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마을에서 마을 회관을 빌려 수리를 했다. 10년이 넘게 폐허가 되어 있던 건물을 손질을 하니 새로 지은 건물처럼 깨끗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을 부르고 많은 사람들을 불러 잔치도 했다. 나는 여기를 이 동네 아이들의 따뜻한 보금자리로 만들겠다고 했다.

애환의 시작 이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나를 보고 기대 반 우려 반의 시각을 보내고 있었다. 고립무원의 산골 마을,여기서 무슨 할일이 있다고..여기서 어떻게 살아가려고..

맞는 생각 이었다. 몇 개월간은 갖고 있는 것들로 어영부영 때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민통선 생활은 나를 압박해왔다. 하지만 허약 해져가는 생각들을 물리치려고 모질게 나를 압박 했다. 그럴 때는 기도로 나를 채찍질 하고 죽지 않고 살아 나왔던 지난세월을 떠올리며 내가 좋아 하는 성경구절을 암송 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라
<누가복음 4장18절>

나는 민통선에서 생산되는 쌀장사를 하기 시작 했다. 지인들에게 소개를 받아 봉고차에 서울로 쌀을 싣고 나가 가마니채로 팔았다. 한 가마에 만원 가량이 남았다. 하루에 잘 팔면 5만원 벌이가 되기도 했다. 나는 그 돈으로 신학교 학비도 하고 공부방 운영비도 했다.

신학교 만학도 동료들이 고생을 사서 한다고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처음부터 웬 고생을 그리 하느냐는 것이다. 개척을 하려면 모 교회에서 지원을 받지 않으면 해낼 수 없다고 했다. 전도사직 자리를 요청하면 학교에서 자리를 소개 해주기도 하고 또 학교 게시판에 보면 전도사직 초빙이 널려 있는데 그걸 마다하고 생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었다. 학교 전도사 동료들이 말하는 대로 하면 편하게 목회를 시작 할 수 있을 것 이였다. 적어도 편하지는 않더래도 미래는 보장될 것이었다. 내가 다니는 신학교는 교단이 한국에서는 제일 큰 교단이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미래가 보장 되는 사역을 할 수 있을 것 이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 교단의 물량주의와 성장주의는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었으므로 처음부터 도움을 받든지 사례비 받는 목회는 하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민통선교회와 공부방을 소리 없이 잘 끌고 나가고 있었다. 민통선의 새벽은 대남 방송과 대북 방송이 울려 퍼지는 것으로 시작 되었다. 북녘 하늘이 밝아 올 때 쯤 은 민통선의 농부들은 벌써 들판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있다.

임진강 하구언은 겨울에는 성난 사자의 얼굴처럼 날카로웠으나 하절기에는 그처럼 평온한 얼굴일수 없다. 하구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번잡스러운 세상 잡다사를 다 날려버리는 것처럼 시원하고 신선했다.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세속의 욕심들을 모두 버린 채 민통선 살이를 하고 있었다. 세속에서 갖고 있던 번잡스러움을 버리지 않으면 나는 여기서 절대 살아남으리라는 상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착을 끊고 오직 하늘로부터 오는 울림으로 묵상 기도를 올리며 내 삶을 조용히 정리 해 나가고 있었다.

▲ 이적 목사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생활 하는 것은 거의 수도에 가까웠다. 아이들과 함께 올리는 기도시간은 내 삶의 유일한 유착 이었고 기쁨 이었다. 민통선 살이 1,2년은 아이들 공부방 자리 잡는 것에 온 정신을 집중 시켰다.

돈 많은 친구들에게서 모임 요청이 와도 거기에는 내가 나갈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자리를 정중히 거절하기도 했다, 동창회에서 연락이 와도 나가지 않았다. 그런델 자주 나가다보면 현재의 생활과 괴리감만 갖게 될 터이므로 스스로 자제를 했다.

나는 오직 서울에서 쌀장사 하는데 도움을 주는 김옥임씨를 만나는 일 외에는 별로 서울에는 나갈 일이 없었다. 김옥임씨는  민통선 쌀의 진가를 알았다. 주로 천수답으로 농사를 짓는 민통선 쌀은 김포에서도 그 쌀 맛을 최고로 치고 있었고 김포의 특산물로 취급 받고 있었다.

김옥임씨가 민통선 쌀을 한번 먹어보고는 많은 지인들을 소개 해주었다. 어떤 집엔 한가마니 또 어떤 집엔 두가마니... 이렇게 쌀장사를 하며 조용조용 낮은 자세로 나의 번잡스러웠던 과거를 지워 나가고 있었다. 목표만 바라보며 살아온 과거 ,군사정권 무리들의  복수에 절어 있던 나를 깨끗하게 세탁을 하는 것은 낮게 사는 법을 익혀 나가는 것이었다. 더 낮게, 더 낮게...그렇게 되 뇌이며 나의 민통선 생활은 시작 되었다.

나는 동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인 오후2시부터는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 한다. 저학년부터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이들을 씻어 주고 독서를 시킨다. 독서 후 고학년들이 돌아오는 시간이면 아이들 전부와 철책선 나들이를 나간다. 아이들과 철책선이 있는 언덕에 앉아 한반도 현대사를 공부 한다. 그리고 짧지만 산책도 하고 문수산 산림 욕장에 놀러도 나간다. 보통 홀부모 밑에 자라는 아이들이라 아이들은 평균 밤10시가 넘도록 함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공부방에 있으면 절대 심심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집으로 가봤자 부모가 돌아올 시간도 멀었고 밥조차 굶는 경우가 비일 비재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역아동센터 라는 제도화된 국가 시설로 전환이 되었지만 당시만 하여도 방과 후 저소득층 아동은 국가가 돌봐 주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저녁식사는 내 호주머니 사정에 따라 달라졌다. 주머니 형편에 따라 저녁 찬거리를 준비 했으니 말이다. 형편이 좋은날은 고깃국을 끓였고 형편이 좋지 않으면 라면으로 대신 했다. 저녁 내내 숙제도 시키고 논술도 가르치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시내에 볼일이 생겨도 자리를 비울수가 없었다. 혹 학교에서 사고가 나도 내 몫 이었다. 아이들의 한 부모가 학교 가는 걸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한 부모들은 대개가 자신이 혼자 산다고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부모 대신 내가 나서서 문제해결을 하곤 했다. 학교 교사들도 나의 그런 말을 들으면 협조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부모가 아닌데 간섭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면 학교 측과 단판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어떨 땐 마을 사람들과 싸움을 한 케이스도 있다. 자기 집 비닐 하우스가 찢어졌는데 우리 공부방 아이들 소행이라는 것이다. 공부방 아이들이 아니면 이걸 찢을  람이 없다며 <개새끼 소새끼> 하며 웬 아이들을 모아다가 동네 피해를 주느냐며 악을 빠락  락 쓰기도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자기 동네 아이들 공부 시키고 밥 먹이는데 그런 이기심을 보인다. 참자, 참아야 한다.<예수님도 자기 동네에서 더 구박을 받았다는데...>하며 분노를 목울대 너머로 삼켜 버린다.

그러면서 나는 차츰 민통선 사람이 되어가기 시작 했다.

이적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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