는 우리를 온전케 하는 생명의 물이었고 생명의 떡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고 사람들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 곧 장애를 고치셨습니다. 사람들은 갖가지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자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과 간질병 환자들과 중풍병 환자들을 예수께 데리고 왔고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마 4,23-24).

고통이 끊이지 않는 세상이지만, 하나님은 그 세상 속에서 다른 세상을 보여주십니다. 질병과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건강한 세상입니다. 주님은 질병과 장애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에 갇힌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받아들이시고 고치셨고 이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을 비판하셨습니다. 자기를 의사에 비유하며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다고 하시며 전적으로 질병과 장애로 고통당하는 이들 편에 서셨습니다. 이 마음과 이 태도가 우리의 것이 되기를 빕니다.

질병과 장애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때로는 좌절하게 합니다. 이것이 많은 경우 그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비뚤어지게 만듭니다. 무시하고 멀리하고 학대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코로나와 치매, 암과 우울증 등은 질병과 장애가 소수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이로써 그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주님을 닮게 되기를 빕니다.

시편 6편 기자의 병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그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는 알 수 있습니다. 기력이 떨어지고 뼈마디마디 하나하나가 다 흔들립니다. 그 시간이 짧지 않아 이제는 몸만이 아니라 그의 마음도 그의 영혼도 흔들리고 상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마다 눈물로 지샙니다. 그를 사로잡은 근심과 슬픔에 눈이 어두워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그는 죽음에 이를 것입니다.

이 상황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이 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입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이 하나님의 분노와 그로 인한 그의 책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현재를 하나님이 그를 떠난 상태라고 표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분노를 거두시고 그에게 돌아오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현재 상태만 이야기하고 흔히 말하는 회개의 모습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를 고치실 수 있다고 말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의 분노 탓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하는 말 이상의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의 현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현재를 돌아보지 않고 그의 울부짖음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을 그가 그를 떠났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도 상투적인 문학적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의 침묵 곧 응답 없음을 하나님과의 거리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원수 또는 적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은 그들과의 관계가 처음부터 그랬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습니다. 적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그의 현재에 대한 태도 때문에 그렇게 불릴 것입니다. 그들은 그와 가까운 사람들이거나 그의 동료들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 그가 이제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을지 모르나 지금의 그는 단지 하나님께 벌 받는 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향해 수군거리고 흉보고 비난하고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을 것입니다. 그를 동정하는 척하며 고소한 눈으로 쳐다볼 것입니다.

심지어 그가 심한 고통 속에 죽기를 기다리며 그게 마땅하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고통당하는 동료에 대한 이런 뒤틀린 감정이 그들을 지배합니다. 고통에 공감하지는 못해도 그를 불쌍히 여길 마음조차 없어진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시편기자 자신 보다 이들에게 주목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시편 기자의 탄식은 갑자기 끝나고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으로 바뀝니다. 모든 상황이 달라졌음을 알리는 한마디입니다.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다! 이것은 병이 낫기 이전의 고백입니다. 하지만 들으심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뜻하고 치유로 이어질 것이며, 때문에 적들은 갑자기 부끄러워하며 물러갈 것입니다.

여기서는 다소 모호하게 그려진 하나님의 치유자 모습이 복음서에서는 참으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중풍병자가 친구들에 이끌려 들것에 실려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아 예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들은 지붕을 뚫고 들것을 예수 앞에 내립니다.

예수께서는 친구들의 사랑과 정성과 용기에서 자신에 대한 그들의 무한한 신뢰를 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께서 그의 병을 반드시 고쳐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은 사람의 숫자도 천장도 방해할 수 없는 곧 ‘사랑’입니다. 예수는 그들의 연대하는 믿음에 감탄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네 ‘죄들’이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저 사람의 중풍병을 그의 죄들 탓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럴 리는 없습니다. 눈 먼 사람을 놓고 그것이 누구의 죄 때문인지 묻는 사람들에게 누구의 죄 때문도 아니라고 단언하셨던 예수입니다(요 9,1-3).

하지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불치병 같은 불행이나 고통을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죄들’은 가공의 죄들로서 사람들의 ‘신학적’ 편견과 무지의 산물들입니다. 이에  비춰보면 죄에 대한 예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이해될 수 있습니다. 서기관들은 이건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왜 중풍병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그들에게 네 ‘죄들’이 용서받았다는 말과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말과 어느 것이 더 쉽겠냐고 거꾸로 물으십니다. 쉽겠냐는 것은 힘을 덜 들인다는 것입니다. 일단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관점에서는 후자를 말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가 말하는 용서가 단지 말이 아니고 실제로 자기에게 죄를 용서할 권한이 있음을 보이기 위해 치유의 기적을 베푸십니다.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된 중풍병자는 ‘죄들’ 곧 사회적 멸시와 차별의 굴레로 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종교 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죄의 굴레를 권력유지 수단으로 삼지만, 그 굴레는 그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예수의 선언과 함께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는 낡은 것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새생명을 위한 새질서의 새세계가 열립니다.

시편에서는 들으심으로 표현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치유를 결과할 것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치유의 기적이 사람들이 부정했던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증거로 사용됩니다. 이를 다시 생각하면 예수께서는 사람에게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 속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들 속에 배려와 연대를 낳습니다. 아픔을 함께 아파할 용기를 줍니다. 이에 따라 사회적, 신체적, 자연적 관계가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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