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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마지막 관광으로 베르첼리 방문<전순란의 휴천재일기-2015.8.29>
전순란 | 승인 2015.08.31 15:39
2015829일 토요일, 맑음

오늘은 ‘완벽하게’ 맑다고 한다. “어제 산에 갈 것이 아니라 오늘 갈 걸... 괜히 구름 속에 애만 태웠네.” 그런데 베르첼리(Vercelli) 가면서 그랄리아 뒷산들(몸바로네, 무크로네, 마르스)을 돌아보니 오늘도 여전히 머리에 흰 구름을 이고 서 있어 오늘 갔더라도 마찬가지였음을 알았다.

이탈리아 중북부 고도(古都) 베르첼리에 도착하니 10시 30분. 살레시오 수도회 피에몬테관구 경리와 베르첼리 원장을 겸하시는 스테파노 신부님을 만나 뵙고 문 선생 부부와 함께 베르첼리도 관광하기로 작정한 길이다.

베르첼리는 쌀생산의 중심이고 유럽에서 소비되는 쌀은 거의 이곳 농산품이다

   
 
   
 
   
 
스테파노 콜롬보 신부님은 여러 군데 수술을 하고 심장 박동기를 달고서도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주신다. 온갖 군데가 아프면서도 전혀 고통을 호소하지 않고 “살만큼 살았으니 하느님이 원하시면 언제라도 달려갈 마음이 돼 있노라.”는 말씀.

손수 우리 일행에게 커피를 대접하면서 문선생님의, 이탈리아 보건의료에 관한 질문에도 성의껏 대답을 하시면서 신부님은 지난 20년 쌓아온 우의를 더욱 돈독하게 해 주셨다. 오늘 헤어지면 언제 또 만날지, 과연 살아서 만나겠느냐는 농담을 건네시는 품이 스테파노 신부님도 심적으로 많이 힘드시구나 생각했다.

   
 
   
 
   
 
베르첼리 살레시오 수도원을 나와 조금 더 가서 베르첼리 기차역 앞 성당 뒷광장에 차를 세우고 성안드레아 성당부터 관광을 시작했다. 12세기에 성당으로 지어지고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자리 잡았던 곳이 역사적 우여곡절을 거치더니 수도원과 성당 앞의 거대한 교회 병원은 피에몬테 동부대학 문과대 건물로 쓰이고 있었다. 초기 고틱 성당과 수도원 내정(chistro)을 둘러보았다. 정원 잔디는 푸르지만 학생들의 방학으로 회랑이나 만들어진지 800여년 된 강의실들은 텅 비어 있었다.

   
 
   
 
   
 
   
 
900년 긴 세월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 회랑 밑을 오가면서 속마음을 나누고 학문을 토론하고 영성을 키웠을까? 신학교 공부를 해 본 보스코와 빵고도, 한신을 나온 나도 알만한 정신세계다.

   
 
   
 
   
 
   
 
그곳을 나와 산마르코성당이었다가 동네 시장이었다가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 있는 건물에는 베르첼리의 역사와 주요 건물의 모습과 역사를 한눈에 알아보게 전시하고 있어서 온 도시를 다 도는 수고를 면해주었다.

길을 걷다 어느 집 대문이 열려 있어 들여다보니 주인이 들어와서 보란다. 작은 방방에 작은 창문들이 나 있어서 옛날 수녀원이었느냐고 물으니까 그렇단다. 민간인들이 그 작은 방방을 차지하고 살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의 산물인 나폴레옹은 중부 이탈리아 교황령을 빼놓고 자기가 점령하는 지역마다 수도원을 해체하고 수도자들을 추방하고 건물들을 매각하여 혁명이념 그대로 ‘탈교회화(laicisation)’ 정책을 폈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나폴레옹의 몰락 후 일부는 원주인에게 돌아갔지만 대부분은 교회와 수도회의 손을 영영 떠나는 결과를 빚었다. 현대 유럽에서는 수도자들의 급감으로 자연스럽게 수도원과 그 건물이 국가에 기부되거나 일반인들에게 팔려나가는 추세다.

   
 
   
 
   
 
   
 
식당들이 여름휴가로 닫혀 있어 파올리노라는 식당에 들러 문 선생네가 대접하는 피에몬테식 요리를 먹었다. 관광을 나가면 늘 외식을 하자고 조르곤 하는 보스코가 오늘은 만족했을 게다. 그는 주교제후국(principato vescovile: 트렌토나 베르첼리처럼 그 지방 주교가 지역 제후를 겸하던 국가)의 몰락과 어두운 역사를 목격하는 중이어서 얼굴이 어둡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두오모(성에우세비오 성당)에서는 때마침 결혼미사가 열려 알록달록 예쁘게 차린 여자들을 실컷 보았으니 보스코 마음이 좀 풀렸을까? 하느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차림으로 성당을 꾸미는 여인들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달콤한 일이다. 결혼식은 정말 신부를 위한 날, 여인을 위한 날이다. 검은색으로 정장한 신랑이나 그 친구들은 하객들 눈에 띄지도 않지 않던가?

그 성당 입구에 ‘준주성범(De imitatione Christi)'이라는 책자를 저술하여 중세와 근세 가톨릭신자들에게 성속이원론의 정신을 깊이 박아준 요한 게르센(Ioannes Gersen)이라는 인물(보통은 토마스 아 켐피스의 작으로 알려져 있다) 석상을 한참이나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서 있던 보스코!

   
 
   
 

전순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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