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인권운동가 최진수씨가 경찰에 ‘자수’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4년을 복역하고 만기출소한 최씨는 석방되자마자 ‘보이지 않는 족쇄’를 차야 했다. 바로 보안관찰법이다. 보안관찰법을 정당한 법으로 인정하지 않은 그는 보안관찰법상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벌금 납부마저도 거부했고, 그는 차라리 노역을 살겠다며 감옥행을 선택했다. 어떤 처벌도 양심에 따른 그의 소신을 꺾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가 위반했다는 ‘죄’가 도대체 무엇인가. 일제의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과 치안유지법은 유신의 사회안전법을 낳았고, 유신의 사회안전법은 6공의 보안관찰법을 낳았다. 명칭은 바뀌었지만 재정 당시의 정신은 면면히 살아서 굳건하게 대를 잇고 있다. 그 정신이란, 쉽게 말해 체제에 길들여지지 않는 ‘반항아’들을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을 ‘불가촉천민’으로 낙인찍어 무한정 징계하겠다는 뜻이다. 최씨는 도대체 왜 이법을 지켜야만 하는가를 수없이 되묻고 나서 결론지었을 것이다. 최소한의 양심과 상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도저히 이 법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안관찰처분 대상자는 감옥 문을 나서기 전에 거주예정지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적, 본적, 주거, 성명, 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 가족 및 교우관계, 입소 전 직업, 본인 및 가족의 재산상황, 학력, 경력, 종교 및 가입단체, 병역관계, 출소예정일, 출소 후의 거주예정지 및 그 도착 예정일, 보안관찰해당범죄사실의 요지, 판결법원, 판결연월일, 죄명, 적용법조, 형명, 형기, 보안관찰범죄 외의 전과관계, 국내에 가족이 없는 등의 이유로 법무부 장관의 결정으로 거소제공을 받은 경우는 거소제공 결정일자와 제공된 사회복지시설의 명칭․소재지 등등.

감옥 문을 나서면 7일 이내에 다시 관할 경찰서장에게 동일한 내용을 신고하여야 하며, 거주지가 변동되면 다시 동일한 내용을 반복해서 신고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법무부 산하 보안관찰심의위원회가 보안관찰 처분을 내리면 더욱 많은 신고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한번 보안관찰처분 대상자가 되면 죽을 때까지 ‘시민의 의무’를 복창, 복창, 복창해야 하는 것이다. 보안관찰법 조항을 꼼꼼히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의문은 더욱 분명해진다. 이것을 지켜야만 하는가? 왜?
최씨의 구금 소식은 너무도 ‘사소’하여 인터넷 매체에서조차 보도되지 않았다. 나는 그의 행동이 불복종 운동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이제 우리가 더욱 적극적인 ‘시민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이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미 ‘불복종운동’이 낯설지 않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에서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출현과 지속적인 저항, 주민등록상의 지문날인 거부, 인터넷 실명제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사람들… 얼마 전에는 80여 사회단체가 개악된 집시법을 지키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불복종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러한 움직임은 당연히 자유권에 대한 관심의 확대와 시민의식의 성숙을 반영한다. ‘법이 곧 정의’라는 구시대의 명제는 이제 도도한 흐름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불복종운동에 의해 폐기도리 운명에 직면하였다.

그 동안 법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불벌과 야만이 자행되어 왔는가. 법은 시대의 산물이자 인간의식의 반영물이다. 낙후한 시대는 낙후한 법을 낳으며, 법은 종종 시대와 의식에 뒤쳐진다. 그 접점에 ‘불복종운동’이 존재한다. 불복종운동에 참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심정적 지지나 침묵의 동의, 소극적 참여, 직접 참여 같은 것이 모두 포함될 것이다.

불복종을 선언하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좋아서 한 일’이라며 선을 긋는다면
우리는 시민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반사회적인 태도이자,
궁극적으로 가해자의 편에 서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무관심과 냉소로 인해서
사회의 발전이 가로막히고 미래는
어두워지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의 불복종운동이 한 단계 전진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정보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다양한 방식의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개인적 결단과 희생에 바탕하고 있는 불복종운동을 집단적, 연대적 형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불복종에 따른 손실과 희생을 온전히 개인에게 의존하는 것은 불복종운동의 허약한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정의와 양심에 따라 결단하는 자들은 여전히 소수에 머물 것이다. 공동선을 위해 결단하는 자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불복종운동에 따른 모든 책임을 완벽하게 나누어지는 것이 진정한 불복종운동이다.

불복종운동은 당연히 공공성을 생명으로 삼는다. 누군가 절도죄기 악법이라며 계속 남의 것을 훔치겠다고 선언한다고 할 때 누가 동의하겠는가. 불복종운동은 말하자면, 한 마을이 횡포와 약탈을 일삼는 깡패들로 인해 보이지 않는 공포에 짓눌려 있을 때 이들과 맞서 싸우는 용감한 시민과 같은 것이다. 그 시민이 만일 깡패들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거나 괴롭힘을 당한다면, 마을 사람들은 이를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는가.

불복종운동을 통해 장기적이든 단기적이든, 물질적이든 도덕적이든 공공의 이익이 증대된다고 한다면 그 운동의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자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마땅히 고통과 손실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정부에 세금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 불복종운동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복종을 선언하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좋아서 한 일’이라며 선을 긋는다면 우리는 시민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반사회적인 태도이자, 궁극적으로 가해자의 편에 서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무관심과 냉소로 인해서 사회의 발전이 가로막히고 미래는 어두워지는 것이다. 무관심과 냉소는 처음에는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는 듯하지만, 배에 물이 스며들 듯 어느 순간 우리를 침몰시키고 말 것이다.

불복종은 당연히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이 더 큰 사회적 손상을 막기 위한 자기희생적 결단이며, 더욱이 공익과 일치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누군갗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불복종운동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실천에 나서야 한다. 불복종운동을 스스로 행할 뿐 아니라 불복종운동으로 희생과 손실을 감수하는 자들의 몫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복종운동 지원시민연대’와 같은 형식의 실천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1백 원짜리 동전 3천개를 ‘불복종 돼지’에 넣어 벌금 30만원을 대납해주는 자발적인 모금운동을 통해 최씨의 소중한 소신을 지켜주면서, 희생을 나누어 갖는 성숙한 태도를 보였어야 했다. 불복종운동에 대한 더욱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발상과 실천이 필요한 때다.

김경환  bardo61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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