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일생은 잘 알려져 있다. 처자식은 내몰라라 하고 저잣거리에서 노소를 막론하고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무지를 각성케 했던 그가 결국 독배를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독배를 마시게 했던 죄목은 “국가가 인정한 신이 아니라 새로운 신을 믿게 했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야기까지.

소크라테스의 죄목에 대한 소크라테스 자신의 법정 변론을 담고 있는 작품은 소크라테스의 애제자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이 작품을 또박또박 읽어내려 가면 딱 3시간이 소요되는데, 법정에서 소크라테스가 행했던 변론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플라톤의 이 작품에는 소크라테스 자신에게 덧씌어진 죄와 자신을 고소한 이들을 향한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역사적 사실 하나를 추가하자면 소크라테스를 고발했던 고소인들의 고소장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무죄를 변론하기 위해 그의 입으로 죄목들을 나열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 고소장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학자들 중에서 소크라테스의 고소장을 여러 상황적 증거들을 통해 재구성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역사적 상상력에 의한 산물일 뿐이다.

내 귀에 귀신 목소리가

하여간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어다가 보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만나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요즘 말로 하면, 귀신 들린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플라톤이 기록한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일종의 신적인 것이며 영적인 것이 제게 나타난다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멜레토스가 공소장에서도 조롱하는 투로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제게는 이것이 소싯적에 시작된 것이며, 일종의 소리로서 나타나는 것인데, 이것이 나타날 때는, 언제나 제가 하려고 하는 일을 하지 말도록 말리지, 결코 적극적인 권유를 하는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정치하는 걸 반대한 것이며, 그게 반대한 것은 어쨌든 아주 잘한 일로 제게는 생각됩니다.”(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론』, 31c-d, 박종현 옮김 [서울: 서광사, 2003], 152-153), 

저 소크라테스의 변론 중, “신적이고 영적인 어떤 것”을 흔히 잘 사용하는 “양심의 소리” 혹은 “신념”으로 고쳐 읽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그렇지만 희랍어 원전에는 “다이몬”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영어 demon의 어원이 되는 단어이고, 우리말로 하자면, “귀신”이다.

“소싯적”부터, 즉 소크라테스는 어린 시절부터 귀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무엇인가만 하려고 하면 그 목소리가 들려 못하게 막았다고 한다. 급기야 그 목소리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까지 막아선 까닭에 소크라테스 자신은 저잣거리에서 다른 이들에게 무지를 알게 하는 일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무엇인가를 하라는 목소리는 안 들리고 하지 말라는 목소리만 들린다는 면에서 보면 소크라테스로서는 억울하다.

속된 말로 남들에게 번듯하게 보이는 일은 못하게 막고 맨날 사람들과 저잣거리에서 말싸움 하는 일에만 매달리게 했으니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고 참 모양 빠지는 소크라테스였다. 그저 양심의 소리였다면 그냥 눈 한 번 질끈 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도 있으련만 남들이 못 듣는 소리가 자신에게 들리니 다른 곳으로 눈 돌리기가 어려웠다고 읍소하는 장면이다. 어른들 자주 하시는 말씀처럼, “참 기구한 인생”이다.

바울 귀에 들린 성령의 목소리

신약성서에도 소크라테스에게 일어났던 상황과 아주 유사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 16장 6절에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성령이 막으시므로”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9-10절에 “여기서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 환상을 바울이 본 뒤에,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려고 하였다. 우리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라고 쓰여 있다.

요약하자면, 성령께서 아시아에 가는 것을 막으셨다, 그러다가 밤에 환상을 보고 마케도니아로 가기로 작정했는데, 성령께서 마케도니아로 가라고 직접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마케도니아로 가야 한다고 확신한 건 바울 자신이었다. 소크라테스나 사도 바울이나 참 힘든 인생이다. 무엇을 하라는 적극적인 소리는 안 들리고 하지 말라는 소리만 들리니 말이다.

개신교 8개 교단장들이 들은 목소리는?

개신교 8개 교단의 교단장들이 모여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섬돌향린 교회 임보라 담임목사를 두고 이단이냐 아니냐를 두고, 마치 중세시대에 횡행했던 어떤 여인이 마녀인지 마녀가 아닌지 검증했던 것처럼 검증해 보겠다고 나섰다. 이 교단장들의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렸을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고대 희랍의 귀신 다이몬이나 삼위일체 성령 하나님처럼 “하지 말라”는 역사적 유사성을 가진 목소리였을지, 아니면 이단 검증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자신들의 신념의 목소리였는지 말이다.

녹차의 꿈  schottroff@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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