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흔히 가장 내밀한 ‘마음 속의 작용’으로 여기기 쉽지만, 감정의 발생과 작용, 그리고 효과는 단지 개인의 것만은 아니다. 생동하는 감정은 개인의 삶을 끌고 가는 거대한 에너지이지만, 또한 사회 속에서도 종종 집단적으로 발휘되면서 강력한 힘으로 작동한다. 나아가 특정 시대, 특정한 사회에서 특정한 감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특정한 감정이 사회적으로 유도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유도되는, 혹은 집단적으로 조성되는 감정은 유감스럽게도 ‘기쁨’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와 폭력, 부의 편중과 빈곤의 심화 등 인간사회 내부의 문제들 뿐 아니라,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 등 나날이 실감하게 되는 환경악화의 문제들은 현대인들에게 슬픔과 분노를 넘어 우울과 냉소의 감정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대사회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지점까지 자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자조적 불안감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정치·경제·사회·생태적으로 갖가지 문제가 뒤얽힌 채 끓어오르는, 그러나 문제해결은 끝없이 지연되는 정치적, 개인적 무기력의 경험이 누적되는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풍경은 좀 더 황량하다. 사회학자들은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감정으로 ‘분노’, ‘불안’, ‘혐오’, ‘절망감’, ‘모멸감’¹⁾ 등을 꼽고 있다. 다수 한국인들의 출구를 잃은 분노/불안/혐오/절망감/모멸감은 상황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는 장기적 노력에 투입되기 보다는, 어떤 ‘건수’가 생기면 한곳에 집중되어 폭발되는 모습을 되풀이해서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기쁨’을 찾기 어려운 시대에, 도무지 어떻게 ‘기쁨’을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대구와 카레>의 이번 칼럼 기획에서 ‘기쁨’을 맡은 것이 후회스러울 따름이다.

절망의 시대에 어떻게 기쁨을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이렇게 암울한 세상에서 어떻게 기쁘게 살 수 있을까? 이것은 책방 서가의 처세술이나 자아개발서 코너에서 발견함직한 물음이다. “절망의 시대에 기쁘게 사는 법”이라... 이런 제목의 책이 있다면, 당장 구입해서 읽어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물음을 안고 그 해답을 진지하게 모색한 이가 있었다. 노르웨이의 철학자인 아느 네스(Arne Naess)는 1960년대에 이미 가속화되는 환경파괴로 인해 “재앙에 직면한 세계에서 기쁨의 가능성(the continued possibility for joy in a world faced by disaster)”²⁾을 탐구했던 것이다. 물론 그의 모색의 결과는 처세술서의 해결책들과는 달리 간단하지 않다. 그는 그러한 탐구의 과정에서 심층생태론(Deep Ecology, 근본 생태론으로도 번역)의 복잡한 논의를 전개하게 된다. 네스의 ‘해답’은 다른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그의 물음에 집중해보자. 이렇게 암울한 세상에서 어떻게 기쁘게 살 수 있을까? 이것은 철학적 물음인 동시에 내 삶의 물음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의 물음이기도 하다.

잠깐 시선을 돌려, 일본의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책을 살펴보자.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역설적 제목의 책에서, 그는 “생활 기반이 서서히 썩어 들기 시작”한, “‘뒤틀린’ 사회 구조 내부로부터 젊은이들 스스로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기묘한’ 안정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³⁾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까지 경험하면서 사회에 문제가 많다는 점은 절감한다. 그러나 그들은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무기력감과 더 이상 희망은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오히려 개인적/사회적 변화 가능성을, 변화의 희망을 포기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희망이 끊긴 절망의 시대에 스스로의 삶을 행복한 것이라고 자조하면서, 소위 ‘작은 행복’ 안에서 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해석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가 묘사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과연 이들은 ‘절망의 시대에 기쁘게 사는 법’을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을까? 절망의 사회를 보지 않고, 내 손이 닿는 곳에서의 ‘작은 행복(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기쁘게 사는 길일까?   

좀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올더스 헉슬리(A.L. Huxley) 1932년에 『멋진 신세계』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가 그린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의 감정이란 위험하고 심지어 추잡한 것으로만 여겨진다. 그 세계의 총통은 그곳의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제군들은 행복한 거야.” “제군들의 생활을 감정적으로 안락하게 하기 위해서 여하한 수고도 아낀 적이 없었다. 될 수 있는 한 어떤 감정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⁴⁾ 불안, 두려움, 분노 뿐 아니라 사랑까지도 거추장스러운 에너지 소모일 뿐이다. 총통이 젊은이들에게 말한 ‘행복’은 감정의 거세를 통한 무념무취의 ‘평온한 상태’를 가리킨다. 총통의 말대로, 격동시키는 감정을 소거시키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일까?

잭 바바렛이 말하듯이, “감정은 자기가 관여하는 세계와의 직접적 접촉이다.”⁵⁾ 이 세계가 불안, 분노, 모멸감, 냉소, 무력감 등을 조장하고 있지만, 우리가 ‘기쁨’을 발견하고 느끼는 것도 이 세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 세계와의 연결을 ‘기쁨’을 제외하고는 차단한다(불안, 분노, 모멸감, 냉소, 무력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은 보지 않고 듣지 않는다)는 발상은 불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우리의 ‘기쁨’은 불안, 분노, 모멸감, 냉소, 무력감 등을 불러일으키는 ‘고통’의 현실과 분리될 수 없다. 고통의 현실, 절망의 현실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기쁨’은 있다. 찰나적이지만, 팍팍한 우리의 삶을 데워줄 만한 온기가 그 안에 있다. 

절망의 시대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들여다보자. 두려움, 불안, 분노 등은 무언가 잘못된 것을 감지한 신호일 수도 있다. 멈춰서서 돌아보게 하는, 우리가 닫아버리고 외면해서는 안 되는 감정인 것이다. 무력감, 무능에 대한 절감은 실상을, 곧 고립된 존재로서 능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의 실상을 감지한 신호일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라 서로를 돕는 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두려움과 불안과 무력감 등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그러한 감정들을 직시하는 가운데, 비로소 이 시대의 ‘기쁨’을 경험하자고 제안한다. 모든 사람이 숫자로 자신의 의미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는 비참하다. 이러한 절망의 시대에 ‘기쁨’은 감정의 거세나 시야의 축소를 통한 존재의 위축보다는, 사회가 강요하는 가치관과 권력구조에서 비껴난 다른 존재들과의 만남을 통한 존재의 확장 속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워낙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보이지 않는 거센 물결 속에서 살고 있기에, 기쁘게 살아기로 결심하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저항이 된다. 작아서, 투명해서 주류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작아서, 희미해서 주류의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 하는 노력은 암울한 이 시대에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통로일 뿐 아니라,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이기도 하다.

맹자는 자포자기하는 자와는 더불어 이야기하거나 함께 일하기가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자포자기의 뜻을 풀면, 스스로를 해치고 스스로를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장밋빛 희망이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동안은 스스로를 해치거나 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맹자가 이야기하는 참된 ‘인간다운’ 길이다.

이 ‘절망’ 너머를 계속 꿈꾸면서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찾아오는 찰나적 기쁨이 있다. 언뜻 마주잡은 가난한 손에서 전해오는 온기, 반짝이는 눈빛, 따뜻한 웃음 같은 것.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꼬리 끝부터 시작해서 싱긋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아주 천천히 사라졌다. 웃음은 몸이 다 사라지고도 한동안 남아 있었다.
“와! 웃지 않는 고양이는 자주 봤지만 말이야.” 앨리스가 생각했다. “고양이 없는 웃음은 처음 봐! 살면서 이렇게 신기한 것은 처음 봤어!”⁶⁾

‘절망’의 시대에 기쁘게 살아간다는 것은, 계속 넘어지고 상처투성이일지라도, 작고 낮은 곳에서 만난 그 웃음을 기억하며 그렇게 또 걸어가겠다는 것이다. 절망의 시대에 우리 사회에는 끝이 없을 정도로 여러가지 장애물이 많이 펼쳐져 있다. 가난한 우리는 계속 뒤로 물러나고 곧잘 넘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생의 아름다움은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누릴 수 있는 경이를, 기쁨을 마음껏 누릴 것이다. 함께 걸으면서.

우리는 이렇게 ‘기쁨’으로 이 시대에 저항한다.

<각주설명> 1) 특히 ‘모멸감’에 대해서는, 김찬호,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문학과지성사, 2014 참조. 2) Arne Naess, Ecology, community, and lifestyle, tr. and ed. by David Rothenberg,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9, p. 2. 3) 후루이치 노리토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이인숙 옮김, 2014, 민음사, 35쪽. 4)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이덕형 옮김, 문예출판사, 1998, 57쪽. 5) 잭 바바렛 엮음, 『감정과 사회학』, 박형신 옮김, 이학사, 2009, 8쪽. 6)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최용준 옮김, 열린책들, 2009, 76쪽.

▲ 유기쁨(한국종교문화연구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신대와 감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지금까지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믿음과 실천의 양태들을 종교학적 시각에서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특히 주로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 극복을 다양한 방향에서 모색해왔다. 이를 위해 한국사회 곳곳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현장성), 그곳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몸의 경험(구체성)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하되, 이를 소통하고 이론화하는 작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해왔다. 최근 발표한 논문으로는 「생태적 불안사회의 종교 : 생태 공공성과 종교의 자리」, 「생태의례와 감각의 정치」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문화로 본 종교학』,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경작법과 농경 의례에 관한 연구 1,2,3』, 『세계관과 생태학: 종교, 철학, 그리고 환경』, 『세계종교로 보는 죽음의 의미』(공역), 『진짜 예수는 일어나주시겠습니까?』(공역) 등이 있다. 현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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