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 민통선안에서 민통선평화교회를 개척해 18년간 목회를 해온 이적 목사의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 <민통선 예수>를 매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어느 날 둘째 아들 한얼이가 <아버지, 창형이 형이 우리 공부방 오면 안돼요?> 하고 묻는다. 나는 창형 이라는 아이가 민통선 마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지모 집사님으로부터 창형이 집안 내력에 대하여 충분히 들어서 알고 있던 터였다. 창형이는 초등학교 3학년 이었는데 애가 손이 거칠고 홀아빠가 알콜 중독자라 아이가 매일 집 밖을 떠돈다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집집마다 들어가서 좀도둑 노릇도 한다는 말도 곁들였다. 엄마는 애들이 어릴 적 일찌감치 알콜 중독자 남편을 버리고 도망을 가버렸다고도 했다. 창형이 위에 형도 한명 있는데 중학교 때부터 건달 노릇을 했다고도 했다. 아마 고1때 퇴학을 당한 것 같다고도 했다. 창형이 위의 아이도 집 밖을 떠돌며 마음대로 생활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소릴 듣고 언젠가는 창형이를 만나 우리 공부방으로 데려 오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그 아이를 한얼이가 말 하는 것이었다.

나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창형이를 만나 공부방으로 데려 왔다. 아이가 나이보다 키도 작고 외소 했다. 먹는 것이 부족해서 이리라. 나는 창형이가 공부방에 오고 난 뒤 전개될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 채지를 못하고 있었다. 창형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우리 가족과 함께 24시간을 살게 되었는데 함께 사는 동안 녀석의 소행과 그 가족들 때문에 골머리깨나 썩혀야 했다.

창형이가 공부방에 오고난 뒤부터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면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쭈삣 거렸다. 처음에는 눈치를 못채고 있었는데 나중에 한얼이에게 들으니 창형이가 집에 가기를 싫어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면담을 나누었다.

<창형이 왜, 집에 가기 싫어하는 거지? 이유가 있냐? 전도사님께 말해봐.> 녀석은 처음에는 말을 하지 않더니 나중에 눈물을 글썽이며 <아빠가 때려요.> 라고 말한다. <아빠가 왜? 왜 때려?> <그냥요. 아빠가 술만 먹고 들어오면 새벽에 막 발길질 해요.> 더 이상 듣지를 않아도 대강 상황은 짐작이 갔다. 나는 그날부터 창형이에게 집에 가지 말고 공부방에서 먹고 자고 해도 좋다고 말해 주었다. 물론 알콜 중독자 아빠의 소견도 듣지 않고 나 혼자 내린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 결정 때문에 나는 드디어 창형이 아빠로부터 무자비한 공격을 당해야만 했다. 아이를 데리고 있은지 약 6개월 동안은 아무 일이 없었다. 물론 마을 사람들 누구도 창형이가 교회공부방에서 기숙을 하게 되었다며 비판 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다들 잘된 일이라고 지지를 해주고 있었다. 아무도 미치광이 아빠 밑에서 탈출한 창형이가 잘못 선택 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창형이는 토요일마다 아빠에게 다녀오기도 했다. 교회와 창형이 집은 2백미터도 안되게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금방 다녀 오기도 하고 하룻밤을 자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더니 어느 날 아이들 공부를 가르치고 있는데 바깥이 왁자지껄 하였다. 웬 사내의 고함소리가 동네를 쩌렁 쩌렁 울리게 만들었다. 그때 일홍이 녀석이 뛰어 들어 오더니

<전도사님, 창형이형 아빠가 술 취해서 목사님 죽인다고 해요. 무기도 들고 있어요.>한다. 나는 부랴부랴 밖을 뛰어나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웬 초라한 사내 하나가 낮술에 잔뜩 취한채, <목사새끼 나와! 오늘 교회에 불을 싸질러 버린다. 빨리 목사 새끼 나와!> 하고 악을 써댄다. 나는 이럴 땐 모르는 척 하는 게 상수다 싶어 뒤 곁 사택의 서재로 들어 가버렸다.

그리고 못들은 척 하고 숨을 죽여 지냈다. 한참이 지난 뒤 사내의 목소리가 그쳐 있었다. 바깥에 나와 보니 역시 조용 했다. 그런데 공부방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들이 <전도사님, 창형이 형이 끌려갔어요, 막 두들겨 패요,> 나는 그때서야 <아차> 싶었다. 창형이가 끌려갈 것이란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고학년 아이들 몇을 데리고 창형이 집으로 부랴부랴 달려갔다.

창형이 집에 가니 술 취한 창형이 아빠가 개거품을 물고 날뛰고 있었다. 그런데 창형이가 없었다. 집 앞 뒤를 아무리 둘러 봐도 창형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방문 앞 댓돌에도 창형이의 신발은 없었다. 집은 70년대 새마을 운동 때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흙집인데 금방 무너질 듯 아슬아슬한 집이었다. 뒤 곁 창가에 가서 창호지 문을 뚫고 방안을 들여다봐도 아이는 없었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니?> 창형이가 교회 공부방에 와서 우두커니 앉아 있었던 것이다. <너 괜찮니?> 창형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일반집 아이들 같으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인데 아이는 아빠의 소행에 단련이 된 듯 무표정하게 <도망쳐오면 돼요> 하고 책에 머리를 박는다.

나는 그 모습에 뒷 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매 맞고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이었고 그게 창형이 아빠와 첫 대면이었다. 악연의 시작 이었다. 창형이 아빠는 그때부터 나를 괴롭히기 시작 했다. 차를 타고 동네 골목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만나면 전도사차 임을 알아본 그는 차 앞을 가로막아 드러누워 버린다. 동네 사람들이 와서 겨우 끌어내면 도망치듯 마을을  빠져나오곤 했다.

그런 행위는 한 두번이 아니었다. 심심하면 교회에 와서 행패를 부리곤 했다. 하루는 밤이 되어도 큰 아들 한결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녀석은 중학생 이었는데 결코 늦게 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한결이가 늦게서야 집에 오기에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왔냐고 다그치니까 학교 형에게 끌려갔다가 왔다고 했다. 나는 머리끝이 쭈삣 섬을 느끼며 <너 학교 폭력 당하니 ? 솔직히 말해.> 하고 물었다 <아뇨?, 학교에서 맞은게 아니고 창형이 형을 마을에서 만났는데 엎드려뻗쳐 한 상태로 빳다를 맞았다>는 것이다. 기가 찰 노릇 이었다. <아버지는 주정뱅이 아빠한테 당하고 아들은 그 아들한테 당하고...> 그만 비참한 생각이 들어 목회고 뭐고 창형이를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어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했다, <주님 , 이런 경우는 내가 참아야 합니까...>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녀석을 찾아가서 혼내주고 싶은 충동에도 휩싸였다. 파출소에 신고를 할까 하는 충동에도 휘말렸다. 나는 괜찮지만 아이가 계속 폭력을 당한다면 어쩌나? 민통선에 올 때 아들이 지옥에 끌려오듯이 강제로 끌려 왔는데 내가 아들에게 죄를 짓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만감이 교차 했다. 일단 기도 하며 밤을 넘기기로 했다.

<필자 소개> 이적 목사 약력 -1957년생 경남 통영 출생. -1986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 민족문학에 <안개속으로><연작시 삼청교육대10> 등으로 신인추천. - <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3년 구금, 88년 <미주중앙일보> 정화작전 연재 91년 <대한매일 창사기념/ 장편소설 적도> 당선, 80년대 군사독재 저항문인 단체였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회원> <민예총 창립회원> 1987년 삼청교육대사건을 최초로 폭로한<삼청교육대정화작전/전예원 87>발간. 이후 <장편소설 북방산계곡의비밀/90광야> 장편실록 <청송감호소 죽음의 그림자> 정치평론<대통령의 늦바람/남풍89>등이 있으며 시집 으로 <바스티유의땅/한겨레 88><이별과절망의둔주곡/ 푸른숲91>< 바다가 된 그대에게/ 새암바다/2000>등 기타 <김대중 살리기 공저><분단과통일시 1,2집/공저><사람과문학/ 공저>등 20여권의 작품집이 있다 현재 저항문인 단체인 <분단과통일시 동인>, <우리시대의시인들 동인>으로 활동 하고 있으며 경기도 김포시 <민통선평화교회담임 목사>로 시무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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