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완벽하게’ 맑다고 한다. “어제 산에 갈 것이 아니라 오늘 갈 걸... 괜히 구름 속에 애만 태웠네.” 그런데 베르첼리(Vercelli) 가면서 그랄리아 뒷산들(몸바로네, 무크로네, 마르스)을 돌아보니 오늘도 여전히 머리에 흰 구름을 이고 서 있어 오늘 갔더라도 마찬가지였음을 알았다.
이탈리아 중북부 고도(古都) 베르첼리에 도착하니 10시 30분. 살레시오 수도회 피에몬테관구 경리와 베르첼리 원장을 겸하시는 스테파노 신부님을 만나 뵙고 문 선생 부부와 함께 베르첼리도 관광하기로 작정한 길이다.
베르첼리는 쌀생산의 중심이고 유럽에서 소비되는 쌀은 거의 이곳 농산품이다
손수 우리 일행에게 커피를 대접하면서 문선생님의, 이탈리아 보건의료에 관한 질문에도 성의껏 대답을 하시면서 신부님은 지난 20년 쌓아온 우의를 더욱 돈독하게 해 주셨다. 오늘 헤어지면 언제 또 만날지, 과연 살아서 만나겠느냐는 농담을 건네시는 품이 스테파노 신부님도 심적으로 많이 힘드시구나 생각했다.
길을 걷다 어느 집 대문이 열려 있어 들여다보니 주인이 들어와서 보란다. 작은 방방에 작은 창문들이 나 있어서 옛날 수녀원이었느냐고 물으니까 그렇단다. 민간인들이 그 작은 방방을 차지하고 살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의 산물인 나폴레옹은 중부 이탈리아 교황령을 빼놓고 자기가 점령하는 지역마다 수도원을 해체하고 수도자들을 추방하고 건물들을 매각하여 혁명이념 그대로 ‘탈교회화(laicisation)’ 정책을 폈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나폴레옹의 몰락 후 일부는 원주인에게 돌아갔지만 대부분은 교회와 수도회의 손을 영영 떠나는 결과를 빚었다. 현대 유럽에서는 수도자들의 급감으로 자연스럽게 수도원과 그 건물이 국가에 기부되거나 일반인들에게 팔려나가는 추세다.
그 성당 입구에 ‘준주성범(De imitatione Christi)'이라는 책자를 저술하여 중세와 근세 가톨릭신자들에게 성속이원론의 정신을 깊이 박아준 요한 게르센(Ioannes Gersen)이라는 인물(보통은 토마스 아 켐피스의 작으로 알려져 있다) 석상을 한참이나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서 있던 보스코!
전순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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