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시대의창 펴냄/ 엮은이 피터 R. 미첼 & 존 쇼펠/ 옮긴이 이종인/ 11,000원

우리 시대의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참 지식인은 어떤 존재인가. 촘스키라는 이름을 생각할 때면, 항상 떠오르는 물음이다. 미래가 점점 불투명해지고, 어두워지는 이때, 지식인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과 성찰이 시급하다.

촘스키는 무엇보다 실천하는 지식인이다. 그의 지적 성찰은 쉴 줄을 모른다.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다국적 거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지칠 줄 모르고 투쟁하고 있다. 그는 지배권력의 선전에 세뇌돼 왜곡된 진실을 사실인양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적인 자기 방어법을 제공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제시한다.

타락과 탐욕으로 범벅된 세계 지배권력의 심장에 창을 겨누는 촘스키의 투쟁은 외롭다. 광야에 홀로 서서 찬바람 맞으며 진실을 외치는 그의 실천은 때론 덧없어 보인다. 하지만 ‘진실을 도둑맞고 사는 약자’들에게 그의 존재는 크고 무겁다. 정확히, 이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살찐 자들에게 그는 성가시고, 두렵다.

이 책은 촘스키가 지난 10년 동안 간담회, 연설회, 세미나에서 ‘세상’의 물음에 답한 내용을 총망라한 것이다. 따라서 청중들과 촘스키가 서로 주고받는 대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편집자들은 촘스키 사상의 고갱이와 세상을 읽는 통찰의 큰 줄기를 보여주는 내용을 치밀하게 가려 뽑았다.

각각의 다양한 주제는 여러 분야에 걸쳐 있으며, 이 세상을 이해하는 혁명적인 관점을 제시하면서 권력의 속성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혜안이 돋보인다. 촘스키의 독보성은, 사실과 정보를 풍성하게 제시하면서 전세계 권력기관들의 만행과 기만을 완벽하게 폭로하는 데서 드러난다.

촘스키에 따르면, 세상은 기업권력을 축으로 그에 기생하거나, 끼리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먹고사는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지식인)의 프로파간다에 의해 움직인다. 민주주의나 자유주의는 그저 수사일 따름이다. 그건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다. 신자유주의니, 세계화니 하는 말들은 ‘제국주의’를 은폐하고 감싸기 위한 얄팍한 포장지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화는 이미 권력을 선점한 1퍼센트에게는 더없이 좋은 것이지만 나머지 99퍼센트의 삶을 파괴하고 지구를 황폐화하는 치명적인 독소다. 지배권력이 추구하는 세계화는 지속가능한 발전과는 반대편으로 내달리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머지않아 1퍼센트 권력자들의 먹잇감도 마침내 바닥나 저희들끼리 싸우는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촘스키는 이러한 시대에 99퍼센트의 권리를 위해 평생을 싸워온 참 지식인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모두 세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부제는 각각 권력이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에 관하여,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에 관하여, 민중이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에 관하여 등이다.

그렇다면 다시, 우리 시대의, 2005년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혹시 돈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곡학아세(曲學阿世, 바른 길에서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 사람에게 아첨한다는 뜻)에서 자유로운 지식인은 얼마나 되는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의 진정한 벗으로 살고자 하는 지식인이 그 언제적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촘스키를 보면서 알게 되듯, 참다운 지식인이란 지배권력이 그어놓은 금을 항상, 홀로라도, 용감하게 넘어서는 자들이다. 그러한 행위가 고통스럽더라도, 심지어 목숨을 내놓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두려움 없이 실천하려는 사명을 스스로 짐 지운 자들이다.

꿈과 희망이 사라져버린 시대, 모두가 갈길 몰라 헤매는 시대, 살면 살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시대, 눈 내린 겨울 산정(山頂)에 앉아 등 꼿꼿이 세우고 섬광 같은 눈빛을 뿜어내는 지식인이 그립다.

김경환  bardo61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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