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재 서남동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5년 가을이었다. 나는 그 해 3월 한신대에 입학했는데 입학 한 달 후, 문교부 휴업령으로 어이 없이 학교에서 쫓겨난 신세가 되었다. 고려대 휴교령과 함께 한신대 휴업령이 내려진 것이다. 자연은 봄이었으나 역사는 겨울이었다.

그 해 5월, 대통령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되었고 교수 400여명 강제 해직, 유신헌법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의 중심에 섰던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언론자유수호를 외치던 기자들 무더기 해고 등 숨 막히는 겨울공화국 시대였고 유신독재 광풍이 점점 거세어 가던 때였다. 죽재 서남동 목사님도 그 해, 5월 연세대 교수직에서 해직되었다.

해직 기독자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세운 ‘고난 공동체’가 ‘갈릴리 교회’였다. 제도권 예루살렘과 대비되는 이름 갈릴리였다. 나는 그 ‘갈릴리’에서 죽재를 만났고 ‘갈릴리 예수’를 만났다. 서남동, 안병무, 문동환, 이우정, 이문영, 현영학 등 해직 교수님들, 그리고 친구 장준하 의문의 죽음 이후, 장준하를 대신 살겠다며 역사의 광야로 나온 문익환 목사가 그 중심 멤버였다. 이해동(한빛교회), 공덕귀(윤보선 대통령 부인), 이희호(김대중 선생 부인), 조정하(구속 중인 박형규 목사 부인), 허병섭, 한승헌(변호사), 몇몇 구속자 가족들도 갈릴리 교회에 함께 했다.

▲ 갈릴리교회 예배 모습 ⓒ죽재 서남동 목사 100주년 기념사업회 제공

나는 한신에서 해직 당하신 안병무, 문동환 교수를 먼발치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갈릴리 교회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구경삼아(?) 갔다가 어떤 이끌림 때문에 그 이후도 종종 주일 오후엔 나는 ‘갈릴리’로 달려 갔다. 갈릴리 교회는 건물이 없었다. 한빛교회(이해동목사)에서 주일 오후에 모였다. 예배와 친교를 나누었고 예배 후에 이야기 사랑방이 이어졌다. 개인 소식들, 정세, 신학적 담론, 고난 받는 이웃 소식들이 나누어졌다. 문익환 목사의 시가 발표되기도 했다.

나는 사실, 예배 보다 예배 후 사랑방 이야기가 더 좋았다. 갈릴리 교회는 고난 공동체였지만 의외로 따뜻하고 밝았다. ‘환난 중에 기뻐하는 공동체’였다. 안병무 교수, 한승헌 변호사 등의 위트와 해학도 한몫 했다. 좌중은 까르르 웃음꽃이 터지곤 했다.

그러나 서남동 목사님은 조용히 온화한 미소만 지을 뿐이셨다. 지금도 ‘죽재의 미소’가 기억에 남는다. 그것은 겨울을 이겨난 봄꽃 같은 미소였다. 내가 죽재를 특별하게 기억하게 된 개인적 경험이 또 있다.

선교교육원 입학 직후, 우연히 길에서 죽재를 만났는데 내 이름을 불러주시며 반갑게 대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입학 초기, 교실에서 주로 조용히 앉아 있는 뒷줄 학생이었던 내 이름을 아시고 불러 주시다니! 감동이었다. 작은 자에 대한 죽재의 관심과 사랑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분의 미소와 함께 지금도 생생히 기억된다. 나는 그렇게 죽재를 만났다.

갈릴리교회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이듬해 1976년 삼일절,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이른바 명동사건으로 갈릴리교회 주요 멤버들이 투옥되었다. 문익환 목사가 주모자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죽재도 3년형을 받았다. 개신교와 천주교 종교 지도자들, 김대중, 윤보선, 정일형 등 정치 지도자들, 함석헌 등 재야 원로까지 연루된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국내외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유신체제의 뿌리를 찍는 도끼였고 결국 유신의 종말을 재촉하게 만든 사건이 되었다.

해방 후, 반공의 보루, 그리고 이승만 정권의 협력자 역할을 해온 한국 기독교였다. 4.19 혁명 이후 회개와 자성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장공 김재준 목사와 그의 후학, 제자들이 그 중심에 섰다. 김정준, 서남동, 문익환, 안병무, 문동환 등이 그들이었고 그 베이스캠프가 한국신학대학이었다.

특히 19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 한국교회의 예언적 저항과 실천의 역사에서 한신은 그 중심이었다. 1975년을 기점으로 베이스캠프가 옮겨졌다. 하나는 종로 5가 기독교회관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서대문 선교교육원이었다.

기독교회관의 목요기도회는 또 하나의 ‘갈릴리교회’로서 구속자, 해고자, 쫓겨난 자들의 고통의 소리를 듣고 기도했던 마가의 다락방이었다. 당시 NCC 총무 김관석 목사와 김상근 목사가 그 중심이었다. 다른 하나는 서대문 기장 선교교육원이었다. 선교교육원은 단순히 종교 교육기관을 넘어 당시 재야 민주화 운동의 베이스 캠프였다. 안병무 교수와 서남동 목사가 그 중심이었다. 죽재 서남동은 1976년 3월 명동사건으로 3년형을 받고 22개월 감옥살이를 하고 1977년 연말 가석방되었고 이듬해인 1978년 봄 선교교육원 원장으로 부임한다.

내가 죽재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1978년 9월, 바로 그 선교교육원에서 였다. 나도  그 사이 1977년 4월, 한신대 유신반대 시위 사건(고난선언 사건)으로 오용식, 이영재, 김하범, 김현수 등과 함께 투옥되었다가 건강악화로 1978년 8.15 특사로 석방된 후, 그해 9월 ‘선교 교육원’에 입학했는데 거기서 죽재를 다시 만난 것이다. 선교교육원은 1975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가 한신대 제적생 구제를 위해 마련한 특별 교육과정이었는데 나중엔 한신대생 외에 다른 대학 제적생도 신학수업을 원하면 입학이 허락되었다.

내가 선교교육원에 입학을 했을 때는 이미 서울대 등 여러 대학의 제적생 20 여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민청학련(긴급조치 4호), 긴급조치 9호 위반, 재일교포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중앙정보부 조작 사건으로 드러남) 등 다양한 사건으로 보금자리를 잃고 배움의 고아가 된 이들이었다. 그들이 선교교육원과 서남동, 안병무 등 시대의 예언자들의 소식을 듣고 찾아 온 것이었다. 지금 생각나는 사람은 유상덕(작고), 황승주, 나상기, 권진관, 권오성, 양관수, 이상익, 신대균, 이원희, 이종원(일본 거주), 김윤, 박준엽, 서용석, 박남수, 박성인, 이광일, 정등룡, 강성구, 박성훈, 황인성, 문병수, 오세구(작고), 이대수, 최인규, 진창덕, 유종성, 배경순, 김명숙, 박몽구, 주재석 등이었다.

그 때 교수님들은 서남동, 문익환, 안병무, 문동환, 김찬국, 한완상, 이문영, 리영희, 박현채, 이우정, 강만길, 송건호, 서광선, 김용복 교수 등이었다. 당대 최고 예언적 지성들이었다. 내가 만난 죽재 서남동! 이는 죽재 개인만이 아니라 죽재 와 동시대의 예언자들, 갈릴리 공동체 사람들, 그리고 역사와 만남이었다.

선교교육원은 강포한 시대, 불의한 권력에 의해 쫓겨난 학생과 교수의 기댈 언덕이었고 아지트였고 환난 당한 자의 ‘아둘람 동굴’이었으며 한국판 ‘핑켄발트’ 신학교였다. 그 중심에 죽재 서남동이 계셨고 심원 안병무가 계셨다. 민중 신학의 산실이 되었다.

또한 선교교육원은 민중교회 운동의 산실이었다. 민중교회 운동의 신학적 배경은 물론 죽재 서남동과 심원 안병무의 민중신학이었다. 역사적은 배경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이었다. 국가조찬기도회, 당시 한국교회 저명한 지도자들이 ‘광주’를 피로 진압하고 새 권력자로 등장한 군부 통치자를 위해 축복 기도를 하는 장면, 교회가 무엇인지를 묻게 하였다. 이것이 민중교회 운동의 배경이 되었다.

민중교회 운동 주역들 중, 선교교육원 출신이 많았다. 노창식, 김광훈, 오용식, 김현수, 이춘섭, 한기양, 조인영, 김창규, 김광수, 이대수, 정상시가 그들이었다. 이들 외에도 서남동의 제자들, 우리 사회 여러 삶의 현장에서 서남동 신학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중교회의 역사적 배경이 ‘1980 광주’였다면 민중신학의 역사적 배경은 1970년 전태일 분신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전태일 이후 시작된 ‘수도권 특수선교위원회’(위원장 박형규) 활동과 주민교회, 동월교회 등의 민중선교 실천과 시대의 강도 만난 이웃들 이야기가 민중 신학과 이후 민중교회의 경험적 배경이 되었다. 결국 민중신학, 민중교회, 민중선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출현했고 그 중심에 선교교육원이 있었고 죽재 서남동이 계셨다.

나는 1975년 유신독재, 저항 영성의 거점 대학, 한신에 입학한 이후, 예루살렘보다 갈릴리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갈릴리교회, 선교교육원, 죽재와 갈릴리 공동체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를 그 길로 이끌었다. 내가 1987년 안양에서 민중교회인 박달교회(현 안민교회)를 개척하고 30년 이상 ‘바닥 공동체’을 지키며 살 수 있었던 것도 죽재를 비롯한 ‘갈릴리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만난 갈릴리 예수 덕분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의외의 기쁨이고 고난의 은총이었다.

정상시  jssi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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