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세속종교에는 무엇이 있나요?(5)_이탈리아의 파시즘(1)

A: 지난 연재들에서는 미국과 프랑스 등 자유주의 국가들의 세속종교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연재부터는 전체주의 국가들의 세속종교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이탈리아의 세속종교인 파시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자유주의 국가의 통치자들은 시민들에게 ‘조국의 종교’(religion of fatherland)와 관련한 제의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 과제를 주로 학교와 군대의 의무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상은 오히려 자유주의 국가들이 아니라 전체주의 국가들에서 실현되었습니다.

전체주의 국가는 대체로 강력한 대중운동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대중운동은 대중과 그 지도자 간에 새로운 신앙적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의례와 상징들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례와 상징들은 기존의 전통종교를 참조하여 만들어졌습니다.

▲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1937년 10월 29일 로마에서 군대를 사열하고 있다. 그 오른쪽에 아돌프 히틀러의 부관 루돌프 헤스가 있고 그 뒤로 이탈리아군 지휘관들이 따르고 있다. ⓒAFP/Getty Images

대중운동은 세속적인 실체들을 신화적인 실체들로 결정화(crystallization)하는 데에 있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렇게 신화적인 실체들로 결정화된 세속적인 실체들은 그에 헌신적인 참여자들에게 살아가는 이유와 삶의 방식을 제공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19세기 말엽에는 사회학자들이 대중운동, 특히 사회주의를 새로운 종교로 정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조르쥬 소렐(Georges Sorel)은 자신이 이끌어가는 대중운동을 새로운 세속적 종교성의 선언이라고 간주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운동의 참여자들이 종교 운동의 영성과 심성을 가질 것을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소렐은 ‘신화’(myth)를 ‘인간의 온갖 감정을 촉발하는 직관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이미지의 총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신화는 본질상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분석과 추론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간주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신화가 발휘하는 막대한 힘의 원천이라고 보았습니다.

소렐은 이러한 신화의 예로서,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의 ‘예수 재림’ 신화, 1789년 프랑스 혁명의 다양한 신화들, 이탈리아 통일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마치니(Giuseppe Mazzini)의 ‘통일된 이탈리아 민족’의 신화, 부르주아 계급에 맞선 노동자들이 일으키는 ‘총파업의 신화’ 등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소렐이 대중운동을 종교 운동으로 만들어서 얻고자 한 것은 종교의 신화적인 차원이 지니고 있는 강력한 대중 장악의 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니스벳(R. Nisbet)에 따르면, 대중운동의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무신론자들이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무신론적 정치사상이 새로운 문명과 새로운 인간성을 창조하기 위한 완전한 재생 운동이라는 점에서 종교적 운동들과 비교되는 것을 매우 기꺼워하였다고 합니다. 무신론적 사회주의자인 무솔리니(Mussolini)는 1912년에 ‘사회주의의 종교적 개념’을 논하였습니다. 무신론적 사회주의자인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1916년에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사회주의는 정확히 말해서 그리스도교를 박멸해야만 하는 바로 그 종교이다. 바로 그렇기에 사회주의는 가톨릭의 초월적 신에 대한 믿음을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대체하였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무신론적 사회주의 운동의 종교적 성격에 대해 동시대 보수주의자들이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대응을 고민하였다는 것입니다. 동시대 보수주의자들은 무신론적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정반대의 입장에서, 그 운동의 위험성을 지적하였습니다. 체스터턴(G. K. Chesterton)은 교회를 전통과 도덕적 질서의 수호자로 간주하는 보수주의의 입장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경고를 남겼습니다. “신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면 사람들이 이제 아무 것도 믿지 않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믿게 된다는 데 가장 큰 위험이 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신론적 사회주의에 입각한 대중운동이 이미 동시대에, 그 반대자와 찬성자 모두에게, 그 종교적 성격을 인정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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