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여다 본 이웃집 마당에 망고나무가 있었다. 주렁주렁 열린 망고 나무를 보자 내 기억은 어느 새 망고나무집 쪽문을 열고 있었다. 나도 망고나무가 있는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태국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한 것은 밤 늦은 시간이었다. 나를 맞이한 선교사님 부부는 깊은 산 속에서 학교 교육도 받지 못하고 살다가 부모님 돌아가시고, 홀로 남겨진 아이들의 아빠, 엄마로 아이들과 함께 치앙마이에서 살고 계신 분들이시다.

우리네 인심이 그렇듯이 선교사님 부부는 며칠 더 머물며 천천히 거처를 구해 보자고 말씀 하셨지만 선교사님 댁 가까이에 빈 방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찾아 갔다. 그 집 앞에는 망고나무가 있었다. 손에 든 것이 망고인 줄도 모르고 먹었던 망고나무가 집 앞에 있다니. 나는 그 자리에서 집을 정하고 바로 짐을 옮겼다.

짐이라야 노트북 하나, 책 몇 권, 타국에서 굶지 말라며 친구가 사 준 1인용 밥솥, 옷 몇 벌을 담은 가방 두개가 전부였다. 그래도 선교사님 댁에서 보내 준 1인용 침대와 이불, 주인집 빠순분 씨가 준 책상을 놓으니 그런대로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다.

사철이 더운 나라이다 보니 냉장고는 하나 있어야 될 것 같았다. 냉장고를 구하러 아침에 나서 가게마다 돌아다니며 가격을 비교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 때가 지났다. 지친 몸으로 집으로 오는데 멀리 망고나무가 보였다.

“망고나무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니? 고맙다.” 10월 초순에 치앙마이에 갔으니 딱 이맘 때 쯤이다. 그 때 망고나무는 풍성한 잎을 자랑하듯 무성하였다.

나는 재래시장까지 한 시간 길을 걸어 다니며, 사온 망고를 망고나무 아래에 앉아서 씻지도 않고 먹었다. 바나나도 아닌데 껍질을 입으로 벗기면 그 속엔 잘 익은 망고의 향긋한 향이 입안에 감돌고, 달콤한 속살은 어느새 즙이 옷으로 뚝뚝 떨어지고 두 손은 끈적끈적 거렸지만 갈비대까지 쪽쪽 맛있게 먹었다.

“너는 이런 망고를 언제 열릴거니?” 어느덧 무성하던 망고 잎이 한두 잎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터인가 떨어진 잎을 쓸고 돌아서면 어느새 작은 마당 가득 낙엽이 또 떨어져 있었다. 더운 나라지만 나무에게도 나름 사계가 있었다.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고 꽃이 피는가 싶더니 어느새 꽃잎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꽃잎은 나뭇잎처럼 쓸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타일 마당을 끈끈하게 만들며 바닥을 더럽혔다. 꽃잎을 쓸고 난 자리를 말끔히 물청소 까지 마치고 나면 나는 망고나무에 물을 주었다. 망고나무에 물을 주는 것은 나의 일과가 되었고 또한 즐거움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망고나무에 대추만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였다. “장하다. 내가 수업 하는 동안에 너는 열심히 열매를 맺고 있었구나.” 수업을 마치고 깜깜한 밤길을 걸어 집 앞에 서면 망고나무는 나를 기다리듯 서 있었고,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지켜주듯 서 있었는데 어느새 열매를 맺고 있었다니.

선교사님은 대문 앞을 들어서면 언제나 망고나무 칭찬부터 하였다. “이 망고나무는 참 맛있는 망고가 열려요. 올해도 망고 엄청 많이 열릴 것 같네요. 이 망고나무는 모양도 다른 망고하고 달라요. 하트모양의 망고가 열리지요.”

대추만하던 망고가 주렁주렁 열리고 제법 탐스럽게 익어 가고 있을 무렵, 나에게는 갑자기 출국 날짜가 정해졌다.

치앙마이는 요일별 시장이 곳곳에서 열린다. 화목토 시장, 월수금 시장, 토요시장, 일요시장. 언젠가 선교사님이 토요새벽시장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토요새벽시장에 가면 시골에서 가지고 나온 온갖 물건이 다 있다고.

치앙마이를 떠날 날을 며칠 안 남기고 선교사님에게 토요새벽시장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흔쾌히 내 생각을 받아 준 선교사님 부부와 일찍 집을 나서 토요새벽시장에 갔다. 정말 시장에는 온갖 것이 다 있었다. 집에서 직접 만든 코코넛 껍질을 이용한 주걱, 국자, 비누 곽과 같은 공예품뿐만 아니고 온갖 곡식, 동물 그리고 한편에 묘목을 파는 곳이 있었다.

묘목을 파는 난전에서 실한 망고 묘목 세 그루를 샀다. “망고나무를 왜 사세요?” 선교사님이 물었다. “제가 떠난 자리에 망고나무를 남겨두려고요. 말리나무라 생각하면서 잘 키워 주세요. 망고 열매 맺으면 먼 길까지 망고 사러 다니지 말고 아이들과 따서 실컷 드시고요.”

나는 그렇게 선교사님 집 앞마당에 망고나무 세 그루를 심어 놓고, 내 나라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떠난 후로 주인집 빠순분 씨는 아짠 말리(필자, 편집자 주)가 물을 잘 줘서 망고가 많이 열렸다며, 한바구니 가득 망고를 가지고 왔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 수년 세월이 지났다.

세상 한 모퉁이에 망고나무를 심어 놓았다는 것도, 그 망고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을 때 한번 다녀가겠다고 한 약속도 까마득히 잊고서.

이번 주말엔 따이베시 시장을 한번 다녀와야겠다. 파란 망고라도 나왔는지…….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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