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포시 민통선안에서 민통선평화교회를 개척해 18년간 목회를 해온 이적 목사의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 <민통선 예수>를 매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나는 퀭한 눈으로 민통선의 아침거리를 나섰다. 아, 아 그 마을에도 싱그러운 생명들이 새벽길거리를 나서고 있었다. 쬐끄만한 조무래기 아이들 한 무리가 재잘대며 마을 아랫길로 바쁘게 뛰어 내려가고 있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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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얘들아！> 나는 바삐 뛰어가는 아이들을 불러 세웠다. 갑자기 아이들이 멈춰 섰다. 나는 이유 없이 아이들을 불러놓고 잠시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아저씨 왜요？> 그중 자그마한 계집아이 하나가 나를 빤히 바라다보며 반문을 한다.<너희들 오후엔 뭐하니？>밑도 끝도 없이 물었다.
<그냥 놀아요> <어디서？> <아무데서나요><여긴 지뢰도 있고 위험한 곳이 많은데？> <그런 건 몰라요>
<우리 오후에 만날까？> <예->
아이들이 앳된 고함을 길게 뽑으며 민통선마을로 오는 스쿨버스를 타러 뛰어가고 있었다.
<아아！ 싱그럽다. 너무도 맑구나>
나는 그날 민통선 아이들과 처음 만났다. 아이들은 민통선문학관의 내방에 몰려 왔다. 모두 여섯명이었다.
<얘들아 너희들 논술 공부 해봤니？> <아뇨？>
나는 위기철의 <논리야 놀자>를 떠올리며 두어 시간을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쳤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며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뒷날도 아이들이 이웃마을 친구들을 데리고 내게 놀러왔다.
나는 아이들에게 매일 한 시간씩 논술을 가르쳤다. 그런데 아이들 친구 중에 엄마가 가출한 아이, 아빠가 알콜 중독자인 아이, 아빠로부터 매일 매 맞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아빠로부터 매 맞는 아이는 은근히 집에를 가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런 아이는 하룻밤을 재워서 뒷날 학교로 보냈다.
그리고 아이들은 매일이다시피 학교만 마치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막걸리나 마시며 휴식을 취할 계획하고는 완전히 멀어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아이들과 나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김치찌개를 만들어서 아이들과 나눠먹었다. 라면도 끓여서 나눠 먹었다. 몇 녀석은 아예 집에를 가지 않으려는 눈치다. 겨우 겨우 꼬드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다음날 또 찾아온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젠 서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표정이 금새 변했다. 외로운 오지마을, 이곳에서 이 아이들은 희망을 가지고 자라고 있었다. 엄마 없는 아이도, 아빠 없는 아이도,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정을 주면 금방 정이 드는 아이들, 천진난만한 눈빛, 말구유의 예수님과 같은 삶을 가졌어도 싱싱하게 자라나는 이 아이들, 가슴속에 티끌하나 있은 들 애써 외면하며 민통선 바깥으로 나갈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고들 있었다.
<아, 아, 민통선 예수다>
나는 아이들을 꼭 껴안았다.
그날 밤도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그 잠은 시원하고 생명수를 마시고 잠든 잠처럼 먹구름에서 헤어나는 듯한 깨끗한 잠이었다. 나는 잠속에서 넓은 사막을 걷고 있었다. 하늘엔 태양이 이글거리고 지상에서 모래 열기로 가득 찬 불덩어리 같은 세상이었다. 그런데 그 불덩어리 같은 사막이 내겐 하나도 뜨거움을 느끼게 하는 사막이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전혀 조급하지도 성급하지도 않게 그 사막을 걷고 있었다. 오아시스도 찾지 않았다. 목도 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 가니, 모래 언덕배기에 자그마한 예배당 하나가 있었다.
<웬 사막에 예배당이 다 있담>하고 중얼거리며 나는 예배당 안으로 들어섰다. 예배당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아예 폐허가 된 예배당이었다. 나는 예배당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예배당은 전혀 화려하지 않았고 그 흔한 샹들리에 등불 하나도 없었다. 100촉짜리 전구 몇 개만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강대상도 작고 볼품이 없는 것이었다.
성도들이 앉는 나무의자도 몇 십 년은 족히 되었을 성 싶은 오래된 장의자였다. 장식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벽면에 족자 하나가 붙어있었는데 나는 그 족자 옆으로 천천히 자리를 옮겼다. 그 글은 한글로 쓴 글이었다. 나는 족자를 읽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여
눌린 자를 자유케 하라
<누가복음 4장 18장>
나는 그 성구를 읽으면서도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었구나 하고 꿈속에서 그 성구를 외우기 시작했다. 한참 그 성구를 외우다가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눌린 자를 자유케 하라> 나는 그 구절이 그때까지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고 맴돌고 있었다.
신기했다. 나는 새벽에 잠을 깨어서도 그 꿈을 꼭 생시에 겪은 것 마냥 신기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꿇어앉았다. <눌린 자를 자유케 하라> 나는 누가복음 4장 18절을 엎드린 채 끊임없이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때 머릿속에 섬광이 비춰드는 것 같이 나의 앞날이 밝게 보이기 시작했다.
<평화다！ 평화의 빛이다.>
분단된 조국이 머리를 스치고 길거리의 노숙자들이 가슴을 건드리며 지나갔다. 그리고 민통선의 철조망이 가슴에 꽂혔다. 기아에 허덕이는 검은 피부의 아이들이 지나갔다. 아, 그때 민통선 마을의 아이들과 강 건너 북한마을의 아이들이 내 심장에 머물렀다. 총 든 병사의 총검이 아이들 머리위로 번쩍이고 있었다.
<저것이다 저 총검이 나의 적이다>
나는 기도했다. ‘주여, 이 땅에 평화를 주소서. 이 땅에 힘의 논리가 아닌 평화의 논리를 가르쳐 주셔서 한없이 힘들고 가난한 소외된 백성들은 기름진 땅에 살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루 빨리 민통선 마을에 평화가 깃들어 그 평화가 한반도 전체로 뒤덮게 하소서’
<그렇다, 민통선 평화교회다！>
나는 사람이 없는 이 민통선 마을에 평화와 분단을 허무는 예수님 나라를 만들리라 결심했다.그리하여 이 땅에 <평화의 복음><통일의 복음>을 남북으로 전파하리라 결심했다. 아！ 드디어 20여 년간의 내 신앙적 방황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후일 나는 정말 내가 꿈꾸었던 민통선마을 그 통일문학관에다 실제로 민통선평화교회 간판을 달았다. 해병대 군인들과 민간인 몇 명, 이렇게 조촐하게 나의 사역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우연히 서울의 향린교회에 갈 일이 있었다. 나는 향린교회 예배당에서 엎드렸다. 그 교회 목사님과 성도님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실천하는 주님안의 식구들이었다.
<주여 내가 이들과 같이 되게 하소서 다시는 당신의 품안을 벗어나지 않게 하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중략>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장 28-30>
<주님 멍에를 메겠나이다. 멍에를 메고 가겠나이다. 주님 아무리 힘센 황소라도 멍에가 없으면 빈 수레도 못 끌 것입니다. 주여 제가 그 멍에를 끌고 이 땅에 평화를 심겠나이다.>
나는 주변에 살아있는 권력도 포기하기로 했다. 명예와 권세도 버리기로 하였다. 은근히 꿈꾸고 있던 정부 산하 공기업의 낙하산 임원도 포기하기로 하였다. 아내에 대한 미래의 꿈도 바라지 않기로 하였다. 돈도 명예도 그 모든 것도 버리기로 기도하였다. 그동안 싸웠던 그리고 용서 할 수 없었던 내게 가해진 가해자들의 복수도 과감히 던져 버리기로 기도하였다. 오기택 소령, 염근석 중사, 정도형 하사, 채왕지 하사, 권영동 하사, 기타 내게 죽음의 위해를 가했던 수많은 인간들을 내 뇌리에서 지우기로 했다. 임근실의 죽음도 이제는 잊어야 했다. 그와의 약속을 지킨 이상 더 이상 그의 주검에 매달릴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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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적 목사 약력 -1957년생 경남 통영 출생. -1986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 민족문학에 <안개속으로><연작시 삼청교육대10> 등으로 신인추천. - <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3년 구금, 88년 <미주중앙일보> 정화작전 연재 91년 <대한매일 창사기념/ 장편소설 적도> 당선, 80년대 군사독재 저항문인 단체였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회원> <민예총 창립회원> 1987년 삼청교육대사건을 최초로 폭로한<삼청교육대정화작전/전예원 87>발간. 이후 <장편소설 북방산계곡의비밀/90광야> 장편실록 <청송감호소 죽음의 그림자> 정치평론<대통령의 늦바람/남풍89>등이 있으며 시집 으로 <바스티유의땅/한겨레 88><이별과절망의둔주곡/ 푸른숲91>< 바다가 된 그대에게/ 새암바다/2000>등 기타 <김대중 살리기 공저><분단과통일시 1,2집/공저><사람과문학/ 공저>등 20여권의 작품집이 있다 현재 저항문인 단체인 <분단과통일시 동인>, <우리시대의시인들 동인>으로 활동 하고 있으며 경기도 김포시 <민통선평화교회담임 목사>로 시무 하고 있음. |
이적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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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에 남아 있는 일본 제국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