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진화와 불행의 출발점은 ‘내일 보자!’이다.”라고 진화생물학자인 다니엘 밀로는 말한다(밀로: 2017). 그는 여느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특징을 찾다가, 호모 사피엔스가 어느 날 문득 ‘내일’이라는 개념을 떠올린 것을 주목한다. 그리고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오늘만 사는 동물’의 낙원에서 추방당했으며(창세기), 돌연 아프리카를 떠나게 되었다(출애굽기). 밀로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인간만이 지구상의 동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위해 이미 존재하는 현재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나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유보한 채 땀을 흘리며, 반대로 다가오지 않은 내일을 두려워해 일찌감치 미래를 포기한 채 오늘을 즐기기도 한다(카르페 디엠). ‘내일 저곳은 오늘 이곳보다 낫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로 오늘까지 일궈낸 모든 것을 포기하는 모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내일의 발명. 그것이 말로 교수가 꼽은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난 원인이자, 지구 생태계의 정점에 선 힘의 근원이었다.

동료의 사체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묻고, 또 그렇게 보이지 않게 된 동료를 기억하며 자신에게 닥칠 죽음이란 미래에 대해 상상(메멘토 모리)하는 존재는 오직 인간밖에 없다. 물론 동물들 또한 동료의 죽음을 인식하는 감정과 생각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동물의 그것은 인간의 것과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에 ‘큰 두뇌’나 ‘도구’와 ‘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미래의 발명’이 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내일이라는 상상을 발명한 이후 삶에서 항상 불확실한 미래를 염두에 두느라 만성적인 불안과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준비와 계획’이라는 개념을 다시 떠올렸다. 상상된 미래를 대비하는 과정에서 ‘축적’과 ‘잉여’가 탄생했고, 이윽고 호모 사피엔스는 ‘과잉’의 소용돌이라는 현세의 지옥에 빠지게 되었다.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포스터

일반적으로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유희’나 ‘잔혹함’, ‘소통’, ‘이타주의’ 등의 가부로 규정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흰쥐들은 불 꺼진 실험실에서 폭소하고, 늑대는 유희를 위해 쓸데없는 학살을 자행하는가 하면 사마귀나 돌고래는 시간(屍姦)과 이종 강간마저 서슴없이 벌인다. 따라서 밀로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 짓는 인간다움이란 오직 내일이라는 상상과, 그 상상에서 비롯된 과잉이라는 현상뿐”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과잉으로 치닫는 현대사회의 모습은 이미 수만 년 전부터 예정되었던 셈이다.

자주 인용되는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수사자 한 마리가 암사자들의 규방을 차지하게 되면 선왕의 아들들을 제거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죽임을 당하는 죄 없는 새끼 사자들의 비율은 80퍼센트에 달한다. 신다윈주의자들은 이러한 행태를 유전학적 논리로 설명한다. 새로 나타난 수컷 알파가 아비 잃은 고아들을 제거하는 까닭은 그에게 죽은 이전 우두머리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식들을 보호해주고 먹여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덜 미래지향적인 설명도 가능하다.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한 암사자는 배란을 하지 못한다. 새 왕은 자신의 리비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예 새끼들을 죽여서 암사자가 다시 발정이 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듯 수사자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아빠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짝짓기를 하기 위해서 손발에 피를 묻히는 것이다. 흔히 짐승은 번식을 위해 섹스하고 인간만이 즐거움을 위해 섹스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틀렸다. 오직 인간만이 종족 보존을 위한 번식이라는 숭고한 사명을 위해 가끔 섹스를 하는 것이다.

섹스마저도 다른 동물들은 지금 그저 좋아서, 재미나서 한다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지만 가끔은 섹스가 자신의 후손 번식, 생산과 방어, 노후보장과 직결된 것이라는 걸 의식한다는 것이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은 이 미래를 발명해내고 그것을 위해 계획하고 기대하고 희망하고 주도면밀하게 준비·실행하는 인간의 의식이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을 지구촌의 다양한 종들을 바꾼 것이다.

최병학 기자  hak99@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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